초록 캔버스에 노란색 점이 빽빽하게 찍힌 거대한 점묘화 속으로 들어선다. 유자나무는 선비의 품성을 닮았다. 꼿꼿한 가지는 열매가 주렁주렁 맺혀도 감나무처럼 결코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고,두꺼운 잎은 댓잎처럼 계절이 바뀌어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어린아이 새끼손가락 만큼이나 길고 굵은 가시는 범접을 거부하면서도 은은한 향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을 풍긴다. 
‘반중 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슬새 글로 설워하노라’(박인로의 시조)
유자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나는 귀한 과일이라 30여년 전만해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박인로의 시조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곱게 익은 감보다 더 품어갈 만 하다는 유자. 늦가을 유자향 은은한 전남 고흥 유자골로 아로마여행을 떠난다.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남도 끝자락의 고흥반도는 나환자촌으로 유명한 소록도가 딸려 있는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 유자골로 유명한 고을이 연말께 외나로도의 우주센터 착공을 앞두고 유자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마다 ‘우주항공산업의 메카’란 문구를 새겨넣고 도로를 넓히는 등 한껏 들뜬 분위기다.
고흥읍에서 풍양면 소재지를 지나 조그만 고개를 넘으면 유자나무가 집단으로 재배되는 유자공원을 만난다. 말이 유자공원이지 특별한 시설은 없다. 드넓은 과수원엔 자동차 1대 겨우 지날만한 1㎞의 산책로와 국도변 유자전시판매장이 전부. 그러나 고풍스런 멋이 살아있는 유자밭 산책로를 트레킹 하듯 1시간쯤 걷다보면 은은한 향을 발산하는 유자나무 아래에서 고고한 남도선비의 품성을 배우게 된다.
유자밭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판매장 앞 산책로를 5분쯤 올라 야트막한 금성산 정상에 서야 한다. 한동마을을 넉넉하게 품은 37만평의 유자밭이 마치 초록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고,노랗게 익은 유자열매는 수확을 기다리며 향을 날리고 있다. 초록색과 노란색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곳은 유자밭밖에 없으리라.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때 바다였던 고흥만이 갈대밭으로 변해 망망대해처럼 펼쳐진다.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 주민들이 산책로에 멍석을 깔고 벼와 고추를 말리고 있어 무작정 자동차를 끌고 갔다가는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유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문무왕때인 840년. 장보고가 당나라 상인으로부터 유자 씨앗을 선물로 받아 도포자락에 넣어오다 남해안에 도착할 무렵 풍랑으로 씨앗이 떨어져 번식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찰과 양반집 정원에서 한 두 그루 자라던 유자가 대량으로 보급된 것은 30여년전. 지금은 작고한 이웃 대청마을의 이계환씨가 탱자나무에 접목해서 묘목을 대량 보급하고,공무원이던 임정남씨(고흥읍?59)가 70년대에 논과 밭에 묘목을 심어 10년후 고소득을 올리자 급속도로 확산됐다.
“옛날에는 유자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지라”
한동부락에서 유자농사를 짓는 이한식씨(52)는 70년대 이전만 해도 한 마을에 유자나무가 두 세 그루 밖에 없어 유자값이 금값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유자나무를 금나무,부자나무,대학나무로 부른다. 지금은 과잉생산과 오렌지 등 서구식 입맛에 밀려 유자값이 폭락하면서 재배면적도 3분의 1로 줄었다. 그래도 유자농사가 다른 밭작물 농사보다는 낫다고 한다.
유자향이 가장 진한 때는 수확 직전인 늦가을. 바람이 불지않는 흐린날 아침이면 풍양면 일대는 유자향으로 가득하다. 유자밭에는 드문드문 감나무도 있다. 농민들이 박인로의 시조를 의식해 감나무를 심는 것은 아니지만 유자나무에 둘러싸인 감나무는 꽤 시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못생겨도 맛은 좋다는 광고카피는 유자에 더 어울린다. 유자는 껍질이 두껍고 못생긴데다 바람이 불면 열매가 큰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면서 울퉁불퉁해진다. 게다가 알맹이보다는 껍질이 더 소용되는 특이한 과일이다. 비타민C의 보고인데다 항암효과가 입증되면서 찾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유자밭은 이곳 풍양읍 한동부락 뿐만 아니라 고흥읍 고소리에도 많다. 풍양읍 소재지에서 좌회전해 고흥만방조제를 향해 달리면 해발 356m의 오무산이 나타난다. 방조제를 쌓기 전 게가 산으로 올라와 춤을 추었다고 해서 오무산이란 이름이 붙은 고소리는 원래 고흥만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던 곳.
산자락을 노랗게 채색한 유자밭 너머 간척지는 온통 갈대밭으로 이곳에서 석양을 만나는 것은 행운. 득량만으로 지는 석양에 물든 갈대가 벌겋게 불타오르는 장엄한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지경이다. 고흥군은 이곳 간척지에 경비행장과 항공센터를 건설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유자와 로켓.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고흥에서만은 한 단어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고흥=글/사진 박강섭기자 kspark@kmib.co.kr

‘반중 조홍감이 고아도 보이나다/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슬새 글로 설워하노라’(박인로의 시조)
유자는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나는 귀한 과일이라 30여년 전만해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박인로의 시조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곱게 익은 감보다 더 품어갈 만 하다는 유자. 늦가을 유자향 은은한 전남 고흥 유자골로 아로마여행을 떠난다.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한 남도 끝자락의 고흥반도는 나환자촌으로 유명한 소록도가 딸려 있는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 유자골로 유명한 고을이 연말께 외나로도의 우주센터 착공을 앞두고 유자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마다 ‘우주항공산업의 메카’란 문구를 새겨넣고 도로를 넓히는 등 한껏 들뜬 분위기다.
고흥읍에서 풍양면 소재지를 지나 조그만 고개를 넘으면 유자나무가 집단으로 재배되는 유자공원을 만난다. 말이 유자공원이지 특별한 시설은 없다. 드넓은 과수원엔 자동차 1대 겨우 지날만한 1㎞의 산책로와 국도변 유자전시판매장이 전부. 그러나 고풍스런 멋이 살아있는 유자밭 산책로를 트레킹 하듯 1시간쯤 걷다보면 은은한 향을 발산하는 유자나무 아래에서 고고한 남도선비의 품성을 배우게 된다.
유자밭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판매장 앞 산책로를 5분쯤 올라 야트막한 금성산 정상에 서야 한다. 한동마을을 넉넉하게 품은 37만평의 유자밭이 마치 초록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지고,노랗게 익은 유자열매는 수확을 기다리며 향을 날리고 있다. 초록색과 노란색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곳은 유자밭밖에 없으리라.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때 바다였던 고흥만이 갈대밭으로 변해 망망대해처럼 펼쳐진다. 한적한 산책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 주민들이 산책로에 멍석을 깔고 벼와 고추를 말리고 있어 무작정 자동차를 끌고 갔다가는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유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신라 문무왕때인 840년. 장보고가 당나라 상인으로부터 유자 씨앗을 선물로 받아 도포자락에 넣어오다 남해안에 도착할 무렵 풍랑으로 씨앗이 떨어져 번식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찰과 양반집 정원에서 한 두 그루 자라던 유자가 대량으로 보급된 것은 30여년전. 지금은 작고한 이웃 대청마을의 이계환씨가 탱자나무에 접목해서 묘목을 대량 보급하고,공무원이던 임정남씨(고흥읍?59)가 70년대에 논과 밭에 묘목을 심어 10년후 고소득을 올리자 급속도로 확산됐다.
“옛날에는 유자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지라”
한동부락에서 유자농사를 짓는 이한식씨(52)는 70년대 이전만 해도 한 마을에 유자나무가 두 세 그루 밖에 없어 유자값이 금값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유자나무를 금나무,부자나무,대학나무로 부른다. 지금은 과잉생산과 오렌지 등 서구식 입맛에 밀려 유자값이 폭락하면서 재배면적도 3분의 1로 줄었다. 그래도 유자농사가 다른 밭작물 농사보다는 낫다고 한다.
유자향이 가장 진한 때는 수확 직전인 늦가을. 바람이 불지않는 흐린날 아침이면 풍양면 일대는 유자향으로 가득하다. 유자밭에는 드문드문 감나무도 있다. 농민들이 박인로의 시조를 의식해 감나무를 심는 것은 아니지만 유자나무에 둘러싸인 감나무는 꽤 시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못생겨도 맛은 좋다는 광고카피는 유자에 더 어울린다. 유자는 껍질이 두껍고 못생긴데다 바람이 불면 열매가 큰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면서 울퉁불퉁해진다. 게다가 알맹이보다는 껍질이 더 소용되는 특이한 과일이다. 비타민C의 보고인데다 항암효과가 입증되면서 찾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유자밭은 이곳 풍양읍 한동부락 뿐만 아니라 고흥읍 고소리에도 많다. 풍양읍 소재지에서 좌회전해 고흥만방조제를 향해 달리면 해발 356m의 오무산이 나타난다. 방조제를 쌓기 전 게가 산으로 올라와 춤을 추었다고 해서 오무산이란 이름이 붙은 고소리는 원래 고흥만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던 곳.
산자락을 노랗게 채색한 유자밭 너머 간척지는 온통 갈대밭으로 이곳에서 석양을 만나는 것은 행운. 득량만으로 지는 석양에 물든 갈대가 벌겋게 불타오르는 장엄한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지경이다. 고흥군은 이곳 간척지에 경비행장과 항공센터를 건설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유자와 로켓.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고흥에서만은 한 단어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고흥=글/사진 박강섭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