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일에 있을 금산에서 있을 바둑대회의 대략적인 준비사항을 알려 드립니다.
금산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 대회를 좀더 뜻있게 하기 위하여
1. 바둑을 둘 장소
2. 바둑 진행 방법
3. 맛있는 음식
4. 같이 오신 사모님들을 즐겁게 할 행사 등을 나름대로 생각하여 정리해 보았다.
먼저 바둑을 둘 장소에 대해서 여러 곳을 탐사해 보았다.
- 익금(금장)해수욕장 : 피서객이 너무 많아 적당하지 않아 제외시킴.
- 오천 몽돌해변의 벤치 : 우리들 차지가 되지 않을 듯하여 포기함.
- 문학동산 시 공원 : 그늘이 없어 불가능함.
- 소원동산 : 관광객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불편하여 탈락.
- 해돌마루 숙소 : 벤취가 있어 가능함. 그런데 운치가 없음(2순위)
- 생태숲공원 기념관 : 시원하고 운취가 있으나 탁자와 의자가 없어 흠이 됨(3순위)
- 생태숲공원 팔각정 : 가장 시원하고 운취가 있어 1순위로 정함.
(이 팔각정에서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바둑을 두어야 하고, 일찍부터 팔각정을 선점해야 하는
단점이 있으나 이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비상수단을 강구해 놓았음)
다음은 바둑 진행 방법
1일 오후 1시부터 오후 7시까지 : 조별 리그전
1일 저녁 후부터 : 숙소에서 각자 원하는 상대와 수담
(2일 기상하여 생태숲공원 탐방)
2일 아침 후 : 준결승 및 결승전(패자들은 각자 수담)
다음은 먹거리!
명남수 고문님의 염소 한 마리를 알아보라는 특명을 받고 알아보니
우와! 점심 한 끼니 해결하면서 먹을 염소 한 마리의 값이 무려 130만 원! (하여 생략)
1일의 점심은 각자 해결
1일의 저녁은 해돌마루에서(술은 간단히)
1일의 저녁 술좌석은 숙소에서 수담을 나누며
2일의 아침은 라면 등으로 간단히
2일의 점심!
이번 행사의 하일라리트로 메뉴를 금산에서 양식하고 있는 광어회와 전복으로 정했음.
가장 신경이 쓰이는 '사모님들을 즐겁게!'
1일 오후 : 해수욕장으로
1일 밤 : ?????
2일 아침 : 생태숲공원 탐방
2일 점심때까지 : ????
아, 이 부분은 나도 어찌할 수가 없도다!
누구 좋은 아이디어 없수????????
오늘부터는 우리의 바둑황제 조훈현과 관련된 이야기를 옮겨쓰고자 한다.
먼저 바둑의 올림픽이라고 일컬어지는 응창기배의 초대 우승!
4년마다 열리는 이 응창기배의 우승으로 인하여 한국 바둑은 일본,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나아가 세계바둑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으니 그 초대 우승자가 바로 조훈현이다.
이십세기의 최고의 빅매치를 들라고 하면 제 1회 응창기배 세계대회 결승국을 주저없이 들겠다. 응창기배 바둑대회는 본격적인 세계기전의 효시였다. 응창기배 바둑대회는 국가대항전의 성격에 당시 최대인 40만 불의 우승상금으로 세계바둑의 제 1인자를 가리는 빅매치였다.
제1회 응창기배 바둑대회는 각국의 최고수 16명을 초청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16명 중 우리나라 몫으로 초청된 사람은 둘이었다. 한 사람은 조훈현,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일본기원에서 활약하는 조치훈이었다. 나머지 14명은 중국과 일본이 나누어 가졌다. 사실상 한국사람 몫으로는 조훈현 한 사람이었다. 16명 중에서 한 명. 전체 중에 16분의 1, 그 숫자가 그 때 세계바둑계에서 한국바둑계의 위상이었다.
그 당시 우승후보 1순위는 중국의 섭위평이었다. 섭위평은 그 몇 년 간 중일바둑국가대항전에서 일본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연파하며 중국을 우승으로 이끈 천재기사이다. 중일 대항전에서 섭위평 한 사람이 일본의 고수들을 연파하여 '철의 수문장'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일본을 격파한 대륙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대회를 만든 응창기 씨의 기대대로 섭위평은 한국의 조치훈과 일본의 후지사와를 물리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사실 중국의 부호 응창기씨가 이 세계대회를 만든 이면에는 당시 세계1인자였던 섭위평의 우승을 염두에 둔 대회 개최였다. 그 상대로 결승에 오른 사람은 뜻밖에도 한국의 조훈현이었다. 조훈현은 8강전에서 일본의 자존심 고바야시에게 패색이 짙던 바둑을 버티고 버텨서 준결승에 오르더니 4강전에서 대만의 자존심 임해봉을 누르고 결승에 올라왔다. 이제 세계바둑의 제 1인자를 가리는 빅매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조훈현은 1국을 이겼으나 2,3국에서 연패하여 리드를 허용했다. 그리고 4국에서 불리한 바둑을 천신만고 끝에 건져 올려서 2:2 동률을 만들었다. 그리고 제 최후의 제5국에서 바둑계의 두 영웅이 격돌하게 되었다. 이 한 판의 바둑으로 승자는 40만 불의 상금과 그 보다 훨씬 더 큰 세계 최고수의 명예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조훈현의 흑번으로 시작된 결승전은 집이 부족한 백이 무리하게 흑을 잡으려 하다가 오히려 비명횡사하여 비교적 145수의 단명국으로 끝났으며 이 한 판으로 조훈현은 한국에서는 물론 세계바둑의 영웅이 되었고 ‘바둑황제’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름으로 회자되었다. 이 바둑 이후 승자인 조훈현은 10여년간 세계바둑계를 호령했으나 패자인 섭위평은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는 더 세계바둑계에서 그 존재감을 들어내지 못했다. 이 바둑을 계기로 한국바둑계는 세계바둑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섰다. 이후 10년 이상을 한국바둑은 세계대회를 독식하며 한국바둑 팬을 열광케 했다. 이 바둑 이후 다시는 더 바둑을 배우러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도 생기지 않았다. 바둑을 공부한다며 일본 바둑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도 사라지게 되었다.
역대 우승자 명단
회수
연도
우승자
준우승자
비 고
1
1989
조 훈 현
섭 위 평
2
1993
서 봉 수
오타게 히데오
3
1997
유 창 혁
요다 노리모토
4
2001
이 창 호
창 하 오
5
2005
창 하 오
최 철 한
6
2009
최 철 한
이 창 호
7
2013
판 팅 위
박 정 환
위 표를 보면 초대 조훈현, 다음이 서봉수, 그 다음이 유창혁, 또 그 다음이 이창호. 그리고 최철한!
이제 이세돌과 박정환, 김지석만 우승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