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봉 산하 뒷논께 밭에서 쟁기 뒤를 따라다니며 고구마
(일명 감제)를 럭비공 삼아 장난도치며 밭 고랑를 이리저리
뛰면서 주먹텅이만한 감제를 주어담은 3명의 남자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고달픈 이십대! ""밭꼬랑의 방랑자""
서울에서 유명 상업고등학교를 갓졸업한 친구 녀석이 그의 친구와
함께 불쑥찾아왔다 까까머리에 빵떡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구두는
천연 기념물이라 하여 이상하게(지금 생각컨데 앞코가 유난히 올라왔고
뒷쪽이 높은 미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팬션구두)생긴 신발을 폼 내면서
금산 거금도에 나타났다
그는 인류의 평화와 자유의 진리를 몸소 공부한다고, 자연과의 사색를
즐기며, 인간의 갈등을 연구코자 다야한 삶을 체험했고, 사적 개념
보다는 세계 인류적 문제를 고심하던 친구였다.
난 사실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고, 내가 생각하기론 그는 분명 일반적인
사람들 수준을 약간은 상회한듯 차원이 달라보였다.(지금보면 그때는
내가 완전히 미숙아 수준이였나??? . 왜냐면 지금은 내가 그를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막걸리를 상당히 좋아했으며 혼자 논두렁 밭두렁을 걸어 다니면서
노래도 부르는 낭만이 있는 친구였다. 그가 어느날 뉴질랜드로 가겠다고
야심찬 계획을 극비리에 천기누설을 했고 실행을 위해서 해병대
단기하사관으로 자원입대하여 무한한 애국심과 자신의 체력적 자신감을
구축하고 홀연히 김포공항을 떠난지 벌써 수십년......
그렇게 소식을 기다리던 사이 그 친구에게서 어느날 우연하게
뉴질랜드가 아닌 호주 시드니 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훌륭하게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육성전화를 받고나서,,그동안의 세월이
하도 무심하여 살아있는것만으로도 고맙고 반갑다라고 했다
그는 철저한 자유와 평화로 무장되어 있는듯하였다
내 나이 40이 넘토록 결혼하고 애들낳고 살림하고 돈벌고
낑낑거리며 살고있을때 그는 홀연히 자유의 몸으로 구차한
결혼일랑 미루고 오직 자유와 평화 그리고 진리를 의한 싸움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히 경애스럽다....
그는 적어도 반전 평화주의자인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금산 거금도 맞또 출신이다
이름하여 써니정에게 많은 격려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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