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앗테 애들아 사장께로 다 모여라. 사장님께가 아니고 평지 사장께로.
9시부터 한두명 모이면서 떠들기 시작하니 열서너명이 모였다.
때는 1972년 12월 겨울에는 항시 평지사장께가 시끄럽다.
우리집 창고벽에는 큼직한 얼굴사진으로 대선 벽보가 붙어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같은 김씨니까 2번이 되어야 한다고 우기고
미국에 있는 문태와 재섭이는 1번이 되어야 한다고 우긴다.
왜냐하면 재섭이네 작은삼촌이 1번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때 홍일이가 나타났다.
홍일아? 너는 누구편이냐? 응!? 나도 1번인데. 장율삼촌이 1번이 되어야된데.
그날 나는 완전 왕따 당했다.
야! 우리 비행기꽂기 할까? 어느새 우리의 "짱" 뒷논께 정율이가 와서 제안한 것이다.
그래! 하자. 하면서 금(선)을 긋는다.
비행기꽂기 놀이는 좌우로 쳐들어 가서 한바퀴 돌면서 고지를 점령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상대편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밀쳐내야 하니 체력싸움 놀이다.
우리는 체력이 한계가 와서 삼팔선 놀이로 노는데
이 때 교회종이 울린다. 땡그렁! 땡그렁!
누가 한마디 내뱉는다.
종소리에 맞쳐서 돈갖고 온나! 돈갖고 온나! 라고 종을 친다고 했다.
우리는 다같이 웃으면서 종소리에 맞쳐서 따라한다.
돈갖고 온나! 돈갖고 온나!라고 합창을 한다.
(위 글은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표현하오니 양해를 구합니다.)
이 때 누가 또 한마디 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인께 교회가면 빵준다고 하면서 교회가자고 제안한다.
비행기꽂기 놀이로 지치고 배고파서 우리는 모두 찬성했다.
교회가는 길은 현 우체국옆에 좁은 논두렁길 밖에 없었다.
우리는 첨으로 교회안으로 들어가니 같은또래 아이들이 방바닥에 많이 앉아있었다.
검정고무신을 끌어안고 뒷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목사님이 나오시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교회사는 누나가 검정보자기로 만든 매미채로 아이들 앞에 갖다대니까 뭘 집어넣는다.
나는 뭘 넣은줄 몰라서 검정고무신을 넣고나니 옆친구도 따라서 고무신을 넣는다.
그 누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친구에게 고무신을 건네준다.
하지만 내 고무신은 매미채에서 나오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곧 빵을 하나씩 배급받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고무신이 없다.
고무신을 찾으러 그 누나한테 갔다.
"누나 고무신이 없어요." "그래!" "그 통안에 넣었어요."
매미채는 두개가 있었고 그 중 한곳에서 내 고무신을 찾았다.
그 매미채는 헌금함이었던 것이다.
나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검정고무신으로 예수님과 빵을 바꿔 먹던날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결혼전에는 기독교신자였고 결혼후에는 불교신자다.
지금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내게 빵을 주셨던 예수님을 섬기고 계신다.
또 고모부는 광주에서 목사님으로 계신다.
아기 예수님! 온세상에 많은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아멘.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이해하여 주십시오.
또한 특정 종교를 부정(否定)하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