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화 : 을씨년스럽다
벌써 20년이 지난 1990년 11월 중순 쯤 삼학도와 유달산으로 유명한 목포에서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월요일에 직원들 세 명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여 어찌어찌 알게 된 것이 지난 토요일에 전주와 대전 사이에 있는 대둔산으로 등산을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지? 조난??????!
결국 우리는 내일 수색대를 보내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수색대의 일원으로 광주에서 이른 새벽에 나의 차로 대둔산으로 향하였는데 어둠이 막 가시고 있는 대둔산 입구의 삭막함이란!
겨울을 재촉하는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나무의 가지마다에 하나 둘씩 애처롭게 달려있는 낙엽의 잔해는 멋진 향연을 끝낸 무대의 쓸쓸함을 그대로 전하면서 내리는 비에 온 몸을 맡기고 있고,
아까부터 어디선가 ‘까악, 까악’ 하고 들려오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그 아침의 풍경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서로가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직감적으로 오늘의 결과를 예감하고 있는 우리 일행들에게 나는 참지 못하고 말해 버리고 말았다.
‘오늘, 우리는 시체를 찾으러 온 것이다.’라고.
바로 그 놈의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에 말이다.
결국 도착한 지 한 시간여 만에 싸늘히 주검으로 변해 있는 젊은 청춘들의 시체를 발견해야만 했고, 그 다음 날 화장을 하여 자기들이 온 곳으로 다시 고이 보내 주고서야 우리는 집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을씨년스럽다 - ①보기에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 ② 보기에 살림이 매우 가난한 데가 있다.
※참고 : 을씨년은 '을사년→을시년→을씨년'의 변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말이다. 을사(乙巳)년은 일제가 1905년에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친일 고관들을 앞세워 강제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統監)정치를 실시한 해이다.
당시의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특명 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을 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 조약은 우리나라의 외교 사무 일체를 일본 외무성이 관리 할 것 등의 다섯 조문으로 되어있다. 형식적으로는 1910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을사보호조약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의 속국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을사년은 우리나라 민중들에게는 가장 치욕스러운 해다. 이러한 사건으로부터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린 것을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지금의 ‘을씨년스럽다’로 된 것이다.
이야기를 바꾸어, 위에서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드는 사유에 까마귀 울음소리도 한 몫을 했다.
언젠가 보았던 글에 의하면 사실 까마귀는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은 길조라고 하던데 우리네 조상들은 까마귀를 흉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분들의 삶이 녹아 있는 ‘속담’에는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좋지 않은(?) 쪽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까마귀가 까치집을 뺏는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까마귀 열 두 소리 하나도 좋은 것 없다.’ 등등.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조상들의 생활에 자리 잡고 있는 까마귀도 ‘효(孝)’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있으니 그게 바로 반포지효(反哺之孝)다. 즉, 까마귀는 새끼 때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지만, 어미가 늙어 기운이 없으면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반포지효(反哺之孝)에 딱 맞는 순우리말이 있으니 그것이 안갚음이다. 이 ‘안갚음’의 사전적 풀이도 아래와 같이 반포지효와 똑 같다.
안갚음 - ①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
②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反哺之孝)
마지막으로 쓰기와 읽는 소리는 비슷하나 뜻은 전혀 반대인 앙갚음을 소개하니 안갚음과 앙갚음을 혼동하지 말고, 또한 ‘안갚음’은 하려고 노력하되 ‘앙갚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앙갚음 -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