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 판셈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물동이 호밋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말만 들은 서울로 누구를 찾아
이쁜이도 금순이도 밤 봇짐을 쌌다네.
어렸을 때 자주 불렀던 노래의 한 구절이다.
우리의 누나이자 여동생인 이쁜이와 금순이는 그 지긋지긋한 시골의 가난을 벗어 보고자 부모 몰래 야간 삼등열차를 타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로 서울로 향하였지만,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그네들이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공장여공, 차장, 식모살이 등등 몇 가지 일 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골에 남아 있는 또 다른 누이들인 이쁜이와 금순이는 먼저 서울로 간 이쁜이와 금순이를 동경하여 자기도 언젠가는 서울로 갈 것을 꿈꾸며 기회를 엿보다가 또 어느 날 밤 봇짐을 싸서 떠나갔으니 그렇게 서울은 우리들을 유혹하는 꿈의 도시였나 보다.
여자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몰래 밤 봇짐을 쌓는 경우가 있었으니, 그 중 한 가지 이유가 노름 등으로 재산을 탕진하여 빚에 쪼들리다가 도저히 빚을 못 갚을 상태가 되는 경우였다. 그러면 그 사람의 빚보증을 선 사람도 덩달아 낭패를 보았고.
그렇게 ‘노름이나 또 다른 이유로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다 날려 버린 자포자기 상태’를 우리는 ‘판심댔다’라고 하면서 그냥 막연히 모든 것을 포기한 마음의 상태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이번에 알고 보니 ‘판심’은 ‘판셈’의 사투리이며, ‘판셈’은 아래 풀이와 같이 「빚 진 사람이 그의 재산을 전부 빚을 준 사람들에게 주어 나누어 갖게 함.」이란 뜻이었다. 곧, 요즘의 ‘파산선고’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분명히 우리나라 경제의 규모는 예전보다 몇 배 몇 십 배 커진 것은 사실인데 우리네 서민의 삶의 질은 그것을 못 따라 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배부르고 등 따스운데 무슨 말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판들다 - 가지고 있던 재산을 다 써서 없애 버리다.
판셈 - 빚 진 사람이 그의 재산을 전부 빚을 준 사람들에게 주어 나누어 갖게 함.
무리꾸럭 - 남의 빚이나 손해를 대신 물어 주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