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 노우, 프로블렘!
자기의 전생이 인도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인 유시화 님이 인도를 열 번도 넘게 여행하고 쓴 여행기의 제목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었던가!
나의 기억으로는 그 책 제1편의 주제어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인 ‘노우, 프로블렘(NO, PROBLEM)’ 일 것이다.
잠깐 기억을 되살려보면 ‘노우, 프로블렘’은 지은이와 계약한 ‘차루’라는 이름을 가진 택시 운전수가 자주 하는 말이자 인도인들의 철학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차루’라는 운전수는 시간 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다.
일이 몇 시에 끝나니까 몇 시까지 차를 어디로 대라고 하면 대답은 오케이인데 나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그 ‘차루’는 오지 않는다. 결국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몇 시까지 차를 호텔 로비 앞으로 대라고 연락을 했는데 또 ‘차루’가 오지 않는다. 또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하여 공항으로 갈 수밖에.
어찌어찌하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은이는 ‘차루’를 만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하여 화를 내면서 나무랐다. 그때 차루의 대답이 ‘노우, 프로블렘’이다.
그것은 「내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해서 당신의 일이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느냐? 결국 당신은 비행기를 탔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했지 않느냐! 당신이 내게 화를 낸 것은 나를 피곤하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만 피곤하게 할 것이다.」뭐 대충 이런 뜻이리라.
혹자는 말할 것이다. ‘차루’와 계약을 해지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인도라는 나라는 원래부터 그런 나라인 걸 어찌하겠는가?
‘차루’가 아닌 다른 운전수도 그렇다는 걸 지은이는 알고 혼자 웃는다.
며칠간을 타고 가야 하는 기차지만 누구에게나 나의 지정된 좌석을 빼앗길 수 있는 나라.(왜 내 좌석을 차지하느냐고 따지면 ‘잠시 앉았다가 떠날 자리인데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단다)
남의 가방에서도 주인의 승낙을 받지 않고도 화장지를 꺼내가도 되는 나라.(왜 남의 것을 함부로 쓰냐고 말하면 ‘이게 왜 너의 것이냐, 네가 잠시 맡아 있을 뿐이지’라고 반문한단다)
버스 운전수가 정류장에서 자기 볼 일을 위하여 몇 시간을 지체해도 당연하다는 듯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한쪽에선 시체를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흩뿌리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그 물을 먹으며 목욕을 하는 겐지스강이 흐르고 있는 나라.
나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지만 나 같은 속물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나라라고 느껴져서 가는 것을 보류하고 있는 나라.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시간과 일상에 쪼들리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정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보다는 ‘포근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중히 여기자.
나의 눈으로(계산된) 세상을 보지 말고 남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비우는 연습을 꾸준히 하자.
오늘 인도철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노우, 프로블렘’과 우리의 ‘하냥다짐’을 비교해 보면서 잠시 삶의 전장에서 쉬고 있다.
하냥다짐 - 일이 잘되지 못했을 때는 목을 베는 형벌을 받겠다고 하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