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2]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투혼과 투지가 없는 자는 프로 레슬링계에서 떠나라!' 이것은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스승 역도산의 지론이다. 나 역시 이 지론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한국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면서 강조했던 것이 투혼과 투지였다. 레슬링 선수에게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죽은 선수나 다름없다.


pho_200606230834270501000005010100-001.jpg
↑ 1960년대초 내가 박치기를 통해 투혼 경기를 펼친 끝에 챔피언 타이틀을 거머쥐자 라커룸에서 자이언트 바바(맨 왼쪽)와 안토니오 이노키(맨 오른쪽) 등 역도산 문하생들이 축하해주며 건배 하고 있다


 
최근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말이 투혼과 투지가 아닌가 싶다. 얼마전 승용차에서 서울의 한 빌딩을 보니 '투혼'이라고 쓰여진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스포츠 선수라면 투혼은 가슴 속에 새겨넣고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안토니오 이노키와의 경기에서 내가 승리했던 것은 그보다 투혼과 투지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노키는 레슬링에 입문한지 6개월도 되지 않아 데뷔전을 치렀기 때문에 투혼과 투지가 덜 했을 것이다. 연습에서 투혼과 투지를 키우는 것과 막상 링에 올라가 투혼과 투지를 불사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노키는 나와의 경기에서 기술도 중요하지만 결국 투혼과 투지가 없다면 기술과 체력도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노키는 그날 경기에서 나의 이중성을 발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너 죽고 나 산다'는 사각의 링에서만큼은 난 그의 선배가 아니었다. 내가 유령의 탈을 쓴 인간인지, 진짜 유령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링에선 다른 모습의 인간이었다. 이노키는 그런 나를 떠올리기만 하면 피도 눈물도 없는 선배라며 진저리를 쳤을지 모른다. 이것은 두사람간의 혈투에서 승부를 내야만 하는 비정한 프로레슬링의 세계다.
 
스승은 이날 혈투장에 또 한명의 프로 레슬러를 등장시켰다. 그가 올드팬들에게 16문킥의 보유자로 알려진 '자이언트 바바'였다. 1960년 9월30일 도쿄 다이토 체육관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이노키와 자이언트 바바는 향후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좌지우지 했던 인물이다. 이들의 활약상과 배신 그리고 서로에 대한 증오와 명승부는 차츰 밝히도록 하겠다.
 
바바는 나보다 아흡살 적었다. 아마도 1938년생으로 기억된다. 이날 바바의 데뷔상대는 다나카 요네타였다. 그는 유도로 잔뼈가 굵은 레슬러였지만 바바는 5분만에 승리했다. 그의 등장과 승리로 일본 프로레슬러계는 흥분했다.
 
대부분 일본 프로레슬러들의 키는 180㎝ 내외였다. 그런데 그의 키는 210㎝에 육박했다. 프로씨름 선수에서 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최홍만 선수의 키가 218㎝였으니 바바가 얼마나 키가 큰지 짐작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자이언트(거인)란 이름이 말해주듯 그의 등장은 프로레슬링의 또하나 흥행 보증수표였다.
 
흔히들 키 큰 사람은 싱겁다라고 한다. 바바도 싱겁긴 마찬가지다. 싱거운 바바는 마음씨가 너무 좋다. 난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를 화를 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바바는 링에 서면 다르다. 인정 사정이 없다.
 
그는 키를 이용한 기술이 많다. 16문킥이 대표적이다. 로프로 밀친 후 반동으로 튕겨져 나오는 상대를 큰 발로 킥한다고 해서 붙여진 기술이다. 또 런닝 넥브레이커 드롭·노텐·32문 로켓포·카와즈 오토시(러시안 레그스윕)등.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기술들이다. 거인같은 그가 링에서 이런 기술을 펼치면 열광하지 않은 팬들이 없었다.
 
그런 바바는 한많은 레슬러였다. 원래 그는 프로야구선수로 대성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지금 일본서 이승엽 선수가 활약하는 요미우리 자이언트 출신의 투수였다. 야구선수가 프로레슬링 선수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일게다.<계속>

 

?

  1.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2]

    '투혼과 투지가 없는 자는 프로 레슬링계에서 떠나라!' 이것은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스승 역도산의 지론이다. 나 역시 이 지론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한국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면서 강조했던 것이 투혼과 투지였다. 레슬링 선수에게 이 두 가지가...
    Views2137
    Read More
  2.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3]

     스승 역도산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 프로야구 후배 선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프로야구 선수 중 거인이 한명 있다. 그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를 방출했다. 그는 다이요팀으로 이적하려고 했는데 성사가 안돼 ...
    Views2190
    Read More
  3.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4]

     나·자이언트 바바·안토니오 이노키·맘모스 스즈키. 스승 역도산은 프로레슬링의 또다른 흥행을 위해 '신 4인방 체제'를 구축했다. 네 사람중 가장 연장자는 나였다.   하지만 냉혹한 프로레슬링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일뿐이고 경쟁에선 나...
    Views2098
    Read More
  4.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5]

     박치기가 주특기였던 리기왈드의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내 머리는 성한 곳이 한 군데가 없었는데 그의 이마도 나 못지않았다. 그는 흑인이었다. 검은 피부는 윤기가 날 정도로 좋았다. 딱 벌어진 어깨·험상궂은 인상, 이것은 그가 열심히 훈련했다는 ...
    Views1942
    Read More
  5.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8]

     전에도 말했던 기억이 있다. 차량과 차량이 부딪쳤을 경우 어느 쪽이 더 피해를 입을까. 당연히 양쪽은 똑같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탱크와 부딪쳐도 마찬가지다. 탱크가 손상이 없다고? 천만에 자국이라도 남게 마련이다. ↑ 서양인 선수와 대결할때면 그들...
    Views2342
    Read More
  6.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7]

     1977년 세계 오픈 선수권 시리즈 중 하나인 제4회 히로시마 대회가 히로시마경기장에서 열렸다. '히로시마 원폭'이라 불렸던 내가 출전하는 경기라 언론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빠뜨리지 않고 보도했다. ↑ 가운 뒤를 보여 줄 수 없어 유감이다. 비단으로 ...
    Views2842
    Read More
  7.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8]

    난 나를 계속 진화시켰다. 프로인 이상 나만의 쇼맨십이 필요했다. 선수들은 링 아나운서가 입장 멘트를 날리면 별의별 표정을 다 짓거나, 각종 특색을 띠고 링으로 올라온다. 토끼처럼 로프를 껑충 뛰어오르는 선수, 로프를 앞뒤로 잡아당기며 마치 힘 자랑...
    Views21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Next
/ 15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