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스승은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스승 역도산 그림자를 밟지 않았다. 그것은 존경의 의미도 있었지만 스승 근처에 가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스승은 나만 보면 때렸다. 왜 그렇게 때렸는가는 차차 밝히겠지만 정말 하루라도 맞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난 스승이 "김일" 하고 이름을 부르면 자동으로 몽둥이를 가져갔다. 그리고 엎드려 뻗쳐 자세를 취했다. 스승의 매는 가차없이 엉덩이를 갈긴다. 스승의 매는 특정 부위를 가리지 않았다. 마치 개 잡듯이 아무곳이나 마구 때렸다.
매를 맞더라도 아프다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욱" 하는 소리가 나면 "아파? 그런 소리가 나와" 하며 더 때렸다. 그리고 맞고 나면 어김없이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다. 한 대 맞을 때마다 이 말을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그것이 스승의 매의 법칙이었다. 이상하게도 일본 선수들은 잘 때리지 않았다. 유독 나만 골라 때렸다. 일본 선수들이 늘 맞는 나를 안쓰러워했을 정도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며 정종을 사 주기도 했다. 그들도 왜 자신들은 때리지 않고 김일만 매질하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스승에게 맞아서 몸은 완전히 상처투성이였다. 머리가 터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스승이 옆에 있던 나무로 그냥 머리를 찍었다. 피가 줄줄 흘렀다. 스승은 다시 그 자리를 쳤다. 피를 흘린 나는 너무 서러워 눈물까지 쏟아냈다. 이렇듯 눈물과 피가 뒤범벅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링으로 올라가면 스승은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물론 레슬링이란 운동이 거의 맞는 운동이지만 그렇게 맞고선 하루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다. 귀를 집중 공격했다. 스승은 참으로 고약했다. 맞아 아픈 곳을 용케도 알고 또 그 부위를 공격했다. 스승은 왜 때리는가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투혼만 강조했다. 사나이라면 링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투쟁하는 기백을 길러야 한다며 때렸다. 그런데 왜 일본 선수는 때리지 않는가? 유독 나에게만 투혼을 강조하면서 때리는 이유가 뭔가? 스승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나는 `같은 조선인이면서 그렇게 차별할 수 있는가`라는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 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라 더 이상 레슬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역도산 제자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승에게 맞아서 온몸이 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밖에 나가기조차 창피했다. 정말 하나의 시련을 극복하면 또 시련이 닥쳤다. 마치 신이 조국과 가족을 등지고 역도산 제자가 된 나를 벌이라도 주는 듯했다. 레슬링을 진짜 그만두고 싶었다. 그만둘 명분도 있었다. 스승이 그렇게 때렸으니 말이다. 나는 마침내 스승의 매에 반기를 들었다. 고민 끝에 짐을 싸 도장을 떠났다. 도장을 나오니 하루는 매에서 해방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이 밀려왔다. "죽을 각오를 하고 운동해야 한다"는 스승의 다그침도 생각났다.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다. 방황하다 보니 역시 내가 할 것은 레슬링뿐이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도장으로 돌아갔다. 스승은 돌아온 나를 불렀다. 죽을 각오를 하고 몽둥이를 갖고 갔다. 스승은 크게 호통치며 "그만둬"라고 말했다. 정병철 기자 <계속>
사진=이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