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정에는
무성하게 풀이 자라있다.
뺑뺑이 지구본 주위에도.
철봉 밑에도.
저걸 어떻게 공원으로 만드는 방법이 없나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선뜻 가닥이 잡히질 않는다.
선생님들 사셨던 숙소가 보이고...
나동주 선생님, 노조덕 선생님, 하락도 선생님은 살아계시는지.
섬에 오셔서 고생하셨을 텐디.
어째 우린 그런 생각은하나도 못했을까.
감기 걸려도 약하나 사기가 힘들었던 시절이었으니,
선생님은 감기가 걸리면 우리들에게 자율 학습을 시키셨다.
"엄마, 우리선생 나선생이야!"
"땟기, 어째 니네선상이 니 선상이다냐?"
"그게 아니고 엄마, 성이 나씨여라!"
그 이후로 한동안 내 별명은 "우리선생 나선생!"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가 다니던 국민학교에 더 이상 아이가 없어
문을 닫아야만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하소연 할 때가 없다.
교단에서의 연극은 너무 재미있었어.
뉴욕의 Broadway연극보다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세월이 흐르고
중년이 되어도
어렸을 적 추억은 그림으로 남는다.
그 연극을 했던 이쁜 누나, 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 까?
신정 선착장에서
배급해다 먹은 그 빵은 왜 그리 또 맛있었는지.
두개를 주면 하나는 하교 길에 보리밭에 숨어서 먹어버리고서는
"엄마, 오늘은 빵을 한 개 밖에 안주데!"
여그서 아무리 고급 빵을 사먹어봐도
그 맛이 나지 않으니...
바닷가의 갯고동을 끼워다가
목걸이를 만들어 걸었던
그 누나들......
그리고 성치 갯가에 그 많고 많았던
이쁜 갯고동 껍질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일 학년 막 들어가서
순옥이 누나를 졸졸 따라다닐때
누나들이 날 많이 놀려먹엤제?
유자누나 선옥누나......나 다알어.
나 놀려먹은 거 다 용서 해줄께.
나와라!
.......
.......
고개를 들어보니
적대봉 정상에서 마당모찌로
마당모찌에서 새진몬당으로...
그때 파상서 소, 염소키우던 주오형은
소 도둑많고 얼마나 황당해 했든고...
산은 머리에 머리를 달고
추억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구나...
궁금합니다. 저는 많이 그렇게 세세한 분분까지는 기억이
안되는디요 부럽습니다.
그라고 초등교정은 언제 가보셨나요
염소가 뛰노는 마당으로 찌럭찌럭한 운동장은 바뀌자국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요???
혹시 요즘 금산에서 추억을 찾고 계신가요
갯고동 목걸이 그리고 또하나의 목걸이가 있죠/
바로 감똥목걸이죠 이른봄에 우리의 유일한 간식거리였죠아마.....,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