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5.05.13 09:05

퍼온글(명함집)

조회 수 931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자개 무늬를 얇게 입힌 명함 집을 하나 샀다.  
      언젠가 퇴근한 남편이 옷을 벗으며 열쇠 꾸러미와 함께 꺼내놓던 알루미늄
      명함 집이 생각나서였다. 인사동 길을 돌고 맨 마지막에 작은 토산품 가게에서 산 것이다.
      친정어머니는 밖에서 일하는 사람의 입성은 잘 챙겨주라고 늘 말씀하셨다.
      가능하면 주름 세운 옷가지들을 준비해 주지만 정작 가지고 다니는 물건들을  세세하게 살피진 못했다.
      언젠가 승진을 축하한다며 회사 식구들이 선물한 만년필도 어느 술좌석에선가  흘리고  와선 눈치만 본다.
      새로 하나 사달란 말도 못한다.  '볼펜 써요' 라는 말을 들을 테니까.   그는 지금껏 참 소박하게 살았다.
      자신을 위해 돈 쓰는 일을 잘 하지 못한다. 고만고만한 월급의 대부분이 아이들에게  들어가고 연로하신
      아버님도 계신 터라 허황되지 않은 그의 성격이 투정할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런 그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라고 늘 그렇게만 대접하는 일도 옳은 건 아니다
      최근에서야  간혹 서운해 하는 표정을 보면  아, 이 사람도 대접 받을 나이가 되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로부터 아내로부터. 그저 한꺼번에 누구하고나 담고 섞을 존재가 아닌,   그는 당연히 존경받을
      우리들의 오랜 대장인 것이다.   여행 내내 쉼 없이 운전해 준 게 고마웠다. 이것저것 음악을 틀어준 것도
      고마웠다.   잘 먹고 더 먹으라고 챙기는 것도 고마웠다. 애들보다 내가 먼저라고 생각해주는 것도
      너무 고마웠다.   어디 밉고 다툴 일이 없었으랴. 눈물께나 흘릴 만큼 냉정한 사람. 그래서 툭하면 다가간
      만큼  다시 돌아서게도 하지만 이젠 그런 밀고당김이 다 우스워질 만큼 나도 자꾸 물러진다.
      어지간하면 풀고 또 어지간하면 담아서 삭혀버리는 일이 그다지 괴롭지도 힘들지도 않아지니 말이다.
      나이 먹는 일의 즐거움이다. 세월 보내며 얻어갖는 콩고물이다.
       '뭐지. 웬 건가'.   '여행시켜줘서요. 고맙수'.
        '웬일로 그런 생각까지?  또 가야것네.'
      멋지다고 만지작거리며 힐끔 쳐다본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의 눈에도 이제 아주 실눈 같은 잔주름이
      생긴다. 나하고야 비교가 안 되지만 흰 머리도 하나 둘씩 돋아난다.  나는 곧 반백이 될 것이다.  
      뭉텅이로 염색하는 내게, 세 개쯤 올라온 흰 머리 뽑아달란다.  검은 머리 다 뽑아줄까 보다.  
      그래, 원하는 대로 뽑아줄 테니 건강하기만 하시라. 흰머리  수만큼 성숙해지고 주름살 숫자 만큼
      더 어른이 되어서 우리 서로 백년해로하든 부득이 혼자 남든  남은 생은 노을 빛 황혼으로 멋지고
      근사하게 기울어가면 좋겠다.   애들 군것질 좀 줄여서 잃어버린 만년필 하나 또 사줄까.
      그리고 나서 난 뭘 달라고 할까. 이런

      ps) 엊그제가 19년 째 결혼기념일이였는데 오늘 글이 어쩌면 우리와 같다는  생각이들어  
            copy해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황사장 혼기념일도 내일모래네 행복하시게나..
?
  • ?
    황경칠 2005.05.13 12:02
    고마운 친구 19주년 결혼기념을 축하하며 우리도 이제는반백이되어 염색을 해야만
    하는중년이라 !!덧없는세월이 이리도 유수와같으이...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4 퍼온글 1 표준 2005.09.14 819
53 마음을따라서 몸이간다. 2 황경칠 2005.09.12 1527
52 피해야 할것들!! 황경칠 2005.09.12 722
51 경오회 모임 언제 할까나? 2 표준 2005.09.06 747
50 9월의 편지 7 표준 2005.09.02 1092
49 자신을 사랑한사람은 --- 4 표준 2005.08.16 1044
48 1회여동창들보시오. 13 장계남 2005.08.15 1124
47 잠시만이라도 한가롭게 2 표준 2005.08.09 843
46 무슨 열매일까~요 1 표준 2005.08.09 956
45 거금도로 피서오세요 2 장계남 2005.08.08 892
44 휴가시즌을 맞이하면서 7 표준 2005.07.25 1210
43 으름을 아시나요 2 표준 2005.07.21 861
42 좋은글 감상 하세요 1 표준 2005.07.21 743
41 그대 4 2005.06.30 1043
40 안부 4 표준 2005.06.21 909
39 경오회 모임안내 김표준 2005.06.15 823
38 졸음이 쏟아질때 머리식히고 공감하기 2 표준 2005.06.03 961
37 골프의 3C(퍼옴) 표준 2005.05.26 978
36 5반장귀하 1 황경칠 2005.05.13 743
» 퍼온글(명함집) 1 표준 2005.05.13 931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Next
/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