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2일 도쿄돔 은퇴식 때 난 뜨거운 울음을 터뜨리며 링을 떠났다. 그때 많은 팬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지만 나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던 팬이 있다. 김일 일본인 팬클럽 회장이었던 난바 가츠미다. 상냥한 미소에 친절함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는 난바는 과거에도 지금도 나의 영원한 팬이다.
김일 일본 공인 팬클럽은 76년 10월 10일 발족됐다. 회장은 나카무라 요시하루. 본부는 교토후 가메오카시(京都府 龜岡市)에 자리 잡았다. 당시 선수 개인 팬클럽 존재 자체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난바는 15세 때 팬클럽에 가입했다. 팬클럽 회보인 <한국의 맹호>에 실리는 기사의 집필과 경기 사진 촬영을 도맡았다.
일본 팬클럽 회원들은 국경을 넘어 나를 사랑했다. 드러내 놓고 나를 응원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이들만은 달랐다. 팬 미팅에 가면 난바는 내 기분을 살려 주는 말을 하곤 했다.
"오키 선생님께서 이긴 날은 모든 행운이 저를 찾아 준 것 같고, 그런 날은 하루 종일 덩실덩실 춤추고 싶은 기분입니다. 반면 선생님이 진 날은 기분이 영 좋지 않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 같죠."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팬인 난바는 내게 두 가지 소원을 말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 돈을 선생님에게 다 드려 병을 낫게 하고 싶습니다. 또 프로레슬링이 부활하는 데 다 쏟아 붓고 싶습니다." 난바는 은퇴식 때 챔피언 벨트를 손수 만들어 내 허리에 채워 줬다.
난바는 내가 은퇴식 때 읽었던 원고도 직접 집필했다. "지금부터는 한국과 일본의 가교로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난바가 원고를 읽고 링에서 내려오는 내 손을 잡으며 "선생님의 박치기는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겁니다"라며 흘린 눈물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나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데뷔 초 벗겨진 로프 와이어에 부딪쳐 눈동자가 빠졌다. 그것을 오른손으로 받아 다시 눈으로 밀어넣었다. 백 드롭에 걸려 거꾸로 떨어질 때 등보다 머리가 먼저 떨어져 목뼈가 휘어진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죽었구나'라며 정신이 혼미해진 경우는 이루 셀 수 없다.
그러나 얻어 맞아도 돌진했고 박치기 하나로 끈질기게 싸웠던 것은 한국과 일본에서 나를 응원했던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팬들의 헌신적 사랑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난바의 말처럼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의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3000여 회의 경기를 펼치면서 그 구실에 충실했던 것 같다.
날 보고 "한류 원조", "한·일 스포츠 외교의 첫 테이프를 끊었던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다 이런 까닭이다. 나의 바람이 있다면 한국과 일본이 영원한 우방국으로 서로 프로레슬링 교류를 했으면 한다.
그것을 나의 후계자 이왕표가 이어 줬으면 한다. 왕년의 박치기왕이었던 내가 병 들고 몰골마저 초라해지자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켜 줬다. 그는 참으로 의리와 기개가 있다. 내가 못 다한 프로레슬링의 중흥과 레슬링을 통한 한·일 가교 소임을 그가 이룰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몸은 아직도 사각의 링에서 경기를 펼치는 착각에 빠지는 듯하다. '병든 김일'과 '젊은 김일'을 생각할 때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일본으로 밀항했을 때 일본 경찰의 검문에 걸려 감내해야 했던 수용자 생활, 스승의 제자가 된 후 혹독한 훈련을 하던 시절, 세계챔피언이 되면서 받았던 한국과 일본팬들의 사랑, 나의 박치기 한 방에 웃고 울었던 팬들 ….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난 다시 태어나도 스승 역도산 제자가 된 후 레슬링을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승과 함께 떳떳하게 조선인으로 일본팬 앞에 서고 싶다. 일본에서 국적을 숨기며 살 수밖에 없었던 스승과 함께 한 조를 이뤄 세계도 제패하고 싶다.
너무 보고 싶은 스승이다. 스승의 매도 그립다. "너를 미워서 때리는 매가 아니다. 이 매를 견디지 못할 것 같으면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라"던 스승의 호통이 지금도 내 귓가에 메아리 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청춘으로 돌아가면 뭘 하겠느냐고. 난 첫째도 레슬링, 둘째도 레슬링, 세째도 레슬링을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구를 다시 만나고 싶냐고 묻는다면 스승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스승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깨우쳐 줬다. 이제 스승 곁으로 갈 날이 멀지 않았다. 저승에서나마 스승과 단 둘이 사제의 정을 나누고 싶다.
꺼져 가는 인생에 다시 불을 지피게 하며 지난 시절의 인생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해 준 일간스포츠에 감사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