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리 유래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신촌 일부와 금진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두 마을의 앞뒤자를 따서 고흥군 금산면의 신촌리라 하였다.
신양新陽(발막금)
마을이 고기잡는 그믈과 같이 생겼으므로 발막금이라 부르고 새로 양지 바른 곳에 생긴 마을이므로 신양이라 한다.
신 촌
1959년도에 신촌. 중촌. 상동 3개 마을으로 분리되었으나 1962년 통합단일 마을이 되었다.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분동되면서 신촌이라 부른다.
신촌 내동 新村(內洞)
신촌리의 안에 위치하므로 안골이라 부르고 같은 뜻으로 내동이라 한다.
중동中洞(목넘)
원래 신촌에 속한 마을로서 내동. 중동. 상동으로 불리되었으며 고래를 넘어 마을중간에 위치한다 하여 "목넘"또는 중동이라 칭함.
상동上洞(웃골)
1652년 이조 현종때 경주이씨가 처음 이곳에 정착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신촌에 속한 마을로써 웃골 또는 상동이라 부르다가 1987년 신촌행정에서 분리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배 천
마을의 지형이 마치 좌우로 청룡백호등이 감싸는 가운데 그 지맥에서 나는 우물이 좋아서 배천이라 칭한다.
금진錦津(조금너리)
1600년 경에는 거금도 "조금나루"라 하였으며 돌산군 거금도 조진으로 개칭하였고 마을 북쪽 해안에 위치하여 조금시에는 암석이 노출되므로 조금너리라 하였는데 옛부터 이곳에 나룻터가 있어 나루진津자를 붙여 금진錦津이라 칭함.
신금新錦(샛감도리)
지금부터 165년전 제주고씨,경주최씨,경주김시가 입촌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설촌성씨(設村姓氏)가 확실치 않으며 서기 1900년경 금진과 행정을 같이한 마을이었으며 행정구역 개편으로 1945년 분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신금이란 명명(命名)은 금진에서 분리하여 새로생긴 마을이라 새 신新 자와 금진의 금錦 첫 글자를 따서 新錦(일명 샛감도리)이라 명명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