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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우두(牛頭) : 마을의 지형(地形)이 소의 머리와 같이 생겼으므로 쇠머리라고 부르다가 한자를 訓借(훈차)하여 우두(牛頭)라 불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5.03.01 08:20

찔레꽃

조회 수 1485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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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이야기



찔레꽃과 관련된 구전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찔레 순을 하나 꺾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찔레꽃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찔레꽃 이야기”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우리나라는 힘이 약해서 몽골족에게 일년에 한번씩 예쁜 처녀를 바쳐야만 했다.

찔레라는 이름을 가진 예쁘고 마음이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는 다른 처녀들과 함께 몽고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찔레는 몽골에서 그나마 착한 사람을 만나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찔레는 그리운 고향과 부모와 동생들의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10여년의 세월을 눈물로 보내던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주인이

사람을 고려로 보내 찔레의 가족을 찾아오라고 했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찔레의 마음은 더 아팠고, 더욱 더 가족들과 고향이 그리워 병에 걸리고 말았다.



찔레의 병은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보다 못한 주인이 찔레에게 고향의 가족을 찾아가도록 허락을 했다.

단 한 달만 있다가 돌아오라는 조건을 붙였다.



고향집을 찾아갔지만 이미 고향집은 다 불타 없어진 상태였고

찔레는 동생과 부모님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여기저기 산 속을 헤매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다.



한 달의 기한이 다가도록 찾지 못하고 몽골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슬픔에 잠긴 찔레는 몽골로 다시 가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고향집 근처에서 목숨을 끊고 말았고,

이듬해 찔레가 부모와 동생을 찾아 헤매던 곳곳마다 찔레꽃이 피어났다.


찔레꽃이 들판 여기저기 안 핀 곳이 없는 이유는

그렇게 찔레가 동생과 부모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찔레의 가시는 무엇이든 잡으면 놓지 않으려고 하는데

"우리 엄마, 우리 동생을 본 적이 있나요?"하고

애타게 물어보는 찔레의 마음이 가시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찔레꽃에 관한 이야기나 문학작품들은 가만히 보면

어떤 "슬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찔레의 꽃말도 "고독"입니다.

"주의가 깊다"는 꽃말도 있는데 아마도 동생과 부모님을 주의 깊게 찾아다니던

찔레의 아픔을 바탕에 깔고 있는 꽃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옛노래 한 곡 부르죠



찔레꽃 곱게 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위에 초가 삼간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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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양현 2005.03.01 09:14
    저희집 울타리에도 찔레꽃이 있는데
    그때 찔레가 우리 집도 다녀간 모양입니다.
    몰랐네요.
  • ?
    오종민 2005.05.24 17:32
    양현이 너는 안다니는 곳이 없구나 ㅋ ㅋ 여무끼미(연소) - 맞나?_ 관리나 잘하시지 아무튼 이곳까지 찾아와 줘서 양현아 고맙다. 니가 이글을 언제 볼 지는 모르겠지만 .....
    아휴 ! 삼촌 글 다 읽자니 힘드네요. 좀 쉬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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