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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

김일기념관앞 (충견상)

by 불의신 posted Jul 2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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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어르신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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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금도 2003.07.21 00:30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나를 위해 공덕비를 세우겠다고 나섰다. 박정희대통령에게 부탁해 전기를 들어오게 하고 레슬링을 통해 이름을 떨쳤다는 게 이유였다. 더 늦기전에 기념관도 지어야 된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았고 93년 그렇게 공덕비가 세워졌다. 공덕비 옆에는 내 동상 대신 진돗개 상을 세웠다. 진돗개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일제때 우리집에는 진돗개가 1마리 있었다. 일본군들이 가죽이 필요하다며 개를 잡아가던 시절이었다. 우리집에도 일본군들이 들이닥쳤다. 겁에 질린 내가 진돗개를 넘겨주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끌려가는 개의 모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이 얘기를 삼중스님에게 했고 그가 앞장서 진돗개의 동상을 세우자고 했다. [나의 젊음,나의 사랑 본문中에서]


    되살아난 忠犬 - 김종철님( http://www.cnuh.co.kr/jckim/ )

    '인심이 아침저녁으로 변한다(人心 朝夕變)' 혹은 '아침에 만든 법을 저녁에 고친다 (朝令暮改)' 라는 말이 실감나는 불신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푸념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자기 자신도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믿을 '신(信)'이란 한자를 사람 '인(人)' 변에 말씀 '言'을 붙여 사용하였습니다. 적어도 '사람의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강조된 것으로 보아도 되겠죠? 그런데,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말들은 과연 믿을 만 한가요?

    날이 갈수록 불신의 늪이 깊어지고 있기에, 충직한 동물이 사람보다 낮다고 평가될 때도 있습니다. 견공(犬公)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프란다스의 개'는 우리들의 유년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들인 훌륭한 개였죠? 유사시에 주인의 생명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충견들에 관한 이야기가 말로, 글로, 방송으로, 영화로 많이 알려져 왔습니다.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아 그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충성을 다한 견공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평소에 주인이 보살필 여유조차 없어 몰골이 형편없었던 개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억울하고 위급한 상황에 처한 주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결같이 자기 한 몸을 아낌없이 내던졌습니다.

    저는 최근에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죽은 명견(名犬)이 되살아나 이 땅의 하늘 아래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부활도 못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어찌 개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느냐구요? 부활이 아니라면 동물이 환생(還生)이라도 했다는 것이냐구요?

    아니, 아니, 결코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오래 전에 죽었던 충견이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의 어느 동리에서 귀를 쫑긋 새우며 늠름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뿐입니다. 아무리 사람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복음 방송인 극동 방송의 전파 매체를 통해 거짓말을 할 두둑한 배짱은 없는 사람이니, 제발 절 좀 믿어 주십시오.

    지난 번에 가족과 함께 전라남도 거금도를 방문하였다가, 그곳이 한국이 낳은 유명한 프로 레슬러 김 일(金一) 선수의 고향임을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 아버님께서 부산에 생존해 계실 때 일본 텔레비전의 프로레슬링을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셨습니다. 그 당시로는 비싸기만 했던 고급 안테나를 어렵게 구입하셔 가면서 말입니다.

    김 일 선수의 인기가 절정이던 때라서 그랬던지, 어린 저도 그 선수가 덩치 큰 외국 사람들을 이마로 박치기하여 막 쓰러 넘어뜨리던 장면을 아버지 어깨 너머로 보면서 무척이도 신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교포들은 그 선수의 경기가 개최되는 날에는 아예 만사를 팽개치고 텔레비전 앞으로 모였다고들 하니, 약소 민족의 울분을 그 선수의 박력 있는 경기 운영과 승부 근성을 통해 통쾌하게 해소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제가 어릴 적에 흠모하던 레슬링 선수의 고향에 지금 와 있다는 사실이 정말 꿈만 같았습니다. 아침 일찍 설레는 마음으로 김 일 선수 기념관을 찾았던 저는, 기념관 앞에 설치된 김 일 선수의 큰 공적비 보다도, 왼쪽에 우뚝 서 있는 진돗개 동상에 더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덩치 큰 프로 레슬러와 작고 귀여운 진돗개!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 꾸며대는 쇼(show)가 아닌 이상, 이 둘은 별로 어울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나 하고 다가서서 동상 아래에 적힌 비문(碑文)을 읽어 내려가면서, 저는 점차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콧잔등이 시큰둥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개 가죽으로 일본 군인들에게 가죽옷을 입히려는 듯, 일본 순사들은 조선인들이 집에서 기르는 개들을 무조건 바치라고 이 섬 주민들에게까지 공출(供出) 명령을 내렸습니다.

    김 일씨는 자기가 기르는 진돗개를 무척이나 사랑하였지만, 숨기다 숨기다 못해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아버지의 묵인 하에 일정(日政)에 바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이 영리한 개는 일경(日警)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몇 번씩이나 김 일씨 집으로 도망쳐 되돌아와 주인 품에 안기곤 하였답니다. 주인에게 끝까지 사랑과 충성을 바치다 비명에 간 이 충견은 죽어서라도 동상으로 되살아나, 개보다 못한 인간들에게 인간 본연으로 되돌아가라고 외쳐 대고 있는 것입니다.

    의리와 충성을 낡아빠진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이 세상이 정말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직도 의리와 충성의 세계가 폭력 집단에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하기야 의리를 지키고 충성을 다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요. 목적, 대상과 방법 모두가 옳아야 진가를 발휘되는 것이 충성이요 의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금도의 충견상(忠犬像)을 보면서, 우리 민족 고유의 의리와 충성을 되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옳은 일을 위해서, 민족과 가족을 위해서, 이러한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말입니다. 사람이 개보다 못해서는 결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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