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 할아버지를 만난건 2003년 8월 여름 더위가 한창인 날 이었습니다
그해 8월은 8회 금산 면민의날이 계획되고 전야제라는 최초의 행사가 준비 중 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진행 되는 행사라 고향 분들에게 어떤 메세지가 전달되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던 중이 었습니다.
해서, 금산의 힘 저력은 상징하는 김일 할아버지 뿐이다 라고 생각하고 수소문하여,
병원 연락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해서 인터뷰 요청과 행사의 취지를 설명 드리고 가능 여부를 물었을때,
정말 반가운 마음으로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병환중이시고 해서 인터뷰가 어려울거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반갑게 즐거움이 담긴 목소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약속을 하고 병원 병실을 들어 섯을때 저는 어려을적 금산의 영웅이셨던 분을 뵙고
한동안 시선을 잡지 못 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이마에 고스라니 남아 있으셨습니다.
마치 고향의 손자가 온 것처럼 화안 대소를 하시며 반가이 맞아 주시던 모습은 정말 잊을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내내도 그러셨지만 그어느 방송사 인터뷰도 아닌데 너무도 어렵게 말씀을 하시면서도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2시간 정도의 긴시간동안 인터뷰를 하는동안 쉬엄쉬엄 즐거움이 묻어나는 웃음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려을적 고향을 회상하시는 것에는 하나 하나가 생생했습니다.
오천에 있는 갓발 해우(김)하러 지게 지고 용두봉 적대봉을 가기위해 골몰(동촌)을 넘어가던 기억
너무늦어 늘앗테 밖까지 나와서 기다리시던 어머니을 회상 하시며 목 빠지시게 기다리며
어둠 먼발치 아들을 보고 불러 주시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직접 흉내 내시며 확인 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못내 드러 내시고 잠시 숨을 쉬시던 모습....
금산 초등학교 14회 출신을 유독 강조 하셨습니다
배움에 대한 한도 있었고 후배들에게 현재 고등학교까지 있는 지금 거금도를 사랑하라고...
옛날 씨름 선수 시절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쌀이 귀했던 때라 고흥 씨름 대회에 가게 됐는데 금산을 다 두려워 했다 하셨습니다.
왜냐면 씨름대회 상을 모두 휩쓸어서.... 허허 함박웃음을 지으셨지요.
고향 발전에 대해 반가워 하시면서도 걱정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잘 살아서 풍요로움도 좋은데 관광지로 되면 놀러온사람들이 쓰레기만 버리고 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하심이 역력 했었습니다
내집이다 , 내 고향이다 하는 마음으로 왔다 갔으면 하는 .....
전기불에 대한 전설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현역시절 세계유수의 도시를 방문하면서 정말 환하게 불을(등이라고 하셨슴)켜고 있는걸볼때
당신이 어렸을적 해우(김)할때 파래도 발라내고 물도 길러야 할때 절실하게 생각한게
불이 였다고 항상 생각 하셨답니다.
1967년인가 서울 대회에서 참피온이되고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청와대에 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말 재주도 없고 해서 간단하게 섬에 전기불을 켤수 있는지 그게 가장
먼저 생각나서 말씀 하셨답니다 체육관이라도 하나 지어 주시라고도 할수 있는데.....
전기불이 가장 먼저 생각 났다고 하셨습니다
대통령의 대답은 의뢰로 간단하게"임자의 섬까지 가는데 중간에 섬들이 있는가?"라고
물으시길래 중간에 소록도도 있고 작은섬들이 여나무게 있습니다 하셨답니다.
그뒤로 며칠후 도지사와 군수에게도 알리지 않고 청와대에서 직접 답사를 나오고
공사를 시작 하더랍니다...
고향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절로 나타나신 즐거움의 회고 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고향에 대한 생각을 여쭈었습니다.
금산! 거금도 태성은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할것이다
고향은 사랑하지 않을수 없다 후배들도 고향을 사랑하고 발전 할수 있도록 고근분투를 해 달라고
하시고 너무도 당연한 고향 사랑을 왜 묻느냐고 하시면서 허허 웃으셨습니다
장시간 인터뷰를 하시면서도 고향 손자 보든 대해주신 그시간을 잊을수 없습니다.
고향에 대한 인터뷰는 자네가 처음이시라고 하시면서 사진에 사인도 해주시는것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해 행사는 금산의 힘을 알려주신 김일 할아버지 힘으로 성공리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영전에 깊은 감사와 금산의 영원한 힘이심을 각인합니다.
---------- 영전에 올림
깊은 환희의 함성이 들리시는지요?
그 함성은 기쁨이고 , 절규이며 , 가난에 찌들던 섬사람들의 희망의
함성이었습니다.
고향을 사랑하심이 깊은 이마의 주름살 박히시듯 뚜렷 하셨습니다.
고향 산자락 어느 한곳도 셈세히 기억 하시는 당신은 거금도 이십니다.
몸사림없이 세계를 누비시는 당신을 대한민국의 희망이셨습니다
부디 극락왕생 하소서
거금도 배천 태생이 영전에 바칩니다
박치기왕 김일선생님은 10. 28일(토) 서울 을지병원에서 영결식을 마친 뒤
고인의 유해를 화장하여 금산면 어전리 평지마을 김일기념관 옆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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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어렸을 적 김일 영웅이시여,
같은 고향이라는 것으로 자부심을 느끼게 했던 영웅이시여,
거구에도 섬사람의 순수함을 가지신 영웅이시여,
이제 편히가세요.
그러나, 저의 맘엔 영원한 영웅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