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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3]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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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역도산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 프로야구 후배 선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프로야구 선수 중 거인이 한명 있다. 그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를 방출했다. 그는 다이요팀으로 이적하려고 했는데 성사가 안돼 상당히 낙심하고 있다. 그를 프로레슬링 선수로 스카우트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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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이노키와 마찬가지로 자이언트 바바와도 여러번 숙명의 대결을 펼쳤다.
내가 바바의 배에 박치기를 하자 바바가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의 박치기 한방에 대부분 선수들이 나자빠 졌지만 바바만큼은 웬만한 박치기에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스승은 이 말에 귀가 솔깃했다. 레슬링 선수이자 프로모터로서도 재능을 펼쳤던 스승은 당시 안토니오 이노키 뿐만 아니라 맘모스 스즈키 등 개성있고 특출한 선수들을 마구 스카우트해서 재미를 보고 있었다.
 
지금은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선수들의 키가 기본적으로 180㎝를 넘지만 당시에는 그정도도 안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런데 자이언트 바바의 키는 2m를 훨씬 넘었다. 스승은 당연히 그에게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자이언트 바바는 닉네임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바바 쇼헤이다. 스승은 그가 워낙 거인이라 자이언트 바바로 불렀다.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더이상 야구를 할 수 없었던 바바도 자신이 프로레슬링 선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야구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어 상당히 낙담했던 바바에게 스승은 프로레슬링에 입문하라고 권유했다.
 
걸림돌은 팔이었다. 스승은 바바의 부상이 의심스러웠다. 바바는 부러진 팔을 제대로 치료 받지 않아 뼈가 굳는 바람에 팔이 펴지지 않았다. 아무리 바바가 신장이 커도 레슬링 선수가 팔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기술 습득에 상당히 애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바는 미국에서도 흔치 않은 거인이 아닌가. 스승은 훗날 바바가 레슬링의 흥행보증 수표가 될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았다.
 
스승은 그에게 레슬링 입문을 권유했지만 바바의 판단과 의지에 맡기기로 했다. 바바의 팔이 장애라도 프로레슬링을 하고 싶다면 제자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었다. 스승은 바바에게 "'내가 부상을 당했으니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겠다'라는 식의 가벼운 생각으로 입문한다면 안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스승은 또 프로야구와 프로레슬링은 운동 스타일과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스승은 "프로 레슬링은 굉장히 힘들고 거친 스포츠다. 링에서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겠다는 바바의 결심과 의지는 대단했다. 바바는 "전 프로야구에서 탈락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안이한 마음으로 프로레슬링의 문을 노크하는 것은 아니다. 저도 남자다. 제자로 받아준다면 링 안에서 죽을 각오로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바바는 아무리 어려운 수련이라도 참고 견뎌내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스승은 바바가 충분히 고민한 끝에 결심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스승은 참으로 대어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 일본 언론에선 바바가 프로레슬링 선수로 전환하자 큰 관심을 보였다.
 
바바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로레슬링 선수로 대성해 반드시 세계챔피언이 되겠다"라고 밝혔다. 바바의 호언장담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록 한쪽 팔은 자유스럽지 못했지만 레슬링을 하겠다는 열정만은 대단했다. 공포의 16문킥과 스승은 바바에게 대포알 같은 가라데 촙을 전수시켰다. 바바는 맹위를 떨쳤다. 그의 등장은 이노키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또 한명의 숙적이 나타난 셈이다. 그와도 수없이 많은 혈전을 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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