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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월포(月浦) : 마을앞 포구가 반달형으로 생겨 “달개”라 부르다가 訓借(훈차)하여 월포라 하며 조선후기의 옛지도에도 월포로 표기되어 있으며 마을뒤의 고개를 “달갯재”라 하였는데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月浦(월포)마을로 현재에 부르고 있다.
2006.05.19 10:25

우리 마을 유래

조회 수 2484 추천 수 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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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리》

본래 돌산군 금산면의 지역으로 월포, 신평 두 마을을 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 그전 신평 마을의 이름을 따서 고흥군 금산면의 신평리로 하였다.
◎ 신평新平

옛날 난리가 났을 때 마을 앞 해안에 큰 암석의 동굴이 있어 주민들이 무사히 피하였으므로 평산암平山岩이라 한다가 신평으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 월포月浦
본래 이마을은 적대봉 산맥으로 오룡등과 달개등으로 배경을 이루고 맥을 이으고 있다. 오룡등에는 200년전 양천허씨(陽川許氏)가 청주배씨(淸州輩氏)처음 입주하고 달개포구에는 김녕김씨(金寧金氏) 담양전씨(潭陽田氏)가 처음 입주하여 터전을 이루자 그후 경주최씨(慶州崔氏) 장수황씨(長水黃氏) 여양진씨(驪陽陳氏) 순으로 20여戶로 소촌(小村)을 이루었다 한다. 포구가 半月形이라 마을명을 달개라 하고 불렸다. 이조1557년에 부터 해산물(海産物)파수가 생기고 나루꼬지가 처음으로 생겨 배들이 이어지고 흥양장을 왕래(往來) 했다한다. 마장터에는 말(馬)장터가 있고 거간들과 상인들이 모여 장터를 이루었다 하여 마장터라고 부르고 있고 거금팔경중 월포귀범(月浦歸帆)이 마을 폭을 넓히고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포로 개칭하여 지금까지 이르고있다
우리마을에 대해서 더 잘알고 계신분있으면 야기해주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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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열 2006.05.19 11:06
    정훈아 !!!
    고맙다 이렇게 좋은정보를줘서...
    앞으로더 더열심히
    더많은 일을 해주길 바래...
  • ?
    금옥 2006.05.19 13:27
    마을 유래 잘 읽고갑니다.
    월포(달개)는 "황"씨집안이 저희 외가죠
    달개는 외가댁이라 남다르게 친근감이 가죠
    저희 외가댁을 비롯하여 달개 모든분들도 항상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
    2006.05.23 07:29
    뉘 신지요 외가집이 월포고 황씨 집안이라? 이렇게 저희동네 까지방문 하셔 댓글까지 주시고....
    우리동네 황씨가 많은디 누구 네 댁일까? 아튼 금옥님 자주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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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은 2006.06.07 11:14
    우리 집은 원래 여수에도 살았었고 녹동에도 살았었고 내가 3살 때 지금의 우리 이층집을 지었다고 해.
    참 좋은 곳에 자리잡았어. 우리 동네...배산임수 지역이잖아. 정말 사장나무가 있어서 좋구,,,
    어릴 때는 바다 수영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도 했어. 그래도 바다는 내 마음의 고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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