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의 일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완고한 가정에 태어나셔서 딸이라는 올가미에 걸려서 전혀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해 그야말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저희 어머니는 인자하시고, 사려 깊고, 정이 많으셔서 주위의 젊은 아주머니들이나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이 어머니를 찾아오셔서 늘 우리 집은 어미니 친구들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입이 무거우신 분이셨습니다. 동내 여자들이 어머니 곁에 모여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히 남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그런 말을 옮기시지 않으셔서 구설수에 오르신 적이 제 기억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한 어머니가 늘 저에게 당부하신 말씀 중에 지금도 잊혀 지지 않은 말씀은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식대로 터득하신 인생에 관한 중요한 교훈이라고 여겨집니다. 자고로 남자는 어떤 일에도 나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담대해야 한 가족을 거느리고 노도광풍과 같은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새겨주시고 싶은 뜻이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벌써 십 수 년이 흘렀는데 며칠전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앞에 불효자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목회를 한답시고 애들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되는 우리 남희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다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길이 중국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배정된 학교에 자퇴서를 쓰게 하고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은 후 월요일이면 출국을 해야 되는데 그 월요일을 이틀 앞둔 토요일날 아무래도 희를 보내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취소된 등록을 제발 복귀해 달라고 학교당국과 교육청에 손이 발이 되도록 사정해서 허락을 얻은 후 나는 다시 그 일을 없는 일로 번복하게 되었습니다. 가족회의를 통하여 장래를 볼 것이냐? 현실을 볼 것이냐의 토론 끝에 장래를 위해 유학을 가겠다는 남희의 뜻을 존중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월요일날 사랑하는 딸을 이역만리 타국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나는 밤이 깊어가는 저녁에 무엇으로 아빠의 마음을 전할까 궁리하다 남몰래 눈물을 훔치며 딸을 향하여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내 사진과 가족사진을 편지봉투에 넣어 딸에게 전해주면서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라고 전해줬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사랑하는 딸이 떠나야 되는 시간은 너무나 냉정하고 야속하게 달려와서 사랑하는 딸은 내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공항에 갈 수 없어서 집을 떠나는 딸을 껴않고 딸의 볼에 난생처음 뜨거운 입맞춤을 하고 ”희야 잘 가거라. 또 만나자.“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아들의 방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아버지의 눈물을 삼켰습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남희로부터 그렇게 기다리던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받은 아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아빠 전화 받으세요.“라며 수화기를 건네주는데 너무 반갑고, 너무 보고 싶고, 너무 아빠의 자격이 없다는 자책감이 범벅이 된 나는 눈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와 도무지 전화를 받을 수 없어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싼 체 아내에게 전화를 돌려주고 목을 놓아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지금은 땅에 묻혀 흙이 되신 어머니! 아들은 어머니의 교훈을 잊은 채 철없는 딸 앞에 나약한 아비가 되어 부끄러운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어머니도 이 자식의 에비된 마음을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도 어머니의 계절에 자식 된 우리 앞에 그리하셨습니까? 왜 말이 없으십니까?
마음껏 우셔도 어머님은 불효자로 생각않으실겁니다
이세상 모든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 어머니를 사랑한 사람들을사랑한다고 고백하던
한 여인이 스칩니다
이세상 모든 아버지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