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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초
2006.03.13 15:36

그리움...

조회 수 1898 추천 수 0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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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이른 아침 호미를 챙겨 나가시며 엄마는 잊지 않고 당부하신다
'아야~학교 끝나면 국수 한주먹 삶아 내 오그라잉~~"
'에이~~씨..맨날 나만 시켜!'"
그러거나 말거나 대꾸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서두르시는 엄마 뒷통수에 대고
눈을 째리며 앙탈을 부리지만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알기에
속으론 내심 포기를 하고 말았다

유난히 게으른 성격이던 나는 그래서 늘 엄마에게 야단을 맞아야 했고
그런 엄마가 미워서 매일 입이 뚱하게 나와 미운 짓만 골라서 했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은 바닷가에 모여 조개를 줍고
바위에 엎드려 수다를 떨고 커다란 구멍이 난 바위틈에서 흐르는 시원한 물에
멱을 감거나 술레잡기를 할 생각에 신바람이 나서 바다로 내 달렸지만
나는 아침에 남긴 엄마의 당부가 귀에 박혀 그들속에 낄 수가 없었다


양은솥에 물을 끓여 국수를 넣고 휘휘 저어 바구니에 담아 우물가로 향했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국수를 씻은 다음 작은 바구니에 담고 설탕 탄 물주전자 들고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터라 허기져 계실 엄마를 생각하며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난 어린 나이에도 머리에 무엇을 이고 가는 것이 유난스레 싫고 창피했다
그래서 아무리 무거운 짐도 머리에 절대로 이어 본적이 없었는데
키는 왜 훌쩍 자라질 못했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밭까지 가는 길이 어찌나 먼지 아마 족히 1시간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신작로를 지나 윗마을 언덕을 지나고
무덤이 군데군데 모여있는 산모퉁이를 한참을 지나야 엄마가 계신 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을 일궈 만든 밭이어서 워낙 끝도 보이지 않을만큼 넓어 두리번 거리며 찾았지만
엄마 모습이 금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언덕 너머까지 올라가신 모양이다
재잘거리는 산새소리.간간히 바람에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흠짓 놀랄만큼 새삼스럽고 무섬증마저 든다

'엄마!!'나 왔어~~!' 투정섞인 소리를 냅다 지르며 부르자
'아이`~나 여기있다 더 올라 오느라`~"엄마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밭으로 오르는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증조 할아버지 산소를 곁눈질하며
부지런히 밭이랑을 올랐다
드디어 저만치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고구마 밭을 매고 계시는 엄마의 등이 보였다
작고 외소한 뒷모습이 산처럼 크게 느껴졌지만
반가움반 원망반으로 일부러 털썩 소리가 나도록 새참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땡볕에 그을리다 못해 벌겋게 익은 얼굴만 돌리시고
'거기 두고 기다려라 이 고랑만 다 매고 묵자'하신다
'아이~~지금 먹어`~다 불어 터지잖아~물도 다 미지근해지고 시원할 때 묵으라고`'
목소릴 높여 신경질적으로 재촉하자
그제서야 목에 두르고 계시던 수건으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탈탈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얇게 입은 윗옷이 땀으로 흠뻑 젖고 얼굴 가득 땀 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아랑곳 않고
빈그릇에 국수를 담고 주전자의 설탕물을 부어 후룩후룩 정신없이 드신다
아침을 뜨는둥 마는둥 하시더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싶다..
맨 국수가락에 설탕을 탄 물,..그것이 종일토록 땡볕에 앉아 밭을 매야 하는
엄마 식사의 전부였다
괜시리 심통이 나고 목이 메이며 자꾸만 눈물이 쏟아 지려고 해서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엄마! 정금 따고 있을께 다 먹고 나 불러~~'하며 서둘러 정금나무를 찾아 나섰다
"뱀 나올라`깊이 들어가지 말어라`~잉~'

섬이 지겹도록 싫다
파도에 쓸려 나풀거리며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파래도 미역도
물기를 머금어 햇살에 반짝이는 조약돌도 전혀 예쁘지 않다
돌맹이에 붙은 하얀 석화를 깨고 달콤하고 짭짜름한 굴을 꺼내 먹느라
왁자지껄 떠들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슬프게만 보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슬프고 아픈 것들 뿐이었다
무엇때문이었는지 모든 일을 엄마에게 다 떠 넘기신채 일하는 모습을
거의 보여주시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 중 가장 밉고 또 원망스러웠다

해질녁 어둑어둑한 신작로 길을 터덜거리며 걸어 오시는 엄마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문득 생각해 보니
그토록 많은 농사일에 파묻혀 자신의 삶은 도무지 따로 생각할 겨를도
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사시던 그 때의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어린
젊디 젊은 나이였다
지금의 나라면 그 모진 세월을 그처럼 묵묵히 살아낼 수 있었을까..
엄마에게도 한 여인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꿈도 있었으리라..


지친 몸을 누이고 주무실 때면 의례히 들리던 앓는 소리를
나는 엄마는 원래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일에 지치고 가슴앓이에 지쳐 만신창이가 된 몸이 아프다는 소리였는데
그것을 아무런 의식도 없이 그냥 밤이면 꼭 그런 소리를 내고 주무시는 줄로만 알았다

가끔은 땀에 절어 시큼한 냄새가 나는 등을 말없이 꼬옥 안아 드리고 싶은데도
괜히 엄마의 눈물을 보게 될까봐 두려워 애써 외면하고
잠들어 있는 동생을 툭 건드리는 것으로 무거운 정적을 벗고 싶었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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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재열 2006.03.13 20:43
    이글을 올리신분이 뉘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고 가슴찡합니다.
    얼른봐서 저희동네애기 같기도하고...
    아무튼  너무 내용이 좋아서
    한곡 올리고 갑니다.
    그리고 갑사합니다.

  • ?
    섬아이 2006.03.13 21:08
    ^^김재열님 감사합니다
    봄맞이(?) 하느라고 요즘 부쩍 고향 그리움병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봄 하늘같은 엄마를 그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고
    시리도록 아픈 그리움에 추억 한조각 올려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섬에서 자란 그 소중한 유년기가 제겐 지난한 아픔이기도 했지만
    또한 가장 귀한 보물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음.. 명천에서 노랑노리(?)까지 두루두루 수채화 같은 기억을 떠 올려보며..
    근데요.. 왜 남천을 노랑노리라고 했을까요? 지금도 궁금함^^
    혹 노랑노리라고 불리우던 기억을 가진 분이 있을시려나?
    저는 동국민학교 34회 졸업생이어요~~
    반갑습니다 행복하세요~
  • ?
    해우S'D 2006.03.14 09:02
    노랑너리는 황암(黃岩)을 풀어서 노랑(누루)+ 바위의 사투리로 널 너리
    그렇게 불리지 않았나 제 생각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우리네 추억과 설움이 다 녹아 있어서
    가슴속 한 편이 뭉클해져 댓글을 남겨봅니다.
    환절기에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
    재열 2006.03.14 10:19
    섬아이님!!
    저는33회구요 월포가고향입니다.
    제생각이지만  님은 아마 제이름정도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님이뉘신지 알수가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섬아이 나 해우sd 이런 이름도좋지만
    서로 알수있는이름
    그래서 더정겨운방이
    되었으면합니다.

    같은동문인데
    누구누구동생 또는 누구누구친구
    또는 어느동네 고모아들
    그것도아니면 사돈네팔촌동생
    이러게 연관지어지고
    그렇게하 므로 서로에대한 안부도 물을수있고
    더저겨워 지는게아니겠는지요?

    통성명 하고 인사하고
    그리고
    살갑게 지냅시다.

    참고로
    위질문중에 바위를 "널"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렇게되면 "노랑널 ">>>>>노랑너리
    뭐이렇게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 ?
    섬아이 2006.03.14 12:49
    아..노랑너리..그렇군요^^ 그 마을 꼭대기쯔음에 교회가 하나 있었죠?
    그리고 마을 가운데쯤엔 저수지가 있었고 그 옆에 커다란 나무도 있었어요..
    그 곳이 우리들의 놀이터였죠 옷소매가 까맣도록 코를 닦던 머스마들 ^^
    동생 업고 팔방놀이 구슬치기도 하고..으아~~그립습니다
    재열님 아..그러시군요 전.. 노랑너리에서 살기도 또 명천에서 살기도 하던 섬소녀였어요
    아버지가 잠시 동국민학교에서 수위(소사) 일을 보시기도 했죠
    아..그러고 보니 학교 관사에서도 잠시 살았습니다 이름은..제 이름은..끝자가 심이옵니다
    아휴 ~~촌시런 이름인지라 밝히기가 차마 민망하여요 두분 모두 감사합니다
    아마도 34회 동창님들께선 아!하고 무릎을 치실것인데..우짜나..^^
    민망함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지금 고향의 언덕에 어여쁘게 피어나던 들꽃도..
    그리고 학교뒷산을 붉게 물들이던 진달래꽃도 또 그 아래로 흐르던 냇가의 추억도
    모두 절실히 필요한 기억들이기에 자주 뵈오러 오겠습니다
    그 보물들을 끄집어 내며 가끔 부족하지만 추억 그리기 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
    명천앙꼬랑34회 2006.03.14 16:22
    섬아이가 심양이가?...
    가스나야 어디갔다 이제왔노...
    윗글을 읽으면서 우리동네 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 널줄이야^^...
    그래 작년이었지...니네 엄마가...
    가슴이 뭉쿨하면서 우리엄마가 갑자기 생각나더라...
    요즘우리엄마도 많이 아프시다해서 맘이 아프다...
    심아!
    저번에 우리만 광주내려갔다와서 정말 미안했다...
    담에는 꼭 같이가자꾸나...
  • ?
    섬아이 2006.03.14 17:28
    헉!!! 너 누고??그랴`~누군지 모르지만 다~주거떠~ㅎㅎㅎ
    지들끼리만 가고 난 왕따 시키고 (완전히 삐짐~~)
  • ?
    재열 2006.03.15 13:01
    거보세요...
    누군지를 알아야 얘기가 통하죠
    친구인지 선배인지
    동생인지 삼총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얘기가 되겠씁니까?
    후배님!!!
    이름을 모를거라 생각 하시더라도
    실명을 써주세요
    혹시
    재성이나 철웅이 문수
    이런친구들이 자기네 동네
    후배란것을 알면 얼마나
    반가워하겠씁니까?
  • ?
    섬아이 2006.07.10 13:10
    김재열 선배님 ~늦은 답을 드립니다
    저는 동국민학교 34회 졸업생 박양심입니다^^
    지금은 개명을 해서.이 이름이 낯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이 이름으로 인사를 드려야 고운 추억속의 그리운 인연들을 만날 수 있을테지요?^^
    철웅님은 나이는 같으나 제 일년 선배가 됩니다 ^^
    비와 함께 바람이 많이 붑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 ?
    뽕추 2006.12.18 00:53
    누가 내 이삔 일름 쓰라했쓰..둘다 콱 고냥 둑는다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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