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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베의 기억

by 이정운 posted Aug 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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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슴베의 기억 
                                                                                                                  주 정 안


여자는 맨발로 집을 나섰다. 치맛단이 땅에 끌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옷은 가벼웠고 발은 쉽게 더러워지지 않았다. 여자의 잰걸음에 옷자락이 나풀거렸다. 일찍 잠든 남자가 깨어나기 전에 돌아오려면 빠듯한 시간이었다. 늦어도 해 뜨기 전까지는 돌아와야 했다. 머리 위에는 검붉은 구름들이 빠르게 밀려가는 중이었다. 그 모양을 쳐다보다가 헛발질을 했다. 한눈 팔 때가 아니지. 여자는 발끝에 힘을 주었다. 길은 돌담을 끼고 밭과 평지로 이어져 있었다. 돌담 모퉁이를 돌자 줄줄이 늘어선 담배들이 넓은 이파리를 펄럭였다. 남자가 여자의 담뱃값 술값을 대기 위해 일궜던 밭은 여전했다. 여자가 없어도 열심히 돌보는지 잎사귀며 줄기가 튼실해 보였다. 그 자리에서 잘 자라는 것들이 여자에게 위안을 주었다. 남자가 다른 데로 떠나지 않고 집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여자는 결연한 눈길로 산봉우리를 바라봤다. 만만치 않은 거리였다. 밤새 남자 곁에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에 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집을 떠나 밤낮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돌멩이 따위는 잊고 지냈다. 어젯밤 모처럼 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에도 남의 집처럼 서먹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안방 쪽에서만 불빛이 새어나왔지 사방이 고요했다. 물웅덩이 옆 개집은 비어 있고 빨랫줄은 바짝 마른 채 걸려 있었다. 댓돌 위에 흩어져 있는 신발도 형편없이 낡아 보였다. 여자는 긴장된 발걸음으로 툇마루에 올라가 살그머니 문턱을 넘었다. 그 순간, 불안했던 마음이 일시에 누그러졌다. 남자는 앉은뱅이책상 아래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가늘게 코를 골다가 이마를 찌푸리곤 했다. 여자는 그 곁에 앉아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부쩍 늘어난 남자의 새치를 헤아리던 여자는 몸을 돌려 책상을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갖가지 잡동사니와 책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방금 본 듯 펼쳐놓은 책자를 보고 여자는 씁쓸하게 고갯짓을 했다. 역시나 돌멩이 사진이었다. 책 옆에서 여자는 종이쪽 하나를 발견했다. 그 위에 대충 그려놓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서툰 솜씨였지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봉긋하게 이어진 윤곽은 양쪽에 날을 세운 몸체를 나타나고, 까맣게 덧칠 된 곳은 그 아래 뿌리 부분을 그려놓은 듯했다. 왠지 길쭉한 몸체보다 뿌리에 눈길이 갔다. 무슨 말인가 혀끝에 맴돌다 감감해졌다. 여자는 한숨쉬듯 중얼거렸다. 지금도 돌칼을 찾고 있네.

  논두렁을 지나던 여자는 집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남자가 초저녁부터 잠이 든 게 다행이었다. 종일 안절부절 방과 마루를 서성거리다가 남자가 잠든 걸 보고 빠져나온 길이었다. 그는 딴 데 정신 팔린 사람처럼 여자가 오는지 가는지 거들떠보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예전처럼 한상 가득 밥을 차려주며 슬픈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럴수록 간밤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잠결에도 갑갑한 듯 찌푸리는 남자의 얼굴을 지켜보며 여자는 손에서 종이쪽을 놓지 못했다. 어때 우리가 본 거랑 비슷해 보이지? 남자는 간혹 낙서하듯 끄적인 그림을 내밀었다. 그때 것인지 몰라도 그려놓은 돌칼 모양이 똑같았다. 처음 그와 산꼭대기 굴에 갔을 때 여자는 진짜 돌칼을 봤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그 일을 끄집어내는 남자가 달갑지 않아 대꾸도 하지 않았었다. 지난밤 여자가 발견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책상 한쪽에는 누런 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 든 굴 사진과 서류뭉치 또한 눈에 익었다. 남자가 군청에 갈 때마다 들고 나갔던 것들이었다. 굴이 아니라 돌칼 사진이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적어도 허술한 그림 따위는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남자가 주섬주섬 사진기까지 챙겨들고 나선 건 함께 산에 다녀온 지 얼마쯤 지났을 때였다. 여자도 갑갑했던 참에 그를 따라나섰다. 아침부터 힘들게 올라가 굴속에서 축축한 돌과 낙엽을 헤집었다. 그러나 그때의 돌칼은 어디에도 없었다. 우울한 얼굴로 굴 사진만 찍고 내려온 뒤에도 남자는 갖고 있던 책이며 서류를 놓지 않았다. 하나같이 돌이나 돌칼에 관계된 거였다. 굴에서 돌칼이 없어져 여자도 서운하긴 했지만 남자가 하는 짓이 마땅치 않았다. 집에 부엌칼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는 위인이 허구한 날 돌멩이 같은 칼에 매달려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여자는 때로 밤늦도록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되지도 않을 일 헛수고만 한다고, 그걸 찾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그럴 시간 있으면 담배나 더 키우라고 타박을 주었다. 그 소리에 남자는 아무 대꾸 없이 자리에 돌아누웠고 여자는 거푸 소주잔을 비우곤 했었다. 새삼 지난 일에 신경이 쓰였다. 잠이 좀 많아서 그렇지 남자는 딴청을 부릴 줄 몰랐다. 돌멩이니 돌칼이니 붙잡고 있는 건 그런 까닭인 것 같았다.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돌아올 집이 있는 것도 그 덕택이었다. 여자는 부지런히 걷다 말고 발을 치켜들었다. 흙 몇 점 털어내자 말끔한 발바닥이 드러났다. 불끈 용기가 솟았다. 여자가 가야할 곳은 산꼭대기 굴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몇 고개를 넘어야 하는지 기억이 희미했다.

마을 언덕 녹두밭에는 두 내외가 해 넘어가도록 김을 매고 있었다. 여자는 이상하다는 듯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곳은 남자의 밭이었다. 다른 이들이 자기 땅인 양 들어가 일하는 걸 보면 남자가 밭을 팔았던지 빌려줬는지 몰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지만 우선은 길부터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여자가 밭고랑으로 들어서자 기다란 녹두 대가 넘실댔다. 흰 수건을 쓴 아낙이 흘끔 돌아봤다. 누구당가? 첨 보는 얼굴인디. 여자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 아래 담배밭 집에서 왔는데요…. 아낙이 손을 멈추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오메, 새 아그 아녀? 대뜸 아가라며 제 자식 부르듯 하는 건 여기 사람들의 말투였다. 친근한 말투와 달리  쳐다보는 눈초리가 곱지 않았다. 집에는 무탈하던가? 아낙은 그렇게 묻더니 무슨 일인지 혀를 찼다. 여자가 말도 못하고 머쓱해져 있을 즈음, 저쪽에서 한 사람이 목청을 높였다. 아따, 쓸데없는 소리. 이번엔 머리칼 등성한 남정네가 아낙에게 눈총을 주며 다가왔다. 두 사람 다 여자를 잘 알고 있는 눈치였지만 그들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방 무신 일이요? 남정네의 물음에 여자는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저 위에 가려면 여기서 어느 고개를 넘어야 하나요? 그가 잠시 휑한 머리통을 쓸어 넘겼다. 인자 올라가기 소랍지 않겠네. 워낙 나무가 우거져놔서…. 여자는 검푸른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산은 그대로였지만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가 심상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접때 올라갔더니 이것저것 발에 채여 영 성가시더구먼. 여자는 그를 다시금 쳐다봤다. 그는 산 사정에 훤한 것 같았다. 긍께, 한참 돌아가야 쓰것는디. …저그 메똥밭 보이요? 그가 맞은편 언덕을 가리켰다. 밭에 묘를 쓴 데 말이요. 여자는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그는 저곳을 넘어가면 신작로가 나올 것이며 그 길로 산중턱 절까지 올라가야 할 거라고 했다. 절이라면 여자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절 마당에서 등산객을 봤으니 그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 듯싶었다. 여자는 그의 설명에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왜 산에 가는지 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낙이 말을 붙이려는 듯 다가섰지만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얼른 돌아섰다.

개울을 건넜고 축사를 지났다. 축사 너머 이층집을 쳐다보다가 언덕으로 향했다. 턱이 높고 울퉁불퉁한 비탈을 올라와 이윽고 편편한 곳에 올라섰다. 메똥밭이었다. 주변에 옥수수를 심어놓았을 뿐 풀만 무성했다. 말이 밭이지 곳곳에 무덤이 있어 평소에도 작물을 심는 경우는 드물었다. 수풀 사이로 넙적한 바위가 여럿 눈에 띄었다. 여자는 그 중 한곳에 올라앉았다. 남자가 바람이나 쏘이자며 데려와 함께 앉아 있던 자리였다.

여자는 그 무렵 넌더리가 나 있었다. 큰맘 먹고 남자를 따라왔건만 밤낮 모기에 물려 온몸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거울 들여다 볼 겨를도 없어 눈썹이 어디 붙었는지 감감할 정도였다. 더구나 어떻게 된 촌구석인지 제대로 된 슈퍼나 옷가게 하나 없었다. 여자는 이게 모두 그 집 한 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남자에게 번번이 차를 얻어 마신 때문인지 몰랐다. 여자가 일하던 가게에는 부둣가의 온갖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장사꾼, 낚시꾼, 건달, 농부, 어부 그리고 뱃사람에 이르기까지. 상대가 누구든 차를 얻어 마시는 일은 하루에도 여러 번이지만 남자와 앉아 있는 동안에는 맘 편히 쉴 수 있어 좋았다. 차를 몇 잔이나 시켜주면서도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엉덩이를 더듬거나 반말을 지껄이지 않았다. 그는 늘 혼자 왔고 흔한 커피가 아닌 주스를 주문했고 손에는 봉투나 짐 보퉁이가 들려 있었다. 남자가 기억에 남았던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여자가 호기심에 봉투를 가리켰을 때, 그는 쑥스러운 듯 얼굴이 벌게졌다. 군청에 좀 알아볼 게 있어 나왔습니다. 이제 배타고 한 삼십분 들어가야죠. 섬이라 좀 외지긴 하지만 산도 있고 고인돌도 있고…. 그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한마디를 꺼냈다. 거기에 집 한 칸 있습니다. 그 순간, 여자는 할 말을 잊었다. 방 한 칸도 아니고 집 한 칸이라니. 집에 방이 하나뿐이어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부둣가 뒷골목의 고만고만한 집들이 머리에 지나갔다. 오래 전 부모와 살던 변두리 셋집도 가물거렸다. 언제부턴가 여자는 한 칸 방에 살았다. 그동안 거쳐 온 문간방과 뒷방과 옥탑 방을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집이라는 소리에 여자는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매일 맴도는 그곳을 벗어나 남자를 따라 배를 타고 싶어졌다. 하룻밤이라도 그 한 칸 집에 몸을 눕히고 싶어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방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아쉬운 대로 부엌이며 물웅덩이도 있었다. 남자의 집에 짐을 들인 것은 그 얼마 후였다. 짐짝을 싣고 들어오던 날, 남자는 동네사람들의 인사를 받기 바빴다. 잘 웃지 않던 그가 고르지 않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 모습이 어색해 여자도 슬며시 웃음 지었다.    

그날 여자는 이 바위에 앉아 씁쓸하게 지난 일을 되새겼다. 시원한 바람은커녕 후터분하게 두엄냄새만 밀려와 자주 얼굴을 찡그렸다. 옆에서 여자의 안색을 살피던 남자가 문득 앉은자리를 가리켜 보였다. 이게 바로 고인돌이야. 여자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시무룩한 표정을 밀어내고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옛날 여기에도 사람이 살았나 보네? 내내 풀 죽어 있던 남자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지나갔다. 여자 딴엔 이런 촌구석에, 그것도 뭍에서 한참 떨어진 섬에 예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웃으며 고갯짓하더니 저만치 선산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우리 부모님은 쭉 여기서 살다가 가셨지…그 무렵 막내인 내가 집에 내려온 거고. 그는 도시에서 직장 다니다가 이곳에 돌아오기로 맘먹은 일이며 형과 부모 이야기를 했다. 여자는 뻔한 것을 물었다고 후회했다. 한번도 보지 못한 그의 부모 얘기는 달갑지 않았다. 괜히 마음만 어지러워 바위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어름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여기도 살 만하다고 여자에게 일러주는 듯했었다.

결국 쉽게 떠나질 못했지. 그래서 그 모양으로 살았던 거고. 여자는 짐짓 원망스럽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새삼 발치를 내려다봤다. 바위는 단단히 땅에 박혀 있는 듯 보였다. 그 아래 더욱 깊숙한 곳이 그려졌다. 지금도 거기에는 채 삭지 않은 몇 조각 뼈가 남아 있을지 몰랐다. 또 어쩌면 항아리나 돌칼 같은 게 묻혀 있을지 몰랐다. 그대로 지나칠 수 없어 여자는 바위 주변을 살폈다. 메똥밭 위쪽에 있는 묘석들과 봉분 사이도 기웃거렸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선뜻한 기운이 감겨들었다. 그러고 보니 온통 무덤밭이었다. 

사내들의 말소리가 들린 건 여자가 막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여긴 좀 시원하구먼. 이 사람아, 시원한 게 문제여? 어서 내려가자니께. 여자는 급히 옥수수 대 뒤에 몸을 숨겼다. 얼떨결이었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날이 저물어 어스름해진 가운데서도 어렵지 않게 그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한 사내는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했고 그 옆의 마른 사내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먼저 사내가 벌렁 바위에 몸을 눕히자 마른 이가 언성을 높였다. 자네, 우리 집 축사에서 일어난 일 모른가? 해만 떨어지면 짐승이 돌아다니는디. 얼굴 불콰한 사내는 여전히 드러누운 채 말을 받았다. 알제, 자네가 키우던 염소들이 다 절단 나버린 걸 왜 모르겠는가. 금매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란 만시. 지금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도 아니고, 옛날 춘택이가 쩌그 산에서 내려와 개를 잡아갔다드만 꼭 그런 격이네. 그러자 마른 이가 자기 다리께를 내려다보며 머뭇거리듯 말했다. …그거야 옛날얘기 아닌가. 산도야지나 짐승 짓이것지. 여자는 별안간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 생각이 났다. 까만 털의 강아지는 방울을 매달고 졸졸 따라다녔다. 지금쯤 꽤나 자랐을 텐데 어디로 갔는지 남은 건 개집뿐이었다. 사내들이 짐승 짓이니 하고 떠들었지만 여자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 춘택이 얘기 역시 방금 말마따나 마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전에 남자에게 들은 바로는 춘택이라는 자는 옛날 산꼭대기 굴에 살았다는, 사람인지 뭔지 분명치 않은 인물로 남자는 그 굴을 춘택이 굴이라고 불렀다. 지금 가려는 곳도 거기였다. 그 생각에 잠겨 있던 여자는 마른 사내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의 넓은 이마와 홀쭉한 턱을 찬찬히 훑었다. 축사, 염소…. 여자는 불쑥 앞으로 나설 뻔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 듯싶더니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사내의 예전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무렵의 일이 머리에 스쳤다. 그는 한마을에 사는, 남자의 후배뻘 되는 이였다. 그가 남자에게 빈 땅이 있으니 함께 염소를 키우자고 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마침내 두 사람이 땅을 고르던 자리는 저 아래 축사가 들어선 곳이었다. 하지만 축사는 텅 비어 있고 여자는 그 너머 이층집을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여자는 마른 몸집의 사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축사를 짓던 무렵에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에게 새참을 날라주러 갔다가 옷을 걷어붙인 사내를 봤다. 볕에 그을린 어깨와 단단해 보이는 허벅지가 눈에 쏙 들어왔다. 여자는 남자 옆에 앉아 자꾸 한눈을 팔았다. 한때 건너 마을 채석장에서 일했다는 사내의 말에 고개를 연신 끄떡였다. 그는 몸집도 그럴 듯했고 집까지 근사하게 지어 놓았다. 진작 저런 사내를 만났으면 좋았지. 여자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사내의 모습은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다. 거기다가 무슨 일로 다리를 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남자는 조금 후줄근해지고 새치가 늘어나고 머리숱이 듬성해졌지만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지금도 남자가 사내의 집에 드나드는지 궁금했다. 남자를 졸라 그의 이층집에 따라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 집에만 가면 여자는 넋을 놓고 감탄을 했다. 드물게 자갈 깔린 마당에는 항아리와 바위가 놓여 있었고 집안 거실에는 선반마다 수석이 가득했다. 전에 채석장에서 일했다더니 가져다놓은 돌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여자는 그것들을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남자는 그와 진지한 얼굴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듯했지만 그것도 관심 밖이었다. 그 즈음 두 사람은 자주 만났던 것 같다. 유난히 돌이 많던 사내의 집에서. 여자는 옥수수 대 뒤에 붙어 서서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작로는 멀지 않았다. 언덕 아래로 포장된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운기가 내려간 뒤로는 사람 그림자도 없이 한적했다. 여자는 길에 사뿐 내려섰다. 아스팔트 포장에 도로가 넓어졌지만 곧 어디쯤인지 분간이 갔다. 길가에 우거져 있던 억새는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어둑한 곳에서 억새풀들이 허옇게 몸을 뒤집으며 거친 바람소리를 냈다. 여자는 그 모양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봤다. 사방이 적막한 것도 견딜 만했다. 아마 남자의 집을 떠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혼자라는 게 아쉽긴 했지만 줄곧 이 촌구석에 묶여 있던 것을 만회하려는 듯 언제고 내키는 대로 쏘다녔다. 그러는 사이 밤눈이 밝아졌는지 어두워도 잘못 보는 법이 없었다. 남자가 잠든 시간에 산에 올 수 있는 건 그 덕택이었다. 모처럼 그곳을 걷자니 기분이 묘해서 여자는 웃다 찌푸리다 했다.

그때는 저녁이 아니라 이른 아침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것도, 손에서 놓지 않던 담배며 술을 멀리 하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찬물세수를 하고 몇 푼 챙겨 이 길을 올라왔다. 허리에 걸친 벙벙한 몸뻬가 신경 쓰여 블라우스를 아래로 잡아당기곤 했다. 도무지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틈만 나면 방구석에 앉아 서류뭉치나 뒤적이는 남자 때문에 더욱 맘이 갑갑했다. 마루로 나와 빨랫줄에 한없이 나부끼는 옷가지를 바라보거나, 남자가 데려온 강아지가 저 혼자 방울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것을 쳐다보다가도 문득 선착장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남자를 따라왔던 때와는 반대로 당장 배를 타고 나가 어디든 복작거리는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었다. 대형 슈퍼와 옷가게와 화장품점이 있는 넓은 거리를 쏘다니고 싶었다. 구차한 옷가지를 벗어버리고 높은 구두를 신고 딴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었다. 여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아니면 몸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무거운 몸으로 떠날 수는 없을 테니까. 산중턱 절까지는 꼬박 한 시간 거리였다. 늘 그랬듯 샘을 지나 절 마당에 들어섰다. 낡은 쪽문 안으로 들어가 울긋불긋한 그림을 바라봤다. 한가운데 가슴을 드러낸 붉은 옷차림의 군상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몸을 조아렸다. 그림 속 크고 작은 얼굴들은 언제나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이전에 뱃속에 자라던 씨앗들은 다 어떻게 했느냐고, 무슨 염치로 또 달라고 하느냐고 힐난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한편으로 억울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땐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요….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아 여자는 벌을 서듯 엎드리고 또 엎드리곤 했었다.

흐르는 물소리가 났다. 절의 돌계단이 나타나자 여자는 황급히 치마를 훑었다. 얇은 천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상심한 듯 손을 비비다 말고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무 장식 없는 평범한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여자는 안도한 얼굴로 저 위에 달아놓은 전기등을 바라봤다. 길이 좋아진 덕분인지 금세 올라온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가면 샘이 나오고 곧 절 마당이었다. 마당 뒤편으로 산등성이로 이어진 곳이 있을 듯했다. 거기부터는 길이 험할 테니 목을 축여야 할 것 같았다. 네모난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샘물은 전처럼 움푹한 바위가 아닌 시멘트 구조물 안에 담겨 있었다. 주위에 여러 개의 플라스틱대야가 놓여 있는 것을 보며 여자는 망설이듯 바가지를 집어 들었다. 빨랫줄에서 젖은 수건이 흔들렸다. 방금 세수를 한 것처럼 비누 냄새가 났다.  

칠성각 쪽문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틈을 기웃거렸지만 여기저기 바닥에 널린 방석뿐이었다. 여자는 흙 묻은 발을 털어내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향이 타오르는 제단에 과일과 사탕과 술잔이 놓여 있었다. 그 뒤에는 낯익은 군상이 가득했다. 촛불에 비춰진 모습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생생했다. 긴 옷차림의 늙수그레한 이들은 여전히 떨떠름한 눈초리로 불청객 대하듯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 사이사이에 전에 없이 둥근 얼굴들이 끼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따질 겨를 없이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세상모르는 듯 여자에게 함박웃음 짓는 얼굴들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그 중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통통한 남자아이였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지? 여자는 깜짝 놀라 앞을 두리번거렸다. 가슴에 장식을 늘어뜨린 군상과 눈이 마주쳤다. 이쪽을 기억한다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잊었다는 듯 얼른 반지를 빼어 시주함에 넣었다. 그 바람에 촛불이 높게 타올랐다. 그때는 네 잘못이었어. 몸이 허술해 씨앗을 제대로 품지 못했지. 그러다가 남자를 떠난 거야.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틀린 말 같지 않았다. 이곳에 발길을 끊은 건 급히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였다. 늙은 시골의사는 생리주기와 하혈이 시작된 날짜와 그간의 임신경력을 묻더니 새삼스레 여자의 얼굴을 훑었다. 어렵것소. 한두 번도 아니고 밥 먹듯이 떼었으니. 부주의하게 말을 흘리는 그 얼굴을 여자는 멍하니 바라봤다. 낙담하고 슬퍼해야 할 상황에 그의 벌겋게 짓무른 눈가만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눈이 점점 더 물크러지는 것을 쏘아보던 여자는 느닷없이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표정 때문인지 말투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이유를 따질 것 없이 모든 게 우습기만 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눈물까지 질금거렸다. 하지만 그 일은 지금도 헛갈렸다. 스스로 남자 곁을 떠났는지, 어쩔 수 없이 떠났는지.

코끝에 향 내음이 밀려왔다. 담배연기보다 짙고 강한 냄새였다. 천천히 숨을 들이키는 동안 복작거리던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여자는 머리칼과 옷고름을 가다듬고 마룻바닥에 엎드렸다. 저 아래 방 두 칸짜리 집을 떠올렸다. 바짝 마른 빨랫줄과 댓돌 위에 뒹굴던 낡은 구두 짝을 떠올렸다. 어젯밤엔 경황이 없어 지나치고 말았지만 분명 달라진 모습이었다. 남자가 한창 읍내며 군청에 일을 보러 다닐 때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새로 빨아놓은 옷에 구두를 광이 나도록 닦아 신고 나갔다. 그리고 대개 늦게 돌아와 서류봉투를 맥없이 내려놓곤 했다. 여기가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어. 고인돌이든 굴이든 뭐 하나 보호할 생각은 않고, 영 관심들이 없다니까…. 하루는 그가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말은 굴을 진작 보호했다면 돌칼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이제라도 뭔가 발굴하면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된다고 했지만 아득한 얘기일뿐더러 그렇다고 사는 게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여자는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발 그만두라고, 담배나 잘 키워 식구들 먹여 살릴 생각이나 하라고 닦달하다가 슬그머니 돌아앉았다. 밤새 뒤척이며 뭔가 빠져나간 듯 허전한 배를 어루만졌다. 

그날 밤 여자는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었다. 돌칼이 없어진 것부터가 맘에 걸렸다. 남자의 집에 짐을 들인 다음 날, 그가 다짜고짜 데려간 곳은 산꼭대기 굴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꼭 보여 줄 게 있다는 말뿐이었고 여자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그를 따라 올라갔었다. 생전 처음 보는 험한 벼랑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건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넝쿨 늘어진 언덕을 끼고 굴에 다다랐을 때, 그는 땀방울 구르는 얼굴로 씩 웃어 보이며 여자를 안으로 이끌었다. 손전등으로 구석구석을 비추던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사람이 다녀갔는지 한쪽에 과자봉지와 깨진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허둥거리듯 여기저기서 낙엽과 돌을 들어내더니 갑자기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돌 같은 물체를 보여주었다. 여자 눈에는 흔한 것으로 보여 그가 좋아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벌써 십년도 넘었지. 여름방학 때였어. 모처럼 집에 왔다가 호기심에 굴까지 올라왔지. 남자는 어릴 때 어른들이 춘택이가 마을로 내려와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겁을 준 일이며 산꼭대기 굴에서 춘택이가 짐승을 잡아먹고 산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는 얘기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굴에 와보니 바닥에 넙적한 것이 굴러다니는데 처음엔 무슨 방망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창이나 화살 모양과 흡사했다, 뭔지 몰라도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아 구석에 숨겨 놓았는데 나중에서야 돌칼인지 알았다고 했다. 여자는 돌칼도 돌칼이지만 그가 한꺼번에 말을 많이 한 것이 신기해 보였다. 칼이 그대로 있어 다행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가 어서 받아보라고 했다. 마치 자신의 소중한 보물을 보여주는 듯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그의 얼굴에 어렸다. 여자는 썩 내키지 않았다. 조금 전 남자한테 어딘가 구멍에 뼈가 수북이 박혀 있었으며, 그새 굴 안이 허물어져 뼈가 파묻혔는지 혹은 누가 파내갔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춘택이 운운하는 건 옛날이야기로 치더라도 거기에 뼈가 있었다면 그 칼로 짐승을 잡았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여자는 망설이다 결국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먹고살기 위해 중요한 물건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손전등이 돌칼을 비췄다. 돌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랄 것 없이 불긋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남자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짐승의 피가 배인 듯싶었다. 칼의 길이는 25센티 정도. 날이 없는 쪽은 그저 비쭉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긴 편에 속해. 그리고 이 뿌리 부분을 자루에 묶어 사용하도록 만들어졌지. 그는 날이 없는 곳을 가리켜보였다. 이건 뿌리가 민자로 반듯하지만 구멍이나 홈이 있는 경우도 있고…. 요즘처럼 칼을 자루에 넣어 썼다는 것이 신기해 여자는 비쭉한 곳을 만져봤다. 뿌리는 축축하고 껄끄러웠다. 한때 어딘가에 단단히 감겨 있었을 그곳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칼의 윤곽을 따라 무디나마 날이 남아 있었지만 끝이 뭉툭해 뭘 자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여자는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다 장난삼아 머리칼 자르는 시늉을 했다. 날에 걸렸는지 머리카락이 당겼다. 전등 빛에 비춰 보니 몇 가닥이 손아귀에 남아 있었다. 여자가 까르륵 웃던 것을 멈췄다. 남자도 의외라는 듯 여자의 머리칼과 돌칼을 번갈아 쳐다봤다. 여기다 내 머리칼을 얹으면 되겠네. 나중에 여길 조사하게 되면, 칼에 무슨 머리카락인가 하겠지? 그는 농담하듯 말했지만 여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것은 그냥 돌이 아니라 돌칼이었다. 피가 배인 돌칼이었다. 거기에 머리카락을 얹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장난일 수 없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이 굴에, 다시 말해 이 섬에서 짐승이든 물고기든 먹고살며 뿌리박겠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돌칼을 묻어놓고 나왔을 때, 여자는 엄숙한 혼례라도 치른 듯 머리가 무거웠다.        

마룻바닥에서 일어나던 여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젯밤부터 영 떠오르지 않던 말이 마침내 생각났다. 그건 슴베였다. 칼의 뿌리를 가리키며 남자는 말했었다. 여기를 슴베라고 불러. 그 말이 이상해 무슨 베냐고 되물었던 일이 되살아났다. 손끝으로 그곳을 만졌던 기억도. 여자는 지금쯤 앉은뱅이책상 아래 잠들어 있을 남자를 생각했다. 그의 손때 묻은 서류뭉치를, 그의 돌칼을 생각했다. 이제라도 그것을 되찾는다면 어떻게 될까. 남자는 당장에 깨어날 것 같았다. 길고 고단한 잠에서 깨어난 듯 벌떡 일어나, 예전처럼 환한 얼굴로 반겨줄 것 같았다. 여자는 쉴 새 없이 엎드리고 일어섰다. 치맛자락이 빠르게 너풀거렸다. 

절 뒷마당에서 이어진 오솔길은 금방 끝이 났다. 앞은 빽빽한 수풀이었다. 마을 녹두밭에서 만난 남정네가 생각났다. 그는 산에 나무가 우거져 올라가기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컴컴한 속에서 여자는 숲을 돌아봤다. 나무와 풀을 얼마간 살피던 끝에 한곳을 응시했다. 그래도 드나드는 발길이 있는지 잔나무가 꺾여 지나갈 틈이 나 있었다. 서늘하게 스치는 풀을 헤치며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갔다. 몸에 들러붙는 축축한 나뭇잎과 거미줄을 떼어내느라 몇 번이나 멈춰 섰다. 그 어느 순간이었다. 무겁게 저벅대는 소리가 났다. 뭔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거기에는 여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곳곳에 무엇인가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짐승이라고 해도 호랑이나 곰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산돼지가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 없었다. 기껏 해야 노루나 산토끼일 것이다. 여자는 곧장 나아갔다. 한참 걷다 보니 옷자락 사각대는 소리만 들렸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셀 수 없이 지나자 나무들이 듬성해지면서 산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우뚝 솟은 나무도 보였다. 여자는 그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봐, 팽나무야. 저 위에서 가지를 뻗은 모양이 우산처럼 보이지. 굴에 올라가는 길에 남자가 일러주었다. 그때는 두 번 모두 절을 거치지 않고 마을에서 곧장 올라왔으니 근처에 갈림길이 있는 듯했다. 남자와 그 나무 아래서 쉬어가던 생각이 났지만 여자는 그대로 지나쳤다. 여기까지 왔으니 굴이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팽나무가 있는 뒤쪽은 바위가 비죽비죽했다. 남자의 손을 잡고서도 하얗게 질린 채 걸음을 떼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용기가 솟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는 미끈거리는 발을 바위에 문지르고 허리끈을 바짝 조였다. 바위 면은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웠다. 새똥 같은 것이 밟히기도 했다. 군데군데 잡초가 자라고 간혹 키 작은 철쭉과 산딸기나무가 있을 뿐 맨 바위였다. 여자는 고개를 꺾고 위를 바라봤다. 능선을 따라가다 우물 모양의 돌무지를 지나면 산 정상이었다. 그곳 네모바위 가기 전에 굴이 있었다. 남자는 굴 안 구멍에 수북이 박혀 있던 뼈를 꺼내봤다고 했었다. 여자가 거기에 처음 갔을 때는 돌칼뿐이었고 그 다음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굴에 다시 가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밤새 돌을 헤집어서라도 뭔가 찾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가는 나뭇가지를 잡고 기어올랐다. 드문드문 패인 홈을 밟고 내려왔다. 바위를 뛰어넘자 모처럼 평평한 곳이 나왔다. 비스듬한 바위 옆에는 드물게 널찍한 땅도 있었다. 여자는 거기에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즈음 빠른 발자국 소리가 났다. 건너편 바위언덕 쪽이었다. 예기치 않은 기척에 여자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고 곧 움직이는 형체가 나타났다. 갸름한 머리와 짧은 꼬리, 총총한 걸음걸이. 아니, 염소잖아. 여자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까 올라오면서 들은 것이 그 기척이었는지 몰랐다. 염소를 만나다니 뜻밖이었지만 집밖에 매놓고 키우던 것들이 산에 종종 올라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여자는 까만 염소들이 내려오는 것을 지켜봤다. 한두 마리가 아닌 걸 보면 새끼를 쳐서 숫자가 늘어난 모양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 행렬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바위 옆 공터는 순식간에 염소로 가득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을에서도 잘 눈에 띄지 않던 염소가 이곳에 다 몰려와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그 소리에 여자는 몸을 웅크렸다. 염소 떼 뒤에 웬 사람이 있었다. 중년쯤 되는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였다. 마을에서 봤음직한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가 빠진 형상이 낯설지가 않았다. 적적하던 중에 반갑기도 해서 여자는 말을 걸었다. 저, 어느 마을에서 오셨나요? 그는 여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언성을 높였다. 보시요. 염소는 지금 맨키로 산에서 뛰어놀아야 잘 크는 법이요. 그는 늙은이 같은 말투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여자가 있는 것을 진작 알았던 듯했지만 염소를 모느라 경황이 없는지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평범한 겉모습과는 달리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저렇게 염소를 많이 끌고 다니는 걸 보기는 처음이었다. 여자는 그에 관해 궁금증이 일었다. 말을 붙이려면 염소 얘기부터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모두 몇 마리나 되나요? 그는 나뭇가지로 염소를 한데 모은 후에야 여자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손가락을 꼽으며 다가왔다. 이장 집에서 다섯 마리, 학교 앞 점방 집에서 세 마리, 또 담배밭 집에서 일곱, 저그 이층집에서 열둘…. 여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었다. 동네에서 담배를 기르던 사람은 남자뿐이었다. 이젠 여러 집에 담배밭이 있는지 몰라도 남자가 염소를 맡겼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 이층집이라는 말 또한 단순하게 들리지 않았다. 동네에 이층집은 여럿이지만 꼭 남자의 후배네 집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혼자만의 생각인지 몰랐다. 여자는 고개를 흔들고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요새 사람들은 뭘 모른단 만시. 염소를 그러코롬 축사에 가둬놓고 키우질 않나, 그러다 그 꼴 난 것이제. …그 꼴이 나다니요? 순간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적 모른가? 뭔 일인지 집개들이 뵈지 않더니, 금매 산에서 겁나게 싸나워져 나타난당게. 그의 말에 따르면 그 개들이 가끔 마을에 내려오는데 그때마다 염소고 닭이고 거덜내버려 지난번에도 몇 집에서 일을 당했다는 얘기였다. 여자는 믿어지지 않았다. 전에는 그런 일도 없었거니와 아무리 개들 짓이라고 해도 떠오르는 건 집에서 키우던 발바리 강아지뿐이었다.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녀 몇 번 발길질을 했지만 뒤란의 화장실까지 따라왔던 일이 생각났다. 한밤중 외진 곳에 울리던 방울소리에 여자는 비로소 강아지를 쓰다듬어 주었었다. 그 모습이 머리에 남아 사나운 개가 어떻게 했다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사내의 이층집 아래 축사가 무슨 일로 비어 있는지 궁금했다. 남자가 사내와 함께 그 축사에서 기른다던 염소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그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막둥이도 염소를 잃어버려 영 보기 짠하더구먼. 긍께 나가 대신 여기서 돌보는 것이요. 녹두밭하고 담배밭 일도 거들고.

여자는 소스라쳤다. 왜 여태 몰라봤을까. 그는 아까 녹두밭에, 아낙 옆에 있던 그 남정네였다. 길을 물으면서 그가 산 사정을 잘 아는가보다 여겼지 여기서 또 만날 줄은 몰랐다. 거기다가 우리 막둥이라니, 그렇다면 그와 아낙은 막내인 남자의 밭을…. 그제야 담배밭이며 녹두밭이 잘 가꿔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낙이 새 아그라고 한 것 역시 예삿소리가 아니었다. 새삼 아낙의 떨떠름한 눈빛이 되살아났다. 여자가 남자의 집에서 살았던 일을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남자를 따라 온 것부터 그에게 담배나 더 키우라고 타박한 일이며 매일 칠성각에 올라갔던 일, 그리고 남자 곁에서 떠난 것까지. 여자가 큰 잘못을 저지른 듯 어쩔 줄 모르는 사이, 그는 이리저리 다니며 염소 모으기에 바빴다. 뿔이 긴 것과 새끼를 무리 속에 집어넣고 돌아와 그가 불쑥 물었다. 이녁이 간다는 데가 어디요? 그가 여전히 말을 높이자 여자는 몸 둘 바를 몰랐다. 말끄러미 쳐다보는 그에게 여자는 산꼭대기 춘택이 굴에 간다고 대답했다. 남자가 말하던 돌칼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한결 수굿한 얼굴로 그 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보로시 갈 수 있을래나 모르겠구먼. 그짝엔 개들도 많고…. 자꾸 무슨 개가 있다는 건지 의아했지만 없는 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굴에 갔다가 까딱하면 개한테 물리기 십상이라는 거였다. 남자하고 한동네 사는 이도 접때 크게 당했다고 했다. 불현듯 남자의 후배가 떠올랐다. 메똥밭에서 봤을 때 그는 웬일인지 다리를 절고 있었다. 대체 개한테 당한 게 누구냐고 여자가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염소들이 울음을 내뽑으며 뒷발질을 했다. 그 통에 잘 들리지 않았지만 능선 너머에서 분명히 무슨 소리가 났다. 바람에 바위가 울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왜 저런다냐, 암만해도 개들이 오는 갑서. 그는 황급히 바지춤을 뒤졌다. 그가 내민 것을 여자는 얼떨결에 받아들었다. 손바닥만 한 게 꽤 묵직했다. 나가 밭에서 주은 거인디…. 여자는 손에 든 물건을 멍하니 내려다봤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돌칼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찾는 것과는 달랐다. 그보다 훨씬 작고 생김새가 매끈했다. 거기에 손잡이까지 달려 있었다. 암튼 그거라도 갖다주라고. 그 말을 남기고 그는 염소무리에게 달려갔다. 여자는 칼을 받아든 채 그의 뒷모습을 좇았다. 고개를 빼고 서 있는 동안 바위 아래에서 그가 손짓을 해보였다. 잘 다녀오라는 것도 같았고 어서 피하라는 것도 같았다. 여자는 그를 향해 깊이 몸을 조아렸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도 염소도 보이지 않았다.

허리춤에 칼을 차니 제법 든든했다. 개가 달려들어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칼이 달그락거렸다. 남자가 들려줬던 말들이 귓전에 드나들었다. 알고 보면 돌칼도 여러 가지야. 크게 나누면 손잡이가 있느냐 없느냐, 또 혈구 즉 핏자국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분류되지. 우리가 본 것처럼 칼에 손잡이가 없는 대신 슴베가 있고 거기에 혈구가 있으면 유혈구 유경식 석검이라고 불러. 돌칼이 널리 사용된 청동기시대에는 반달돌칼도 있었어. 풀이나 농작물을 자르던 칼인데 둥그렇게 날을 세우고 거기에 끈을 묶어 썼지. 그때 여자는 그걸 언제 다 알아봤나싶어 감탄을 했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얻어들은 것도 있을 테고 늘 책을 끼고 사니 그랬겠지만 돌칼 얘기만 나오면 정색하고 말을 늘어놓던 남자가 생각나 픽 웃음이 나왔다.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능선에 올라섰다. 지세는 더욱 험했다. 왼쪽은 절벽으로 그 거리는 발치에서 한두 뼘밖에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오른쪽은 비교적 완만했지만 관목과 넝쿨이 빼곡히 들어차 발을 디디기 힘들었다. 바람까지 몰아쳐 치맛자락이 사방으로 펄럭였다. 여자는 옷을 움켜쥐고 발을 내디뎠다. 거친 바위를 맨발로 올라온 탓인지 감각조차 없었다. 헛디디지 않도록 절벽 아래를 흘끔거리며 얼마큼 걸어왔을 때였다. 앞에 낯익은 형체가 나타났다. 예전에 기우제를 지냈다는 우물 모양의 돌무지였다. 굴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여자는 그 주변과 산 아래를 여유롭게 둘러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서둘러 능선 아래 수풀로 들어가야 했다. 점점 다가오는 거친 숨소리와 낑낑대는 높고 낮은 울음소리. 저 앞에서 개들이 그악스럽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좀 전에 염소를 만나더니 이번엔 개였다. 방금 그에게서 들은 소리가 맞는 듯했다. 집개들이 산으로 와서 아주 사나워졌다는 말처럼, 놈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것들이 민가에서 닭이며 염소를 죽이고 잡아갔으며 한동네 사람도 개한테 당했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엉겁결에 여자가 꺼내든 돌칼 때문인지 거친 넝쿨 때문인지 개들은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여자는 한편으로 기가 막혔다. 누렁이와 셰퍼드, 발바리, 스피츠, 정말이지 온 동네 개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귀가 멍멍한 속에서 여자는 놈들을 살펴봤다. 그 가운데 까만 강아지가 있는지 눈여겨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검은 구름 뒤에서 이지러진 달이 낮게 모습을 드러냈다. 먼 산등성이 쪽에서는 벌써 푸르스름한 기운이 번져오는 것 같았다. 개를 피해 수풀로 들어오긴 했지만 나뭇가지가 정강이까지 차올라 걸음을 뗄 수 없었다. 여자는 돌칼을 들어올렸다. 날이 보기보다 예리했다. 서툰 칼질에도 넝쿨과 잔 나무가 어렵지 않게 잘려나갔다. 발아래는 아까부터 무성한 이파리에 묻혀 잘 보이지 않았다. 개 짓는 소리는 계속 따라왔고 그 와중에 여자는 굴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전에 왔던 곳이 아닌데다 보이는 건 나무뿐이어서 어느 방향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쿵 소리가 났다.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절을 지나 숲에 들어섰을 때, 저벅대는 기척이 났다. 저 아래에서 염소들이 갑자기 뒷발질을 했을 때에도 분명 뭐가 울렸다. 이번에는 쿵쿵대는 소리였다. 같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무엇인가 계속 따라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울림이 점차 잦아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그때서야 바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네모바위가 바로 코앞이었다. 어느 결에 산 정상까지 온 것이다. 굴을 지나버렸잖아. 여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개떼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능선을 따라왔을 테고 벌써 굴을 찾았을지 몰랐다. 여자는 곰곰 기억을 되짚었다. 전에 굴에 가면서 거의 기다시피 넘었던 바위가 생각났다. 바위 폭이 좁고 중간 중간 끊어져 있는 곳으로 굴은 거기서 가까웠다. 굴만 찾을 수 있다면 그 징검다리 같은 바위도 한달음에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 지나쳐버렸으니 거꾸로 내려가면서 굴 초입 내리막을 찾아야 했다.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언덕 뒤편에 징검다리 바위가 있을 것이다. 여자는 수풀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섰다. 벼랑 앞에 서서 저만치 굽어 도는 곳을 살폈다. 바위 모양과 수풀의 지형을 가늠하고 있을 즈음, 또다시 그 소리가 났다. 아까보다 요란해서 바윗돌이 굴러 내리는 것 같았다.  

무슨 소리가 나든 말든 여자는 부지런히 굴만 찾았다. 우뚝 멈춰선 것은 능선 옆 볼록한 언덕을 발견했을 때였다. 뒤편에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바위를 보고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끼고 내려가면서 여자는 확실히 들었다. 그것은 바윗돌 메치는 소리였다. 굴 부근이나 아래쪽 어디서 울려오는 것 같았다. 설마 굴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다가 여자는 불현듯 옆의 벼랑을 쳐다봤다. 남자는 말했었다. 저 위에서 춘택이가 짐승을 떨어뜨려 잡아먹었다지. 말 같지 않던 그 소리가 되살아났다. 아까 메똥밭에서 엿들었던 얘기도 떠올랐다. 옛날 저그 산에서 춘택이가 내려와 개를 잡아갔다드만….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벼랑에서 떨어뜨렸다는 짐승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개는 아니었는지 하고. 넝쿨이 길게 늘어진 벼랑 아래는 굴이었다. 한층 요란한 굉음이 귀를 울렸지만 여자는 걸음을 재촉했다. 갈수록 벼랑이 높아지면서 이윽고 굴 입구가 보였다. 여자는 휘둥그레졌다. 설마 하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굴 주변은 잔뜩 널린 바윗돌로 어지러웠다. 그뿐 아니라 크고 작은 돌덩이가 밖으로 튕겨 나오는 중이었다. 누가 굴에 들어가 그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단번에 돌을 집어던지는 걸 보면 무척 힘이 셀 것 같았다. 여자는 조심조심 다가갔다. 입구부터 넓어진 것이 그때 모습이 아니었다. 여자는 고개를 빼고 굴 안을 살폈다. 바닥의 넙적한 바위는 그대로였지만 주변에 박혀 있던 바위들을 죄다 들어내 널찍했다. 게다가 한쪽에 깊숙이 뚫린 곳도 있었다. 여자는 발치의 돌 더미와 왠지 휑하게 느껴지는 굴 안을 번갈아 바라봤다. 굴을 다 들어내는 중인지, 새로 짓는 중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쾅 쾅, 소리는 새로 뚫린 곳 안쪽에서 났다. 뭔가로 바위를 내리치는 소리였다. 여자는 한동안 거기에 귀 기울였다. 굴의 주인이 다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돌아와 곳곳을 손보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돌덩이가 날아왔다. 옆으로 피하려던 여자는 지레 놀라 엎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깨진 듯했지만 안의 기척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자는 숨을 멈추고 일어났다. 그 자가 눈치 채지 않게 굴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돌칼을 가져가려는 것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았다. 굴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거기 누구야! 갑작스런 소리에 여자는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힘이 센 것처럼 목청도 커서 귀가 다 먹먹했다. 씩씩대는 숨소리가 나더니 다시 돌이 날아왔다. 여자는 몸을 움츠리고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저기, 담배밭집 새댁인데요. 뭐라고? 난 그런 거 몰라. 자꾸 이상한 말만 할 거야!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서슬에 굴 밖으로 물러났지만 그래도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여자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났나요? 한동안 잠잠하던 끝에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오니까 엉망이야. 집도 무너지고, 내 물건도 훔쳐가고…. 여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무슨 물건을 훔쳐갔는데요? 잠시 후, 쿵 주저앉는 소리가 나면서 기이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뜻밖의 반응에 여자는 눈만 굴렸다. 크 흐흐흐…내 밥그릇…내 칼…다 없어져 버렸어! 가만히 듣다 보니  웬일인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새삼스레 빈손과 얇은 옷자락을 내려다봤다. 밥그릇을 본 지 참으로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참 서럽게 울먹이더니 남아 있는 것은 도끼 몇 자루뿐이라고 했다. 순간 여자는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았다. 찾고 있는 건 도끼가 아니었다. 칼이었다. 그에게 그럴 리 없다고, 그때 돌칼을 고이 모셔놓고 왔다고 항변하고 싶었다. 안에서 와지끈 돌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개도 잃어버렸다, 개만 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외쳤다. 여자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개를 잡아먹었다면 모를까 개를 잃어버렸다니. 조금 전 우물가에서 만났던 개들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하는 짓이 개 같지 않았다. 짐승처럼 온 산을 쏘다니며 바위틈이나 굴에서 사는 놈들 같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굴에 칼이 없다는 것, 남은 거라고는 도끼 몇 자루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굴 밖 돌 더미 위에 여자는 풀썩 주저앉았다. 머릿속에는 그게 누구 짓인지, 누가 굴에서 돌칼을 가져갔는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저만치 한쪽으로 기울어진 달이 눈에 비쳤다. 주위에는 어느새 부윰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밤새 돌아다녔건만 이제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자는 발치에 널린 돌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돌은 누렇거나 검거나 벌겋거나 하얀 빛이었다. 둥글거나 모나거나 넓적하거나 길쭉한 모양이었다. 할 수 있다면 그것을 갈아 돌칼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여자는 하나를 집었다가 소스라치듯 내팽개쳤다. 돌인지 뼈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기다란 것이 흡사 정강이뼈 같았다. 잠시 후 다시 들여다봤을 때,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뼈가 아닌 다른 것으로 보였다.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니 돌칼이나 도끼처럼 돌을 갈아 만든 게 분명했다. 별달라 보였던 건 그 때문인 듯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찾고 있는 칼이 아니었다. 그것은 등성이를 따라 날이 세워져 있고 자루에 묶도록 슴베가 달려 있었다. 지금 들고 있는 것은 그보다 한결 투박한데다 모양부터 달랐다. 다시 말해 한쪽 끝은 둥글고 다른 한쪽은 밋밋했지만 양쪽 모두 날이 있었다. 가운데를 자루에 끼우면 영락없는 도끼날이었다. 그런 것을 보기는 처음인데도 낯설지가 않았다. 어쩌면 남자가 뒤적이던 책자에서 비슷한 것을 봤는지 몰랐다. 여자는 굴 안을 넘겨다봤다. 남아 있는 건 도끼 몇 자루뿐이라던 그자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저 안의 돌멩이와 함께 휩쓸려 나온 것 같았다. 여자는 후딱 일어나 허리춤에 그것을 찼다. 허리에는 돌도끼뿐 아니었다. 남정네가 준 돌칼도 있었다. 그의 말이 들리는 듯했다. 우리 막둥이하고 한동네 사는 놈도 굴에 갔다가 개한테 당했당게. 여자는 결심한 듯 발을 내디뎠다.

허리가 묵직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걷는 게 아니라 풀쩍 풀쩍 뛰어넘는 것 같았다. 어느덧 하늘이 푸릇해지면서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눈이 부신 때문인지 팔이며 다리가 희미해 보였다. 여자는 조바심이 났다. 남자에게 돌아가기 전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메똥밭 아래 이층집이었다. 유난히 돌이 많았던 집이었다. 금방이라도 돌칼을 찾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어서 집에 돌아가 허리춤의 돌칼과 돌도끼도 보여주고 싶었다. 남자의 얼굴이 눈앞에 어렸다. 길고 고단한 잠에서 막 깨어나, 고르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남자에게 달려가듯 여자는 까마득한 절벽을 뛰어내렸다.<끝> 

 계간  리로피아(07.봄호) 발표
 고향 금산에 관한 작품이라 올립니다

  • ?
    오팔공오일오 2007.08.13 12:20






    읽는동안 지루히실까봐 음악 깔아놓고 갑니다 나름으로 신경쓰고 갑니다 오라바님~~~

  • ?
    김승훈 2007.08.13 14:54
    사돈(작크)!
    형님과 형수님께선 건강하시쟈...
     
    일찍도 출근 하셨구먼..
    오전 내내 비설겆이로 온 몸이 파김치...
    그리고 소들의 먹이가 없어서 비가와 진 밭에가서 강냉이를 베어 오느라
    지치고 지친 몸을 이곳에다 내려 놓고
    형님(자네 오라버님,네겐 사장 어르신)의 자상한 마음을 읽고 가네..
    진즉 내가 올리려고 했는데 형님께 죄송하구먼...
    가끔은 형님께서 보내신 책 속에서 형수님(여기서 형수님은 위 소설의 저자임)의 작품을 찾아 자랑스럽게 읽곤 했었는데..
    온 라인에서 읽으니 새롭구먼..
    참고로 작품의 제목인 슴베는
    칼, 괭이,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라네..
    알고있제...


  • ?
    작크우먼 2007.08.14 07:34
    어이친구~~!
    하늘이 염치도 없이 들이 대구만....
    오늘도 서울 이곳 하늘은 비가 줄줄 새네야~!
    지금쯤은 고추,깨. 우리의 농산물이 태양의양분을 흠뿍 들이 마셔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것 같은데 하늘이 원망스럽네야
    도회지에 산 우리네야 씬한 빗줄기 이니까 자네처럼 간절함이 없지만 비좀 그만 왔으면 하고 바래보네

    이글은 울고향 용두봉 춘태기굴을 배경으로 한 글이라네
    올케언니가 울엄마의 전해져 내려오는 애기를 귀담아서 탄생한 글이라서 거금컴에 올린글
    긴글을 읽니라고 수고하신분들 큰얻음이 있었다면........
    울올케언니 글쓰는데 큰힘으로 보탬이 되여 울친정엄마 용돈이나 두둑히 보너스로 드렸음...............^_*

    참고로 올케언니는 2005년 신춘문예에 소설부문에 당선된 저력이 있는사람이라네
    친구도 소설속의 등장인물로 나온것 같던데.....
    암튼 고향의지킴이. 골몰의 지킴이. 꼴베러 가셨는감? 
    튼실한 샹치새끼들을 위하여 화이팅~!자네야를 위한 화이팅일세~!또 봅세 
  • ?
    박성준 2007.08.14 09:57
    언젠가 동네 후배의 글을 통해 춘택이 굴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는데
    오늘 그 전설의 재료가 소설로 태어났음을 보고 기쁨을 금치 못합니다.
    잔잔히, 그리고 넉넉한 언어들로 채워진 탄탄한 글을 접하면서
    아, 거금에 연관된 또 한분의 실력자를 뵙는구나 싶어 감사하고 마음의 기쁨을 누립니다
    풀어내고 펼쳐놓은 글밭에 마음을 두게 하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출산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충분히 느끼며 힘찬 박수를 보내드림니다.
    더욱 좋은 글 많이 쓰시고 늘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승훈이 동상!
    일전 고향에서 잠깐 이나마 얼굴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네.
    그날 밤에 넘어오지 않구...힘들고 피곤하리라 생각되긴 했네만.
    함께 자리하고 싶은 마음도 많더이.
    돌칼, 돌도끼 날 잘 세워서 자네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좋은 글 많이 쓰시기 바라네.
    갈고 닦는만큼 빛으로 드러날 터이니...
    인내하며 끈기있게 자신을 갈고 닦음으로써만 열매가 되고 향기가 되리라 여겨지네.
    위의 소설도 그 결과물임에 틀림없기에
    더욱 그 고통이 이해된다 말하게 되는 모양일세
    작크님 건강하시길 빌며. 이정운 님께도 주정안님께도 박수를 보내드림니다.
  • ?
    달그림자 2007.08.14 13:29
    정운 친구야!
    오랫만이네
    언젠가 서울에서 보고 이제서야  이렇게 이 곳에서
    인사를 나누네그려.
    그리고 시댁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풀어놓은 자네의 옆지기 주여사님께 박수를 보내며
    건필을 기원하네

    이젠 얼마남지 않았지만
    나도 정년 후엔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모옥 몇 칸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집필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네
    아무튼 반갑고
    앞으로 같은 길을 가야할 사람으로서
    더 많은 이야기들 나눌 수 있기를 바라네

    승훈이 성준이도 다녀갔구먼
    건강하시고
    작크우먼도 안녕....*^^* 
     
  • ?
    헌장 2007.08.14 17:56
    거금도에 이런 굴이 있었다니.....
    꼭 한번 들리리라 생각합니다.
    춘태기의 굴 마침,제가 다녀 온 기분이구요.
    담배 잎사귀도 만져보고, 메똥밭도 가보고, 소똥도 볼 수 있고,
    영클어진 풀을 헤집으며 돌무더기에 걸려 넘어지면서....
    고생하셨겠구나! 으쓱해서 울기도 하셨다니,
    이 몸도 풀섶에 앉아서 엉엉 울 것 같네요.
    좋은 글 내려 놓아 기쁘고 자랑스럽니다.
    마구마구 응원을 보내드리면서....
    온 몸과 마음을 쥐어 짤때마다 오라버님께서 큰 힘이 되어 주시리라...
    정안 올케언니! 수고 많으셨어요. 건필 하시길 바랍니다.
    승훈친구!
    자네집이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하늘이 닿을 둣한 곳,
    아름답고 맑은 곳에 자리잡고 있군.
    날마다 분망한 일과속에서도 돌칼들 잘 문질러서 땅의 숨결을 파헤치길 바라네.
    고향을 찾을땐 자네집엘 꼭 한번 들리고 싶어.
    여름 마무리 잘 하고..짝꿍님도 건강하시길...
    성준선배님!달그림자선배님!
    반갑습니다.
    더운여름 마무리 잘 하시구.건필 하십시요.
    작크야! 부럽네이...그리고 장하다. 올케언니께 뜨거운 마음으로 박수를.....
    엄니 용돈이 날마다 두둑해 지시겠는데... 지금부터선 용돈 걱정 안해도 괜찮지 않겠니?
    여름 잘 보내...
  • ?
    처련 2007.08.14 22:14
    아, 물 한컵을 놓고도 감사할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게하소서.
    내 마음의 꽃밭에 핀 감사의 꽃향기가
    사랑하는 당신의 가슴을 어루 만지게 하소서.
    이렇둣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意味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거금도를 향한 테마와 프레임이 눈에 보듯 확연합니다.
     
    항구를 떠나지 않는 배는 배가 아니랍니다.
    비록 작은 조각배일지라도
    거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어야 하며
    힘들지만 심한 파도와 싸워야 배입니다.
    아무것도 도전하려 하지않는 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자와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글 올려주신 이정운님/ 작가이신 주정안님, 
    달그림자/준 선배님, 
    관포지교(管鮑之交)인 쟈크/헌장/승훈님
    오랫만에 인사 올림니다...
  • ?
    이정운 2007.08.16 07:22
    나의 내면 모습은 어떤 색과 모양으로 바뀌어 가고 있을까?
    어떤 미물은 죽을 때 머리를 고향을 향하고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경이로운 세월 앞에 백치처럼 살아 오다 이제 종착역에 다다름을 느길 때
    고향에 대한 향수가 수시로 가슴을 저미어 오곤 하지...
    잊지 않고 찾아 준 친구 월용이 언젠간 내고향 금산에서 뵐 날이 있겠지
    항상 좋은 작품을 올려주신 박성준님  많은 마음의 양식을 쌓고 있습니다
    그리고 헌장님 처련님 좋은 조언 전해드리렵니다
  • ?
    이정운 2007.08.22 06:41













    반갑습니다
    주정안입니다
    긴 글 열심히 읽어주시고
    짬을 내어 답글 올려주셨네요
    이곳 동아리에서 새로운 감동이...
    촌의 분주한 일과를 실감할 수 있었고
    재미난 말발에서 상큼하고 넉넉한 정을
    또 따뜻한 격려를 받으며 맘이 묵직했습니다
    작년 여름 용두봉에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금산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건 이정운님 덕분이지요
    바다 산 들의 향기 섬에 담긴 이야기, 그곳 동네가 그립습니다 
       
  • ?
    박성준 2007.08.24 07:32
    참 멀기도 한 곳입니다.
    비포장 길이라 수십번은 물었음직한 말, "아직 멀었어."
    결혼직전 고향엘 가는 길에 제 안사람이 하던 말이 아직도 또렸합니다.
    그곳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직도 고향에 잘 다니시는 모든
    부부들에게 박수 갈채가 울려지길 바랍니다.
    이정운님과 주정안님의 삶도 그런 삶이리라 여겨져 좋씁니다.
    알콩달콩 살아가실 것만 같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나이들어 가면서 부부가 함께하는 일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듯 합니다.
    언제나 행복하고 멋지게 나이들어 가시길 빕니다. 행복하소서.
    달그림자님, 작크, 헌장, 처련님도 복된 삶 누리시고
    주정안님께도 더욱 감동적이고 좋은 글들- 주옥 같은  
    명작들 많이 출산하시길 빕니다.
  • ?
    작크우먼 2007.08.25 13:03
    무덥디 무더운 여름도 저만큼 물러나고 계절의 민감함은 여인들의 옷자락에서 온다네요
    백화점의 윈도우의 가을맞이 채비는 끝난지 오래됐고
    여름옷은 바겐세일로.... 가을이 계절의문턱에 다달았나 봅니다
    아침마다 불어오는 바람은 청명한 가을의 바람입니다
    긴글 읽어 주심에 감사 드리며 오셔서 댓글로 힘을 실어주신
    달그림자선배님.박성준오라버님.감사합니다
    작크의 관포지교.승훈.처련.헌장.그대들을 얻음에 감사합네다
    무더운 여름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종 종 뵙겠습니다
    오빠가정에도 좋은날만 가득하시길....올케언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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