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를 계속 진화시켰다. 프로인 이상 나만의 쇼맨십이 필요했다. 선수들은 링 아나운서가 입장 멘트를 날리면 별의별 표정을 다 짓거나, 각종 특색을 띠고 링으로 올라온다. 토끼처럼 로프를 껑충 뛰어오르는 선수, 로프를 앞뒤로 잡아당기며 마치 힘 자랑하듯 올라오는 선수, 그리고 나처럼 몸을 숙인 후 얌전히 링으로 들어오는 선수 등 참 다양하다.
또 링 아나운서가 선수를 소개하면 펄쩍펄쩍 뛰면서 자신을 어필하는 선수, 제자리에서 손만 드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주먹으로 상대방을 가격하겠다고 몸짓을 하는 선수도 있다. 난 오른손만 들 뿐이었다. 오른손을 든다는 것은 파이팅 의미와 승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물론 팬들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면 양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소개가 끝나면 이마를 한 번 만진 후 링을 가볍게 돈다. 그때 눈은 상대 선수에게 꽂히도록 했다. 이윽고 원폭 가운을 벗는다. 그때 팔이 빠져나오면 휙 던진다. 그 다음 목에 건 수건도 같은 식으로 멀리 던진다.
난 레슬링 경기 때마다 매번 이런 모습으로 관중에게 나타났다. 어찌 보면 별 특징도 없고 밋밋하지만 팬들은 그렇게 링에 오르는 모습에 매료되기도 한다.
난 또 나만의 법칙이 있다. 상대에게 먼저 공격 당했을 때 한 번 맞고선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두세 번 정도는 맞아야 쓰러진다. 맞는 데 이골이 난 내가 한 대 맞고 쓰러진다면 말이 되겠는가.
나와 한판 승부를 겨루는 선수들도 버릇이 있다. 항상 나의 머리를 만진다. 그리고 내 머리가 수박도 아닌데 톡톡 친다. 더러는 주먹으로 내리찍듯이 치는 선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 번 받을 수도 없고 …. 그들은 이렇게 당부한다."제발 세게 받지 마세요" 그러면 난 피식 웃고 만다.
난 나를 가장 어필한 것이 빡빡머리가 아닌가 싶다. 삭발하지 않은 나의 머리를 상상해 봐라. 그러면 '박치기왕' 김일이란 이미지가 떠올려질까. 나도 한때는 머리가 길었다. 머리가 길면 경기를 할 때 거추장스러워 밀었다. 또 박치기를 하면 당했던 사람은 그 보복으로 머리카락을 뽑듯이 잡아당긴다. 그래서 머리를 민 것이다.
난 매 경기를 할 때마다 머리에서 피가 났다. 난 그때 사람의 몸이 참 신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물가 물은 마를 수 있지만 사람의 피는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가 않았다. 경기를 끝낸 후 습관적으로 머리를 만질 때 손에 피가 묻지 않으면 경기를 덜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경기에서 박치기를 한 횟수는 어느 정도인가?" 프로레슬링 입문 이후 링을 떠날 때까지 3000회 경기를 치렀다. 그때마다 평균 열 차례씩 박치기를 했으니 계산하면 박치기를 몇 번 했는지 나온다. 숫자상으론 3만 회나 박치기를 한 셈이다. 여기에 연습까지 합치면 나의 박치기 횟수는 5만 회 이상 되지 않을까 싶다.
난 박치기 후유증으로 지금은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수만 번 박치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히 살아 있는 내가 신기하다. 난 솔직히 나의 머리를 해부하고 싶었던 충동도 느꼈던 적이 있다. 도대체 사람의 머리가 돌보다 더 단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 아무리 단단한 돌도 수만 번 충격이 가해지면 쪼개지게 마련이다.
나의 머리가 쪼개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난 쪼개진 적이 있다. 그 머리로 박치기를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느껴진다. 1962년 가을쯤, 박치기가 일본 전역에서 맹위를 떨칠 무렵이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 못해 기절했다. 정신을 차린 후 겨우 병원엘 갔다. 의사는 박치기 사형 선고를 내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