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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8]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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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도 말했던 기억이 있다. 차량과 차량이 부딪쳤을 경우 어느 쪽이 더 피해를 입을까. 당연히 양쪽은 똑같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탱크와 부딪쳐도 마찬가지다. 탱크가 손상이 없다고? 천만에 자국이라도 남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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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인 선수와 대결할때면 그들은 나의 박치기 위력을 알아서 그런지
내가 머리만 갖다대면 젖먹던 힘을 다해 손으로 밀친다.



프로레슬링은 실로 다양한 기술이 있다. 응용 타격기(Practical-Based Hitting Move)·슬램 계열(Slam Move)·스플렉스 계열(Suplex Move)·드롭 계열(Drop Move)·버스터 계열(Buster Move) 등 수백가지다. 아마도 이중 공격자가 가장 후유증을 앓는 기술이 박치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받든 상대가 받든 최후 승자는 누가 그 아픔을 참고, 끈기를 갖고 견디느냐다. 사각의 링에서 리기 왈드와의 박치기 대결은 자존심을 건 혈투였다. 받고 받힌 후 충격이 있다고 해서 몸을 움찔하면 상대방에게 기선을 제압당한다.
 
리기 왈드의 머리도 돌덩이나 다름없었다. 스승 역도산의 가라데 촙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그였는데 박치기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받았던 나도 그렇게 정신이 몽롱했고, 골이 띵했는데 그는 오죽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는 인내심으로 참고 참았을 것이다.
 
열번 찍어 넘어 가지 않은 나무가 없듯, 나의 박치기가 그의 이마에 수차례 명중하자 그는 서서히 힘을 잃기 시작했다. 머리를 뒤로 젖힌 후 박치기를 하면 그의 몸은 로프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어 다시 박치기를 하면 그는 링밖으로 나자빠졌다. 난 마치 투수가 강속구를 던지듯 그 강속구를 그의 머리에 맞힌다는 일념으로 박치기를 해댔다. 양손으로 머리를 잡으면서 링으로 올라오는 그를 향해 수차례 받았다.
 
박치기만큼 실천적이고, 관객에게 아픔이 전해지는 기술은 없다. 관객들은 박치기를 하면 자신의 머리가 아픈 것 같은 시늉을 했고, 상대방이 넘어지면 통쾌해 했다. 링은 함성의 도가니였다. 그에게 박치기를 하려고 하자 한 손은 머리를 감싸며, "노! 노!"하고 외쳤다. 그때 공격의 끈을 늦추면 역습 빌미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사정없이 더 매섭게 몰아쳤다.
 
박치기로 끝을 내고 싶었다. 몸을 뒤로 젖힌 후 점프를 한 상태에서 정수리를 그대로 받았다. 마치 사마귀처럼. 그리고 보디슬램 기술로 그를 매트에 꽂았다. 육중한 그의 몸이 매트 위로 '쿵'하고 떨어졌다. 그는 스리 카운터까지 일어나지 못했다. 완승했다.
 
이날 관중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박치기를 좀 한다는 서구 레슬러들은 고작 목만 약간 뒤로 젖힌 후 받는다. 하지만 그런 박치기는 초등학교 애들에게는 충격을 줄 순 있었지만, 거구들에겐 안 통했다. 내가 사마귀 권법같은 박치기를 전매 특허 기술로 만든 것은 상대방에게 극대화된 충격을 주기 위해서였다.
 
나의 이 박치기는 사마귀 권법이지만 사실은 평양박치기를 본 뜬 것이다. 평양박치기의 위력과 강도는 익히들어 알고 있었다. 공중에 붕 뜬 후 상대방을 향해 몸을 미사일 처럼 날려 받는 것이 평양박치기가 아닌가. 이런 박치기 한방을 맞으면 제 아무리 장사라도 나자빠지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일본 관중들은 그런 박치기를 처음 본 것이다.

경기가 끝나니 일본 언론들이 라커쪽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박치기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 박치기 기술은 뭐냐" "당신은 아프지 않느냐"
 
내가 거구의 선수들을 향해 들이받는 박치기 기술은 언론에 대문짝 만하게 보도했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나의 박치기를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지는 것과 흡사하다고 해서 히로시마 원폭 즉 '원폭박치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나의 닉네님은 졸지에 '원폭'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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