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5]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박치기가 주특기였던 리기왈드의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내 머리는 성한 곳이 한 군데가 없었는데 그의 이마도 나 못지않았다. 그는 흑인이었다. 검은 피부는 윤기가 날 정도로 좋았다. 딱 벌어진 어깨·험상궂은 인상, 이것은 그가 열심히 훈련했다는 증거이자 전형적 레슬러로 비쳤다.


pho_200606270858470501000005010100-001.jpg
↑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은 미국인 선수인데,
그는 내가 박치기를 하려고 하자 입을 쩍 벌리고 되레 겁먹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빈틈없이 보였다. 프로레슬러로서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난 그와 경기를 앞두고 '이길 수 있을까'내심 걱정했다. 그는 스승 역도산과의 경기에서 박치기를 퍼부어 스승을 곤경에 빠뜨렸다. 스승은 그와 무승부를 기록, 간신히 타이틀을 방어했다. 스승으로선 최악의 경기를 펼쳤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그는 최고·최강이었다.
 
스승은 그와 경기에서 수차례 박치기를 허용했다. 이에 가라데 촙을 날렸지만 그는 끄떡도 없었다. 그의 거친 경기에 화가 잔뜩 났던 스승은 의자로 머리를 쳤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멀쩡했다. 도리어 의자가 박살났다. 박치기로 유명했던 보보 브라질을 비롯 수많은 돌머리들을 상대해 왔지만 리키 왈드처럼 단단한 머리를 상대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스승을 이기고 싶어했다. 무승부에 이어 두 번째의 경기에서도 패했지만 다시 도전을 신청했다. 역시 다음 경기에서도 승리는 스승이 차지했다. 그가 잇따라 도전을 신청하자 스승은 나 보고 한 번 붙어 보라고 했다. 스승은 내 머리가 더 돌인지, 그의 머리가 돌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난 그와의 경기에서 처음엔 걱정도 많이 했다. 그에게 이기면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져도 본전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세계적 레슬러를 상대로 한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 경기는 누구의 머리가 센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었다. 일본 언론들은 동양의 해머와 서양의 해머의 한판 대결, 누가 셀까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었다. 난 이마를 더 번쩍이게 하기 위해 로션을 듬뿍 발랐다. 오늘 내 골이 쪼개져도 반드시 이기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다짐을 하니 그에게 주눅들었던 마음이 사라졌다.
 
난 그의 경기를 분석하면서 약점을 발견했다. 그는 빨리 흥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은 그에게 약을 올려 힘을 빼게 한 다음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활화산처럼 불타오를 듯한 그의 성격은 나의 작전에 딱 걸려들었다.
 
그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만진 후 나의 이마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양손으로 박수 치는 시늉을 했다. 박치기로 한판 붙자는 제스처였다. 난 링을 빙글빙글 돌며 그런 그에게 네가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한 다음 재빨리 다가가 한 대 툭 쳤다.
 
그가 약오르기 시작했다. 돌진해 들어왔다. 그때 안다리를 건 후 매트위로 던졌다. 링에 올라올 때만 해도 나를 죽일 태세였지만 여러 차례 공격을 당한 후 나를 만만치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난 순간적으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넘어진 뒤 곧바로 일어나는 그에게 박치기를 했다. 웬일인지. 그는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을 뿐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스승의 가라데 촙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것에 견주어 보면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난 표시는 내지 않았지만 당황했다.
 
나의 박치기 한 방으로 체육관은 흥분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관중들도 누구의 머리가 돌인지 "박치기! 박치기!"를 연호하며 대결을 원했다. 나의 박치기 한 방을 맞은 그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한 번 더 받으라는 시늉을 했다. 두 번, 세 번 받았다. 이어 그도 받았다. 우린 소처럼 머리를 맞댄 후 서로를 받았다. 그와 나의 박치기 소리는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나의 이마는 어느새 분홍 색조를 띠면서 부어 올랐다. 정신마저 몽롱해졌다.<계속>


 

?

  1.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2]

    '투혼과 투지가 없는 자는 프로 레슬링계에서 떠나라!' 이것은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온 스승 역도산의 지론이다. 나 역시 이 지론에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한국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면서 강조했던 것이 투혼과 투지였다. 레슬링 선수에게 이 두 가지가...
    Views2137
    Read More
  2.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3]

     스승 역도산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 프로야구 후배 선수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프로야구 선수 중 거인이 한명 있다. 그는 목욕탕에서 넘어져 팔이 부러졌다.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그를 방출했다. 그는 다이요팀으로 이적하려고 했는데 성사가 안돼 ...
    Views2190
    Read More
  3.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4]

     나·자이언트 바바·안토니오 이노키·맘모스 스즈키. 스승 역도산은 프로레슬링의 또다른 흥행을 위해 '신 4인방 체제'를 구축했다. 네 사람중 가장 연장자는 나였다.   하지만 냉혹한 프로레슬링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나이는 숫자일뿐이고 경쟁에선 나...
    Views2098
    Read More
  4.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5]

     박치기가 주특기였던 리기왈드의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었다. 내 머리는 성한 곳이 한 군데가 없었는데 그의 이마도 나 못지않았다. 그는 흑인이었다. 검은 피부는 윤기가 날 정도로 좋았다. 딱 벌어진 어깨·험상궂은 인상, 이것은 그가 열심히 훈련했다는 ...
    Views1942
    Read More
  5.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8]

     전에도 말했던 기억이 있다. 차량과 차량이 부딪쳤을 경우 어느 쪽이 더 피해를 입을까. 당연히 양쪽은 똑같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탱크와 부딪쳐도 마찬가지다. 탱크가 손상이 없다고? 천만에 자국이라도 남게 마련이다. ↑ 서양인 선수와 대결할때면 그들...
    Views2342
    Read More
  6.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7]

     1977년 세계 오픈 선수권 시리즈 중 하나인 제4회 히로시마 대회가 히로시마경기장에서 열렸다. '히로시마 원폭'이라 불렸던 내가 출전하는 경기라 언론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빠뜨리지 않고 보도했다. ↑ 가운 뒤를 보여 줄 수 없어 유감이다. 비단으로 ...
    Views2842
    Read More
  7. 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8]

    난 나를 계속 진화시켰다. 프로인 이상 나만의 쇼맨십이 필요했다. 선수들은 링 아나운서가 입장 멘트를 날리면 별의별 표정을 다 짓거나, 각종 특색을 띠고 링으로 올라온다. 토끼처럼 로프를 껑충 뛰어오르는 선수, 로프를 앞뒤로 잡아당기며 마치 힘 자랑...
    Views214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Next
/ 15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