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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33]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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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하고, 남자는 첫사랑에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들에게 첫사랑 여인은 평생토록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다는 나의 가슴속 한편에 자리 잡고 있지만 나의 첫사랑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다를 잊지 못했던 것은 이다에게 첫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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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지난 3월 1일 추억 속에 간직한 이다를 만난 후 기분이 들떴다. 식사를 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당시는 지금처럼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맺은 것도 아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곳이 고국이다. 타국에서 레슬링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외로웠고 고독했는지 모른다. 지치고, 아프고, 힘들 때면 늘 내 곁에서 나를 응원해 줬던 팬이 이다였다.
 
지난 3월 1일 이다를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일본 팬클럽 회장 난바가 이다와 연락이 됐으니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거절했다. 솔직히 만나고 싶은 마음이야 꿀뚝 같았다. 하지만 휠체어에 의존,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나의 아픈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여든의 나이를 앞두고 있지만 그래도 팬 앞에선 아픈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런 몸이 됐는지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솔직히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몰골의 내 모습을 보는 것조차 싫다.
 
아마도 이다의 기억 속엔 젊었을 때 박치기 한 방으로 세계를 제패했던 '오오키 긴타로'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이다가 나를 보면 얼마나 실망할까.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 일식집으로 향했고, 마침내 이다를 만났다. 이다는 나를 본 후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젊었을 때 그처럼 곱고 예뻤던 이다는 오간 데 없었다. 젊고 활기 찼던 이다의 모습은 나의 추억 속에만 존재했다. 이다도 많이 늙었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다. 하기야 이다의 나이도 일흔을 앞두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이다는 나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해야 합니다. 오래 사셔야죠. 난 오오키 긴타로 선생님의 팬 아닙니까. 한 번 팬은 영원한 팬입니다"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여자의 눈물에 약한 것이 남자다. 난 이다를 보면서 아직도 나를 걱정해 주는 팬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을 받았다. 그에게 작은 선물을 준 후 헤어졌다.
 
이다와 헤어지고 나니 선수 시절에 팬들에게 좀 더 잘해 주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조금 힘들고 지쳤다 싶으면 사인도 잘 해 주지 않았다.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앞서도 얘기했지만 난 이상하리만큼 여성팬들이 많았다. 여성팬 중 더러는 상사병에 걸렸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가는 경기장마다 여성들이 줄을 섰다. 곰인형·종이학·팬레터 등은 기본이었다. 나의 숙소에는 늘 팬들이 보낸 팬레터와 선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성이 나를 보기 위해 가출한 것이다. 경기나 연습을 끝내고 숙소로 향하면 늘 그 여성이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다가와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보는 것이었다. 그 여성의 부모가 나를 찾아와 제발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애원까지 했다.
 
또 나를 잊지 못해 여승이 된 팬도 있다. 그 여승은 나에게 청혼하다시피 매달렸지만 난 거절했다. 결국 그 여성은 나를 잊기 위해 여승의 길을 택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김일씨가 한류 스타 원조다." 톱 스타 배용준 등이 일본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절을 생각하면 나도 배용준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던 게 사실이다.
 
여성팬으로 인해 스승 역도산이 자신의 분신처럼 아꼈던 시베리안 허스키를 잃어 버린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다. 시베리안 허스키와 아카사카 쪽을 걷고 있는데 나를 알아본 여성팬이 차를 한 잔 하자고 사정을 해 할 수 없이 두 마리를 전봇대에 묶어 놓고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고 나왔는데 그 개가 없어졌다. 하늘이 노래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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