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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19]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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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나이로 일흔 여덟이다. 2년 후면 산수(傘壽), 여든 살이다. 사람의 신체는 세월이 흘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사람이 살아 왔던 녹록하지 않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신체다.

 

레슬링의 처참한 훈련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 신체,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귀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귀가 왜 그래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묻는다. 그럴 때면 "레슬링 훈장이지…"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이게 다 몸으로 살아 온 탓 아니겠느냐고 웃어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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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도산 도장에서 혹독한 훈련 과정을 통해 생긴 오그라진 귀는 나이가 들었지만 훈장처럼 남아 있다.


 

사실 레슬링과 유도 등 격투기를 했던 이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귀 훈장`은 고통 속의 산물이다. 일반인에게 신체 중 가장 참기 힘든 아픈 부위를 꼽으라면 귀.이.코라 하지 않는가? 그만큼 귀 아픈 것은 참기 힘들다.

내 귀는 역도산 도장에 입문하면서 주먹처럼 오그라들었다. 스승 역도산은 귀를 혹독하게 단련시켰다. 귀를 단련시켰다면 사람들은 "설마"하며 믿지 않을지 모른다. 레슬링에서 귀는 선수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고 견뎌 냈는가를 증명하는 증표와도 같다. 스승은 레슬링이 과격한 운동이기 때문에 귀 부상을 막기 위해 단련시킨 것이다.

 

스승은 툭 하면 나를 불렀다. "야, 김일 매트 위로 올라와." 그럴 때면 난 허겁지겁 매트 위로 재빨리 올라갔다. "누워"하면 큰 대자로 누웠다. 몸을 큰 대자로 한 채 얼굴을 매트에 대면 스승은 서 있는 상태에서 수차례 엉덩방아를 찧으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그리곤 엉덩이로 귀를 마구 문질러 댔다. 심할 경우에는 신발 신은 발로 마구 비비대곤 했다.

 

아프다는 신음 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만약에 "악" 하는 신음 소리를 내면 더 강하게 찧고 비비댄다. 스승은 배로도 나의 귀를 단련시키도 했다. 배와 가슴으로 마구 얼굴과 귀를 문질렀다.

 

귀 단련은 때와 곳을 가리지 않았다. 링 밖에서도 이어졌다. 얼굴을 소파에 갖다 대면 스승은 얼굴을 팔걸이인 양 기대어 앉았다. 30여 분이 흐르면 귀가 홍시처럼 새빨개진다. 움직일 수도 없다. "야, 왼쪽 귀 갖다 대"하면 그때서야 자세를 바꿀 수 있었다.

 

훈련 과정에서도 귀가 단련됐다. 매트에서 전후좌우로 뒹굴고 상대방과 연습하다 보면 귀는 찢겨지고 부었다. 이쯤 되면 홍시처럼 된 귀가 터져 피가 줄줄 흘렀다. 몇 번씩 곪아 터졌다를 반복했다.

 

바람만 스쳐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갑고 아팠다. 너무 아파 잠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다가도 누군가 귀를 건드리면 기겁해 일어났다. 귀가 아프다 보니 몸에서 열이 떠나지 않았다. 고열은 아니었지만 늘 열 기운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귀가 아파도 치료를 하지 못했다. 아픈 귀에 반창고를 붙인다든지 혹은 약을 바르면 스승은 바로 그 귀를 집중 공격했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선배들이 내 이름을 불러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막까지 이상이 생겼다. 그래도 치료는 엄두도 못 냈다.

 

스승은 귀만 그렇게 단련시킨 것이 아니었다. 신체 전부를 굳은살이 배도록 무기화시켰다.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도 했었지만 특히 매로써 더 단련시켰다. 스승을 보는 날이면 하루 한 차례라도 맞지 않은 적이 없었다. 스승은 때리는 것이 습관화됐을 정도였다. 스승의 매는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때론 모욕감마저 들게 했다. 스승은 일본인 선수들은 좀처럼 때리지 않았다. 나만 집중적으로 때렸다. 그 차별이 나를 미치도록 했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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