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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16]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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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역도산에게 가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프로레슬링은 격한 운동이라 신체적 조건에 맞는 철저한 프로그램을 짠 후 운동을 해야 했다. 더욱이 스승 허락도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몰래 운동을 했으니 `이젠 죽었구나`란 생각이 든 게 어쩌면 당연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스승은 도장에서 마주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었다.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같은 조선인이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서운한 감정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판사판이었다. 심하게 야단치면 프로레슬링을 그만두면 되지 않겠느냐는 각오로 스승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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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도산 도장에서 땀을 흘리며 동고동락했던 동료들이다. 이들과 함께 혹독하게 훈련받던 시절이 너무도 그립다.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스승의 불호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스승은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지만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마와 등에선 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스승은 "도장에 온 지 몇 개월째냐"라고 물었다. "5개월째"라고 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스승은 "좋아. 너 내일부터 운동하라"라고 말했다.

 

`꽉` 막혔던 심장이 `뻥` 뚫리는 듯했다. 스승은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너는 현해탄을 건너온 녀석이다. 다른 선수가 하루를 연습하면 너는 이틀을 연습해야 한다. 링에서 죽을 각오로 운동에 임하라"라고 다그쳤다.

 

스승의 이 말은 "넌 이제 나의 제자다"임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마에서 뻘뻘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반드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라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스승은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거 사라"며 얼마의 돈을 쥐어 줬다. 그리곤 "나가 봐"라고 말했다. 역도산 도장에 온 후 거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인 약간의 돈은 받았지만 이때 스승이 준 돈은 5개월 동안 받았던 돈보다 많은 액수였다.

 

돈이 생기니 기분이 좋았지만 쓸쓸했다. 혼자서 도쿄 시내를 걸었다. 발길은 평소 가고 싶었던 정통 일식집으로 향했다. 돈이 없어 못 갔지 꼭 한 번 가서 먹고 싶었던 일식집이었다. 그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지는 못했다. 머뭇머뭇거리다가 혼자서 먹는 게 청승맞아 보일 것 같아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럴 때 주변에 친구라도 있으면 불러내 진하게 한턱 내고 싶었다. 고작 그 돈으로 사먹었던 것은 오뎅과 우동이었다.

 

더 이상 혼자서 밤거리를 배회하고 싶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동료들에게 줄 식.음료를 한보따리 샀다. 동료들도 정식으로 훈련하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들은 역도산 제자가 된 것에 대해 축하의 말보다는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하는데 괜찮겠느냐는 걱정을 더 했다.

 

역도산 제자가 되면 누구나 걱정하는 것이었다. 스승의 훈련 강도는 워낙 혹독하고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선배들은 훈련 무용담을 풀어 놓았다. 스승의 가라테 촙에 한 방 맞아 한 달 고생했다는 얘기부터 링 바닥에 사정없이 내리꽂힌 것 등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배들의 그 무용담을 들으면서 스승이 오후에 다그쳤던 얘기가 떠올랐다. "죽을 각오를 하고 훈련에 임해라.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해라." 아마도 나는 선배들보다 몇 배 더 강도 높은 훈련을 견뎌야 할지 몰랐다.

선배들은 내일부터 훈련하려면 푹 자는 것이 좋다며 자기들도 눈을 감았다. 고요한 밤이다.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니 잡생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내일이면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박 잠든 사이 사각의 링에서 혈투를 벌이다 죽는 꿈까지 꿨다. 꿈 속 일인데도 가슴이 뛰고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 혹독한 훈련은 악몽을 꾸면서 시작됐다.

 

 

일간스포츠 | 2006.05.03 10:40 입력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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