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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79]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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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스승이 작고했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승이 단도에 찔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야쿠자 칼에 조금 찔려 타계했다니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난 갑작스런 스승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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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역도산 묘지에만 가면 난 죄인이 되는 듯하다.

만약 내가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스승이 그렇게 빨리 작고했을까란 생각도 든다.
스승을 곁에서 지켜 드리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스승이 너무나 보고 싶다.


 
스승이 어떤 분인가? 16세 때 혈혈단신 고향인 함경도를 떠나 관부연락선에 몸을 싣고 일본 땅을 밟아 스모와 레슬링을 하면서 당한 온갖 고생과 박해를 극복, 마침내 일본 최고 영웅이 되지 않았던가. 스승의 죽음에는 뭔가 모를 음모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도 지금도 스승의 죽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도 스승의 죽음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 미스터리이자 의문으로 남아 있다.

 

미스터 모터 선배로부터 스승이 별세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갑자기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귀에선 윙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또 둔기로 머리를 심하게 맞은 듯 띵해졌다. 스승이 작고했다는 소리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 스승님이 돌아가시다뇨? 어제까지 통화했는데 동문들이 '괜찮으시다'고 말했는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모터 선배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아닌 것 같다. 왜 갑자기 사망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앞으로 일본 레슬링계가 어떻게 될지" 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피차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그에게 물어 본들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난 리키스포츠팰리스로 전화를 걸어 동문에게 다시 물었다. 그는 "스승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느냐"라고 물었지만 그는 "나도 모르겠다"라는 말만 할 뿐이었
다.
 
스승은 도대체 왜 칼에 찔렸을까? 혼자서 여러 경우를 상상하고, 그것을 내 자신이 부정하고 …. 초조한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찼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현실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였다. 심정 같아선 일본으로 달려가 스승을 칼로 찌른 야쿠자에 보복하고 싶었다.

 

만약 내가 일본에 있었다면 보복했을 것이다. 난 스승을 위해 목숨도 던질 수 있다는 각오로 스승을 모셨다. 스승이 야쿠자 칼에 찔려 작고했는데 과연 참을 수 있었을까?

 

만약 일본에 있었다면 안토니오 이노키·자이언트 바바·맘모스·요시무라 등과 함께 그들을 공격하자고 제안했을지 모른다. 그들이 나의 제안을 거부하면 혼자라도 복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많았던 동문들이 스승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난 모른다. 때문에 그때 스승 곁에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곁에 있지 못했던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스승이 미국에서 세계 챔피언 벨트를 따 오라는 특명을 내려도 난 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 챔피언보다 내겐 스승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챔피언은 다음에 또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승의 죽음과 관련해서 동문뿐만 아니라 스승의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얘기를 들었다. 옛부터 "영웅은 단명한다"란 말도 있지만 만약 스승이 일본인이었다면 그렇게 빨리 타계했을까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내가 품고 있는 의문의 출발점이다.
 
어쨌거나 스승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1963년 12월 18일 경기를 취소키로 결정했다. 스승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전화를 걸었다. 난 그의 이름을 밝힐 수 없다. 그는 나와 절친했던 인물이다. 그가 누구의 지시를 받고 말했는지 모른지만 그가 했던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넌 보증인이 죽었다. 일본으로 올 수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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