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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청빈을 삶의 철학으로 삼아 생을 풍요롭게 살다간 사람들의 다양한 일화가 실려있다.
 

혼아미 고에쓰는 도 시대의 도검 감정가인데 다도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날 명품 찻잔을 보고 꼭 소유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찻잔의 값은 황금 30냥이었는데 그 돈을 마련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본 찻잔 주인은 고에쓰에게 값을 깎아주겠다고 하자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결국 집을 판돈 황금 10냥과 빌린돈 황금 20냥을 합하여 결국 그 찻잔을 손에 넣었다.

그는 이 찻잔의 가치를 알아본 마에다 영주가 구매가격의 10배인 황금 300냥에 팔라는 제안도 거절한다. “이 찻잔은 단지 영주님께 보이기 위해서 가져온 것일 뿐, 결코 팔기 위해서 가져온 것이 아닙니다”라는 것이다.
 
고에쓰는 고집스럽게 제값을 주고 찻잔을 샀고 비싼 값이 팔라는 제안도 거절했지만 결국은 찻잔에 대한 집착을 끝내는 버리게 된다. 명품일수록 떨어뜨려서도 안 되고, 잃어버려서도 안 된다는 집착에 사로잡히게 될 터이므로 차라리 포기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결국 고에쓰는 평범한 찻잔으로 차를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세상을 살았다고 한다.

 

부호였던 고에쓰의 모친 묘슈에 대한 일화도 있다. 90세로 천수를 다하고 묘슈가 남긴 것은 홑옷 한 벌, 삼베 겹옷 두 벌, 무명 홑옷 한 벌과 보온 용 잠옷, 무명 이불과 헝겊 베개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살아서 각종 세세한 물건을 쌓아두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것이다.

 

청빈(淸貧)이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상과 의지에 의해 적극적으로 만들어 낸 간소한 삶의 형태라고 나카노 고지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소유한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가르친 것은 불교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17세기 겐신이란 스님이 지은 오조요슈(往生要集)에서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을 인용한다. 

“족함을 알면 빈약함이라도 부(富)로 불러야 하고 재물이 있을지라도 욕심이 많으면 이를 가난이라 이름 짓는다.”

많은 사람들은 선승들의 이러한 빈부관에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선함을 느낄 것이다.

에도시대 후기의 선승인 료간은 쌀 석 되와 땔감 한단만으로도 풍족함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외딴 곳에 초막을 짓고 혼자서 살았는데 초막 벽에 걸어둔 시주자루엔 구걸해온 쌀 석되와 호롯가에 한단의 땔감만 있을 뿐이지만 이것만 있으면 충분하고, 방황이나 깨달음 따위도 알지 못한다. 하물며 명성이나 세속적인 이득 따위는 문제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뛰어난 예술가들이나 고대 인도 철학자들은 서로 닳은 점이 있는데 바로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욕에 사로잡혀서는 소유의 좁은 벽에 갇혀 정신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에도시대 중엽의 문인화가인 이케노 다이가의 예가 있다. 그는 아내 교쿠란과 함께 젊어서부터 가난하게 살았는데 오직 그림 그리는 것에만 전념할 뿐 어려운 생활따위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평생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살림살이 속에서도 늘 회화의 세계 속에서 지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와 그의 아내는 애써 모아둔 돈도 모두 절에 바치고 만다. 그의 그림은 고아했으나 속인들의 눈에는 들지 않았는데, 사후에야 명성을 얻고 나중에는 누구든지 그를 당대 1인자로 꼽았다. 사후에 인기가 오르게 된 것은 생전에는 평가받지 못했던 고흐나 이중섭의 운명과 닮은 데가 있다.
 

후세 사람이 그의 그림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그림이 아주 묘할지라도 품격이 천하면 용품(품질이 낮은 물건)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교졸(잘하고 못함)은 기량이 정교하고 조잡한 데 있지만, 품격은 그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리려 하거나 그림으로 이름을 떨치려 하거나 남의 호감을 사려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카노 고지는 그의 어머니를 예로 들면서 사실은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도 청빈의 사상이 녹아 있음을 역설한다.

“나의 어머니를 보노라면 <오조요슈>의 ‘족함을 알면 가난할 지라도 부유하다 할 수 있고 재물이 많아도 욕심이 많으면 이것을 빈(貧)이라 한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어도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깝다”는 말을 자주했고, 음식물이라도 쌀 한 톨, 채소 한 조각이라도 그 역할을 다하지 않게 하지 않고 함부로 버리는 것을 생명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하며, 종이 한 장 노끈 한 가닥이라도 잘 간직해두었다가 반드시 필요한 곳에 사용하였으며 절대로 버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예이다. 

 

일본 간토지방의 일부 농촌에서는 “물건살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어떠한 물건이건 그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죽이는 것을 큰 죄가 되는 행위로 간주하는 생각에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배추값이 폭락한다고 애써 경작한 작물을 트렉터로 갈어 엎어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물건살해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그 동안 무비판적으로 추구해온 맹렬한 산업화와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해야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나카노 고지는 경고한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고 듣고 있는 말, “소비자”라는 말에 대해 나카노 고지는 ‘모욕적인 말’이라고 단언한다. 언젠가부터 거리에는 상품이 넘쳐 흐르고 승용차도 전자제품도 주택도 잇달아 신제품이 만들어지고 매력적인 광고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우리는 그 끊임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 신제품을 추구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리하여 우리는 보통 인간이 아니라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원리는 인간 생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니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니까 그리고 시장에 진입해서 돈을 벌 수 있으면 생산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소유하는 것은 소중하게 여겨져 손질을 하고 쓸모가 있는 최후까지 사용되었다.

사는 물건은 오래쓰기 위해서 사는 물건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보존하는 것보다 소비가 강조되어 사는 물건은 “쓰다버리기 위해” 사는 물건으로 되어버렸다. 사는 물건이 승용차건 의복이건 자질구레한 도구가 되었건 그것은 잠깐 쓰고 나면 싫증이 나버려 고물로 처분하고 최신형을 사고 싶어한다. “오래된 것은 아름답다”가 “새로운 것은 아름답다”로 바뀐 것이다.

 

현대 사회의 과도한 물건의 낭비가 풍요롭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황폐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나카노 고지의 말에 공감이 된다. 그는 누구나 풍요로운 사회를 원하고 바라던 그 과정에서 누구도 자각하지 못한 방법상의 잘못이 있었다고 진단한다. 그 잘못의 첫째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기계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므로 그것을 생산하여 그저 많이 팔기만 하면 된다는 원리에 충실했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효과만을 우위에 두고 생산하는 것을 모두 당연시 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진정 풍요로운 것인가, 공허한 것인가. 우리는 표현히 현실을 버리고 산간에 초막을 하나 짓고 돈과 명예를 등한시 하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길인가. 아니면 시류에 적극 합류하여 물질적 욕망을 실현하고 부와 명예를 구하는 삶이 더 값진 삶인가? 그 답은 책 속에서 각자 찾아보길 바란다.

 

도겐의 도겐의 <쇼호간조>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삶은 미래가 아니다. 삶은 과거가 아니다. 삶은 현재도 아니다. 삶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삶은 전부 현재에 있다. 죽음도 전부 현재에 있다. 기억하라. 자기에게 무량(無量; 아미타불의 별칭)의 법이 있으면 삶이 있고 죽음이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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