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의 글을 읽으니 또 이렇게 댓글을 달게 되네요. 어릴때 저의 마음을 왜 이리 송송송 잘표현 하시는지 ~~~~원. 비가오기를 남몰래 기원했고 김 한매 부모몰래 팔아 핀엿 사먹던 그때 그시절. 겨울 한철 돈 벌어 도회지에 자식 공부시키시던 부모님. 지금은 그때의 고생에 흔적으로 얼굴은 검게그을리시고 얼굴에 늘어만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 해우는 우리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었지만 삶의 고통도 주었던 피조물이라고나 할까요. 해우에 얽힌 추억은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천에서 아니 남해의 어촌에서 자란 (완도,진도,해남,신안,고창) 대부분의 386 세대는 해우에 얽힌 추억들이 비슷 하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는 여름방학이면 어릴때는 발장 그것도 손으로 조금 커서 기계로, 중학교 부터는 발을 치고 (대학교 때 까지- 참고로 농촌 봉사활동, 써클 M.T 모두 반납) 겨울방학에는 김하러 다니고 조금때는 삼겹살과 된장 그리고 김 몇장과 소주 댓병 한병 으로 친구들과 범더무 옆 계곡에서 삼겹살 파티 하던때가 추억으로 떠오르네요. 참고로 해우는 사투리고 해태,또는 김 이 표준말인것 같습니다
어릴때 저의 마음을 왜 이리 송송송 잘표현 하시는지 ~~~~원.
비가오기를 남몰래 기원했고 김 한매 부모몰래 팔아 핀엿 사먹던 그때 그시절.
겨울 한철 돈 벌어 도회지에 자식 공부시키시던 부모님.
지금은 그때의 고생에 흔적으로 얼굴은 검게그을리시고 얼굴에 늘어만 가는
부모님의 주름살 . 해우는 우리에게 행복과 희망을 주었지만 삶의 고통도 주었던 피조물이라고나 할까요.
해우에 얽힌 추억은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천에서 아니 남해의 어촌에서 자란 (완도,진도,해남,신안,고창) 대부분의 386 세대는 해우에 얽힌 추억들이 비슷 하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는 여름방학이면 어릴때는 발장 그것도 손으로 조금 커서 기계로,
중학교 부터는 발을 치고 (대학교 때 까지- 참고로 농촌 봉사활동, 써클 M.T 모두 반납)
겨울방학에는 김하러 다니고 조금때는 삼겹살과 된장 그리고 김 몇장과 소주 댓병 한병
으로 친구들과 범더무 옆 계곡에서 삼겹살 파티 하던때가 추억으로 떠오르네요.
참고로 해우는 사투리고 해태,또는 김 이 표준말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