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7.12.21 22:47

녹동 오일장

조회 수 3212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김 파래 감태 매생이…바다냄새 펄펄
고흥 녹동장

▲ 녹동장 터줏대감 박동예 할머니 좌판에서 굴맛을 보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꿀맛'보다 좋은'굴맛'을 자랑한다.

오일장을 찾을 때마다 새롭게 나이를 먹는 느낌이다.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잊어버리고 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다시 배우는 느낌. 그 가운데 가장 큰 배움은 바로 ‘어설픈 눈’으로 오일장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봤으면, 뭔가 재미난 얘기를 들었으면, 다른 곳에선 볼 수 없었던

 

가슴 찡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일장을 찾고 자극적인 그 무엇이 없으면

 

곧바로 ‘요즘 오일장에선 예전의 그 재미를 찾을 수 없다’고 단정해 버리는 그 오만함.

 

 ‘장이 장답지 않다’는 푸념이 결국은 얼치기 장돌뱅이의 허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배웠다면 이마저도 섣부른 고백이 될까. 

 

▲ 농협 철부선을 이용해 녹동장을 찾는 거금도 사람들

“녹동장날은 거금도 사람 외출날”


  이 같은 깨달음은 고흥군 도양읍 녹동장(3·8일) 입구에서 시작된다.


지금쯤이면 유자가 지천으로 널렸을 거란 기대를 갖고 새벽 시간을 달려 도양읍에 들어서니

 

사람의 흐름이 이어진다. 맘먹고 오일장을 찾은 지 반 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이다.

비록 거대한 흐름은 아니지만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면 사람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일장에 이를 수 있을 것’이란 몇 달 전의 기대가 처음으로 눈앞에서 펼쳐

 

지는 순간이다.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녹동장을 그냥 지나쳐 녹동항으로 발길을 돌린다. 녹동장 손님의

 

절반은 인근 거금도(금산) 사람들이란 얘기를 들었던 까닭이다. 한 시간 간격으로

 

녹동과 거금도(고흥군 금산면)를 연결하는 농협 철부선이 도착하길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본다. 아침 일찍 길을 서둘러 장을 본 뒤 거금도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녹동장이 꽤 큰 모양입니다. 다른 장에 비해서 사람이 무지 많네요. 다른 장 몇 군데를

 

다녔는데 통 사람이 없어요. 재미도 없고. 여기는 다른 것 같은데 이유가 뭔가요?”

 


녹동장을 칭찬하면 뭔가 자상한 답이 올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냉담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여그라고 뭐가 다르겄소. 다 똑같제. 겉으로 보믄 모르요. 사람이 많다고 장이 되고 사람이

 

적다고 장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다요. 크고 작건 간에 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는 법인디.”


어색하다 못해 얼굴이 화끈거린다. 때마침 도착한 철부선이 분위기를 바꾼다.

 

▲ 갓잡아 올린 활어를 정리하는 상인들

녹동 농작물과 금산 해산물이 만나는 큰장
트랙터 보습을 바꾸기 위해서 나왔다는 박금용씨. 시간이 없다는 그의 뒤를 막무가내로 따르며 질문을 던진다.
“왜 사람들이 빈손으로 나오냐믄 살 것이 없거든. 금산에도 인자 농협마트가 생겨 갖고 없는 것이 없는디 따로 살 것이 없제. 마트에 없는 것만 사다 보니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손이 가벼울 수밖에. 요새는 장날 장에서 물건 사러 나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얘기도 듣고, 바람 쐴라고 나오는 사람도 많어.”

그의 나이를 고려해 50년 가까이 녹동장을 찾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정색을 한다.
“뭔 소리를, 지금은 금산사람이 다 녹동으로 나오제만 옛날에는 녹동사람들이 다 금산으로 들어왔어. 오일장이 없어져분께 요러고 발품을 팔제.”

1970년대만 해도 거금도에도 장이 열렸다. 2일과 7일 열리던 금산장이다. 그러나 거금도와 녹동항 이동시간이 사실상 10여 분대로 좁혀지면서 70년대 말 금산장은 폐장되고 만다.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나누기에 바쁘다.


“20년 넘게 녹동장 다녔응게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제. 그것이 당연흔 것 아녀. 글고

 

우선 꼭 들를 곳이 한 군데 있어. 가길 안가믄 녹동장은 헛본 거여.”

그가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며 손을 잡아 끈 곳은 막걸리집.


“녹동장이 커진 이유는 환금성 때문이요. 녹동 일대 육지에서는 농작물이 나오고 금산 같은

 

 섬에서는 해산물이 나오믄서 서로 돈을 사는 것이제. 그러다 보믄 자연스럽게 돈이 돌고

 

그러면 장이 커지는 것 아니요.”

지금은 재래시장을 찾는 단골들이 많이 줄었지만 녹동장의 빈자리는 외지 관광객이 메우고

 

있다. 소록도를 찾는 관광객은 물론 녹동항에서 출발하는 거문도, 제주도 승객에 이르기까지.

 

 녹동항을 통해 이동하는 하루 1000여 명의 승객과 관광객이 녹동장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별로 사람이 없는 셈인디, 대목 때만 되믄 아직도 발 디딜 틈이 없어.

 

굳이 멀리 안가도 엊그제 12월 초 시제 지낼 때만 해도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는디.

 

아무리 재래시장이 쪼그라들었다 해도 녹동장은 아직 힘이 남아 있어.”


막걸리 세 순배가 돌자 이제는 박씨 일행이 우리를 잡아끈다. 구경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진짜 맛있는 것은 꿀맛이 아니라 굴맛”


“외지 사람들은 겉만 보고 좋다 나쁘다 얘기를 흔디 그 것은 잘못된 거여. 겉만 보고

 

판단흐믄 안 되제. 모든 것은 애기를 해 봐야 흐는 거여.”


박씨와 권씨가 자리를 잡은 곳은 녹동장의 터줏대감이라는 박동예할머니 좌판.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파래와 감태가 손님을 맞는다.

“녹동장의 최고 자랑은 뭐니뭐니 해도 싱싱한 해초요. 여그는 언제 와도 항상 해초가

 

지천으로 널려 있응게 아무 때나 와도 돼. 요새는 교통이 발달해 갖고 해초가 밖으로도

 

많이 나가는디 그래도 여그만은 못하제.”


흐뭇하게 박 할머니의 얘기를 듣던 박씨가 말을 이어받는다.

“아직은 철이 좀 덜 됐는디. 좀 있으믄 매생이가 나와. 매생이는 금산 월포에서 나온 것이

 

최고여. 인자 일어나봐 녹동 왔응게 석화(굴)를 맛봐야제.”


권귀순(56)씨가 운영하는 굴가게로 자리를 옮긴 ‘녹동장 해설사’  박씨의 자랑이 이어진다.


“녹동 와서 석화 안 먹고 가믄 안 돼. 녹동장에선 ‘꿀맛’이라고 안 그러고 진짜 맛있으믄

 

 ‘워메 굴맛이네’ 그러는 것이여.”

얘기를 나누는 사이 주인장 권씨가 애를 태운다.


“음마 환장허겄네, 석화 맛좀 보여줄란디 어째서 요렇게 안 익는다냐.”


솥에다 껍질째 익히던 굴을 살피던 권씨가 끝내는 굴을 연탄불 위에 직접 올려 ‘굽기’에

 

나선다.

“먹어보쇼. 천하가 안 부러울 것잉게. 음마 한 개 먹으믄 정없응게 자 하나 더.”


하지만 권씨는 안타깝단다. 최근 들어 맛있기로 소문났던 고흥산 굴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 요새는 가까운 여수 일대에서 생산된 굴로 그나마 수요를 메운다.

해조류와 굴 더미 사이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은 바로 새우젓. 김장철 새우젓 나오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곳곳에 널린 새우젓 가운데 대야에 담긴 새우젓이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유난히 붉은 새우가 가득 담긴 대야를 앞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김학엽 할머니의 토하

 

젓. 지난 7월 도덕면 봉암저수지에서 민물새우를 잡아 겨울을 준비했다는 김 할머니의 토하

 

젓 가격은 작은 그릇 하나에 5000원. 일반 새우젓의 배에 가까운 가격에는 뙤약볕 아래서 새

 

우를 잡고 정성스럽게 젓을 담근 김 할머니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 녹동장 인그농장에서 유자차 재료를 다듬고 있는 아낙들.그들에겐 일하고 쉬는 것 모두가 즐거움이다.

녹동장에는 유자가 없다?


이런 저런 구경에 넋을 잃었나 보다. 정신을 추슬러 보니 문득 유자생각이 떠오른다.

 

유자 때문에 녹동엘 왔는데….

“고흥 놈 치고 어떤 놈이 시장에서 유자를 산다요? 주변에 지천으로 널린 것이 유잔디 필요

 

흐믄 유자밭 있는 집에다 얘기해서 얻으믄 되고, 유자밭 있는 사람은 직접 공판장이나

 

공장에다 납품을 흥게 시장으로 유자가 나올 일이 없제. 외지사람들이 유자를 살라믄

 

고흥 초입부터 직판장 같은 것이 많은게 굳이 녹동장까지 안 와도 돼.”

그러고 보니 유자를 찾을 수 없다. 과일전을 뒤져 봐도 유자 대신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제주산 밀감뿐, 서너 집을 돌아 겨우 유자 한 상자를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녹동장에 유자가 없다고 해서 녹동과 유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해초냄새 가득한 녹동장을 잠시 벗어나면 녹동은 온통 유자향으로 가득하다. 집집마다

 

그리고 녹동 곳곳에서 차를 만들기 위해 유자를 썰고 설탕에 절이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만 함께 하기로 했던 녹동장 기행이 두 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 박씨는 보습을 사러

 

가야 한다며 악수를 청한다.


“바다 냄새 특히 해초 냄새가 맡고 싶으믄 녹동장으로 오쑈. 여그 냄새는 언제나 비슷해.

 

 녹동장에 왔다고 연락만 흐믄 내가 금방 달려올 것인게. 금산에서 보믄 더 반갑고.”

 

▲ 녹동장의 명물 토화.


                                                             녹동장 해조류의 봄·여름·가을·겨울

▲ 녹동장의 명물 생파래


육지에 사계절이 있어 계절마다 나오는 푸성귀가 다르듯이 바다에도 사계절이 있어 계절마다 다른 해조류들이 선을 보인다.
특히 녹동장에는 인근 거금도 등 고흥만 일대에서 생산된 해조류가 끊이지 않고 공급된다.

찬바람이 불면서 본격화되는 해조류 향연은 12월 초 김에서 시작된다. 녹동장 인근에 있는 거금도(금산)의 김 생산량은 완도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할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김의 뒤를 잇는 것은 파래와 감태, 그리고 매생이다.

지금은 유명 횟집의 서비스 음식으로 제공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녹동장에서 매생이는 빠뜨릴 수 없는 품목이다.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는’ 매생이국이 있기에 녹동장의 겨울이 더욱 풍성하다. 일부 사람들은 감태와 매생이가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감태는 미역과, 매생이는 파래과로 전혀 다른 종류다.

감태와 매생이의 계절이 끝날 때쯤이면 미역과 톳이 뒤를 잇고 2월부터 시작된 미역의 계절이 마무리되면 5월부터는 다시마가 해조류의 맥을 이어간다.

겨울 녹동장에 아낙들이 사라지는 이유
 12월 녹동장에선 여자 손님들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평상시 오일장 분위기를 이끌던 녹동 아낙들이 12월만 되면 장터에서 사라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유자 때문.

“초겨울에는 장에 사람이 별로 없소. 장에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디 요즘 초겨울엔

 

여자들이 없당게. 여자들이 새벽 5시만 되믄 전부 유자 공장으로 강게 시장에 나올 사람이

 

 있어야제. 맨날 할 일 없는 남자들만 널렸어.”

오전 일찍 장을 찾았다는 이영연할아버지는 “여자들이 없응게 장에

 

힘이 없다”며 색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고흥지역 유자재배 면적은 371ha로 전남지역 재배면적의 34%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예상생산량은 3766톤, 지난해에 비해 23.6%가 증가하는 등 풍년을 이뤘다.


모든 공장이 자동화되고 있지만 유자공장만큼은 대부분 수작업에 의존한다.

작업철이 유자가 생산되는 11월말부터 12월말까지 40∼50일에 불과하다 보니 자동화를

 

위한 투자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제거한

 

다음 이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병에 넣는 과정을 고려하면 기계작업보다 수작업이

 

위생 면에서 유리하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지급되는 일당은 2만5000원 내외. 남자 일당에 비해서는

 

적은 액수지만 농한기인 겨울철에 현금을 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고흥에서 유자차 원료(유자 설탕절임)를 생산하는 공장은 모두 29개소.

 

 한 곳에서 100명 정도가 일을 한다고 가정해도 3000명 가까운 고흥 주부들이 겨울철

 

유자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 거금도 청석에 미역공장이 생깁니다. 2 file 박만기 2010.01.10 3859
55 금산면에 씨월드 리조트 조성한다. 박만기 2010.04.20 3817
54 거금도 청석마을,"하얀파도"팬션 아름다운 경관 4 박만기 2008.07.02 3723
53 조용필,소록도에서 노래한다."꿈,친구여!"... 박만기 2010.03.21 3598
52 거금도의 겨울 소원동산 file 박만기 2010.01.12 3582
51 이번 주말 녹동항으로 떠나 보세요~ 박만기 2009.07.10 3483
50 녹동항에 "수륙양용차"출현? 박만기 2009.07.27 3483
49 오천마을에 종합 수산물 가공 유통시설 들어서... 박만기 2009.07.22 3363
48 거금도 연도교 상판 공사 시작! 박만기 2009.08.20 3353
47 보고싶다 친구들아 1 동창 2009.11.30 3317
46 제11회 녹동 바다 불꽃 축제 안내 박만기 2010.05.05 3314
45 거금도 월포 매생이 박만기 2010.01.31 3300
44 제2회 [아름다운 거금도의 밤] 행사 성료 박만기 2009.08.03 3229
» 녹동 오일장 1 박만기 2007.12.21 3212
42 금산 오천 종합수산물 가공 유통시설 준공식 박만기 2010.11.22 3144
41 오천마을 다시 멸치 삶는 냄새 나네요~ 1 박만기 2010.10.27 3128
40 추억의 박치기왕 김일선수를 기념하며... 박만기 2010.07.07 3043
39 거금도에 살고싶네~.~.... 박만기 2011.02.06 2939
38 보고싶네요 쌍둥이아빠 2011.04.12 2793
37 송년의밤 행사에 초대 합니다 동문사무국 2011.11.16 272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