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화 : 자빡(1)
1985년 어느 날.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으며, 나의 군 입대 송별연에도 참석했으나 그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던 친구가 내가 살고 있던 여수로 나를 찾아왔다.
나도 잘 알고 있는 간호사와 결혼한 사실은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안부를 물었더니 지금 미국에 가 있고 자기는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모처럼 만난 지라 그냥 보낼 수 없어 밤에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이야기는 한마디로 나보고 은행대출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다.
광주 백운동에다가 애완용 동물을 취급하는 가게를 내는데 돈이 부족하단다.
처음으로 받은 부탁이라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어 보증을 서 주었고 그 가게의 개업식에도 참석하여 축하하여 주었는데.........
그러고는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보증을 선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광주세무서로 전근해서 근무하고 있는데 은행에서 독촉장이 날라 왔다. 원금 ****원 9개월 미납이자 ****원 합계 *****원. 언제까지 갚지 아니하면 월급에 압류하겠다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니 연락이 안 된다.
다른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봐도 연락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
나중에 알고 보니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여러 친구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물론 그 가게는 우리를 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고.
결국 마누라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넣고 있던 적금을 해약하여 보증 빚을 갚았는데 결국 그런 일로 인하여 그 친구는 영원히 우리 동창들에게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데, 지금도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보다 더 나쁜 녀석은 자기가 그 친구에게 당했던 사기를 나에게 전가시킨 그 은행원 녀석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 은행원 녀석도 그 친구에게 나와 똑 같은 사기를 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친구를 만나 다시 대출을 받아 자기가 보증을 선 금액을 상환하게 하고 그 보증의무를 나에게로 전가시킨 것이다.
뭐 나의 개인적인, 오래된 이야기를 그것도 자랑할 것도 아닌 내용을 여기에다 쓸 이유도 없지만 굳이 쓰는 이유는 이 글의 소제목인 ‘자빡’이란 단어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자빡 - 결정적인 거절.
자빡(을) 대다(치다) - 아주 딱 잘라 거절하다.
부디 여러분은 확실하지 않은 어려운 부탁에 대하여는 자빡을 쳐서 아이큐가 두 자리 수밖에 안된 나 같은 경우를 당하지 말지어다. 결국 돈 잃고 사람 잃은 경우를 당하게 될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