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한가위다. 한 사내가 고삿길을 걷고 있다. 문득 사내는 종가로 종종걸음으로 휘적이며 가고 있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은 길이 아닌 풀밭이다. 동네 아낙들 빨래터 우물가도 이름 모르는 수풀로 무성하다. 종가의 담장 벽은 허물어져 있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저 멀리 감나무에 걸린 한가위 달을 본다. 종가 대문 앞에 사내 혼자 서서 붉은 눈물을 닦는다. 종가의 대문은 썩어 벌이 떠난 벌집이다. 삼대가 함께 살던 종가 앞마당에 무성히 자란 풀이 벽처럼 발길을 막는다. 사내는 마음이 움찔거려 눈이 더 동그래진다. 햇살 쬐이면 할배와 땅콩까던 토방도 담쟁이넝쿨 세상이다. 담쟁이넝쿨이 천천히 돌담을 넘고 넘어 기와지붕까지 아가리 속으로 삼켜 버렸다. 마당에 무성한 풀들 불온한 눈꺼풀을 올려 뜨고 본다. 뒤뜰 언덕엔 떨어진 개살구 썩어 나뒹군다. 텅빈 큰방 안에 벗겨진 도배지 겹겹으로 처진 거미줄에 죽은 벌레들 엉켜있다. 글공부하던 사랑방이 있던 가옥은 전쟁터의 폐가처럼 한쪽은 허물어져 있다. 하늘로 향한 감나무만 옛 이야기를 혼자서 바람에게 전하고 있다. 땅에 떨어진 감은 썩고, 낙엽은 불온한 전단지처럼 흩어져 날리고 있다. 할배귀신이 방문 열고 '홍시는 까치밥이야'라고 외치는 목소리에 사내는 종가 밖으로 줄 행랑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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