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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눈물과 추석

by 쉰-소리 posted Sep 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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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 추석은 짧은 연휴로 귀성인파가 적어 교통이 혼잡하지 않았다. 해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00에서 25명이 넘는 대식구가 차례를 지내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고, 시골로 성묘를 다녀오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술잔을 나누는 것이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이고 역사다.


  그런데 올 추석은 왠지 즐겁지 못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보름 전에 호주로 이민 간 막내 진호의 빈 자리 때문이고 또 하나는 가운데 동생 부부가 이혼 직전에 있어 제수씨가 차례를 지내는 순간까지 보이지 않았고 동생도 숙직을 핑계로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의 자식 사랑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어머님들이 그렇듯 자식은 어머님에게 희망이고 전부다. 정작 당신의 삶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의 삶이 바로 자식의 삶이다. 7남매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받쳤고 지금도 그러신다.


   어머님이 가장 많이 활동하시는 주방에는 큰 나무판에 새겨진 부처님상이 벽에 걸려있다. 불교를 믿으시는 당신을 위해 큰 아들이 사다준 재산목록 1호이다. 이 곳에 자리한 부처님을 향해 틈나는 대로 자식들의 건강과 출세를 위해서 두 손 모아 빌고 또 빈다.


  그렇게 소중한 자식이 하나는 외국으로 이민을 가 보이지 않고, 또 한 자식은 2년째 각 방을 쓰며 남처럼 살고 있어 짠하고 정말 속상하다. 그 때 결혼을 더 강력하게 반대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더구나 80평생 당신의 마음 저편 외곽에 있는 아버님(남편)은 “자식 놈이 잘못하니 그런다.”고 셋째 아들만 나무라고 있어 더욱 화가 난다.


  이민 간 막내아들은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잘하여 서울대를 확신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춘기인 고등학교 때의 방황으로 가족을 고통스럽게 했으나 괜찮은 회사의 기획실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는 듯 했는데 처가 쪽에서 이민을 원하여 얼마 전에 호주로 떠나고 지금은 명절이 되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셋째 아들은 결혼 때부터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궁합도 좋지 않았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이혼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가정환경, 너무 야문 말솜씨와 강한 인상 때문에 결혼을 반대 했으나 매주 찾아와서 “결혼하면 아들과 부모님께 정말 잘하겠다.”는 간절한 호소를 믿고 승낙 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무섭게 그리고 완전히 변해버린 며느리의 모습에서 당신은 큰 배반감을 느끼고 계신다. 특히 며느리와 아들의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불안에 떨고 있는 두 손자를 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뛰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외도하던 남편 때문에 흘렸던 분노의 눈물, 큰 딸을 잃었을 때 흘렸던 서글픈 눈물, 뇌염에 걸린 둘째 아들 때문에 흘렸던 가슴 아픈 눈물, 넷째의 이혼으로 흘렸던 충격의 눈물, 손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흘린 안타까운 눈물, 9명의 식구를 데리고 10년의 셋방살이동안 흘렸던 서러운 눈물을 비롯하여 당신이 흘린 눈물은 끝이 없다.



  어머님은 올 해도 어김없이 4개의 상을 차렸다. 둘은 조상님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성주님, 또 하나는 자식들을 지켜주는 신을 위한 것이란다. 내가 차례를 지내는 순간에도 어머님은 곁에서 차례상을 향해 계속 중얼거리신다. “우리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성공하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비는 게 틀림없다. 특히 이민 간 막내와 이혼 직전에 있는 셋째를 위한 간절한 기도일 것이다.


  어머님은 유난히 미신을 믿는다. 특히 조상신은 철저히 믿고 지극 정성으로 숭배한다. 얼마 전 아버님과 동생들은 친척의 문상을 다녀와 “깨끗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차례를 지낼 수 없다.”고 하셨고 어머님의 그 뜻을 아무도 꺾을 수 없어 나 홀로 술을 따르며 조상을 모셔야했다.


  성묘를 가는데도 철저히 당부하신다. 증조부님의 묘 뒤편 돌판에 별도로 상을 차려서 너만 절을 해라. 증조부모님께 먼저 절하고 조부모님은 다음에 해야 한다. 남은 술은 남겨오지 말고 묘의 가장자리에 돌아가며 부어주어라. 남은 음식은 함께 나누어 먹어라. 가져간 선물 중에서 큰집엔 배를 전하고 작은 집에는 포도를 전해라. 당신의 정성스런 마음을 큰아들에게 끊임없이 주문하신 것이다.


  추석날 저녁엔 호주에 있는 막내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 안 아프냐? 서경이는 잘 있고?” 몇 마디를 묻고서는 이내 눈물을 흘리신다. 마음의 깊은 밑바닥에서 나오는 진한 눈물이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막내가 말썽 피우며 속 썩일 때 함부로 대했고 “차라리 내 자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과거다. 막내는 더 안타깝고 사랑스럽다는 옛말이 사실인가 보다.


  40살이 되도록 험한 일을 해보지 않았는데 하루 8시간씩 아파트를 청소하고 있는 막내아들의 지금 생활을 아신다면 어머님이 더 괴로울까봐 자식들은 그 사실을 끝내 숨기고 떠났다. 어머님의 눈물을 가슴에 안고 다시 일터로 돌아간 것이다. 어머님의 자식들은 그 눈물을 깊이 그리고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일곱 중에 하나도 당신의 모두요, 전부라는 것을…….



  이제 어머님은 자식들이 떠난 흔적들을 다시 느끼며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오래 도록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어머니! 아프지 마십시오. 혈압이 높아 걱정입니다. 당신의 삶도 끄트머리에 와 있습니다. 저희들 걱정은 그만 하시고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편히 그리고 행복하게 사시는데 쓰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어머니! 아직도 당신에겐 흘릴 눈물이 남아있습니까. 자식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이 당신의 가장 큰 행복임을 압니다만 이제 자식들로 인해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흘린 눈물의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당신이 흘리는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쉰이 넘어서야 깨닫는 이놈을 절대로 용서하지 마십시오.


(2005년 가을의 문턱에서 당신의 큰 아들이 거금도에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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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하나 2005.09.30 21:52
    쉰 소리님의 가슴에서 나오는 글이 제마음을 찡하게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말로다 형용할수없고 그 무엇에 비하리이까...
    날마다 자식들 염려하며 흘린 눈물은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겠지요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고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헤아린 아드님이 계시니
    쉰소리님의 어머님은 참 행복하신 분입니다.
  • ?
    하하 2005.10.25 11:25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다 하지 않턴가요,
    늘~ 우리네 어머님은 그러 하셨습니다.

    완전한 아가페 사랑으로 나를 버리고 오로지 자식을 위한 남편을 위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내 어머님 끝내 자식에 대한 사랑을 놓치 않으실것 입니다.

    배은망덕을 해도 그끈을 놓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어머님 아니더이까?
    님의 글을 읽고 가슴이 시림을 느끼며,

    몇년전에 우리 어머님의 모습을 떠올리며,미소짖게 했답니다.
    님의 마음을 보여 드리세요 어머님은 더욱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장남이 있다는것 하나로 어머님께서 더욱더
    행복해 하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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