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관 속에 갖혀버린 석굴암
바쁜 일상에 쫓기면서 살다보니 좀처럼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는데
금번에 마음에 맞는 지인들과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보문단지에서 모임을 갖고 1박 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일정대로 이곳 저곳를 둘러 보고 석굴암을 보기 위해서 토암산에 올랐다.
석굴암은 8세기 중엽 김대성이 자신의 생부모를 공양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데 그 예술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인도에서 당나라를 거쳐 신라에 전해진 불교미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사십년도 지난 중학교 수학여행 때 석굴암을 보았던 아련한 추억을 안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석굴암을 보러 갔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여 보니 내 기억속에 남아있던 석굴암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너무나 황당한 광경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석굴암을 잘 보존한다는 미명아래 집을 짓고 유리관속에 석굴암을 가두어 놓고 있는 것이다.
석굴암이 만들어진 후 약1200년 동안 우리의 지혜로운 선조들은 자연을 이용하여 온도와 습도 조절을 하여 부식를 방지해 그 원상태가 손상됨이 없이 잘 보존되어 왔는데 최근에 와서 가장 발달된 문명의 도구를 다 동원하여 이렇게 망가뜨리고 만 것이다.
유리관 속에 갖혀 버린 부처님!
저 멀리 동해에 떠오른 태양의 정기를 한 몸에 받아 이 땅에 고통 받고 시름하는 중생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한 부처는 유리 관속에 갖혀 아무런 영험도 발휘할 수 없는 가엾은 모양이 되고 말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오는데 저 산 아래 계곡을 타고 소슬바람이 싱그러운 풀내음 싣고와 아픈 마음을 달래 준다.
토암산을 오르내리며 신체단련을 했을 화랑도의 우렁찬 함성과 부처님께 복을 받기 위해 밤새워 탑돌이를 했을 신라여인들의 비단옷깃 스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우리일행은 감포항에 있는 문무대왕 수중능을 보러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