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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바쁜일이 있고 정신이 없어도

이건 끝까지 읽어보세요~!!!

 <얼마 전, 모 설문조사에서 복권에 당첨되면, 무엇부터 바꾸고 싶은가
 
라는 질문이 있었다. 대다수의 남자들이 '아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다수 여자들 또한, ‘남편’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 방걸레질 하는 소리.......

: ! 발 좀 치워봐.
   
  (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 , 먹고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 나 점심 약속 있어.
: 그런 얘기 없었잖아.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한거야. 중식이...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 ...그래? 할 수 없지 뭐

              

                 

  

    (해외출장 가있는 친구 중식이를 팔아놓고, 중식이한테도 아내에게
   
도 약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한가로운 일요일, 난 아내와 집에
   
서 이렇게라도 탈출하고 싶었다.)

    (
나름대로 근사하게 차려입고 나가려는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비벼
   
,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펑퍼짐한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폼새다.)


: (우물거리며) 언제 들어 올거야?
: 몰라... 저녁도 먹고 들어올지...
: 나 혼자 심심하잖아. 빨리 들어와.
: 애들한테 전화해 보든가....
: (물 한잔 마시고) 애들 뭐... 내가 전화하면 받아주기나 해?
     
엄마 나 바쁘니까 끊어. 이 소리 하기 바쁘지.
: 친구들 만나든가 그럼!
: 내가 일요일 날 만날 친구가 어딨어?

*
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 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게, 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
일단 밖으로 나가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 12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
   
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 .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 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 ... 배터리가 떨어졌어.
: 손이라도 좀 따줘.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 좀 천천히 못 먹냐?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 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 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 아내의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 


    (
다음날, 회식이 있어, 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
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 여보... 들어가서 자.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 손 이리 내봐
(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 너무 답답해서...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
   
.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 응급실 소음소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 아니... 진짜 말짱해. 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 내일 병원 문 열면,
     
가서 검사 받을게.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 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 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 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
거리 소음 + 걷는 소리.......

: 진짜 괜찮아?
: . 나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보기 전날이면, 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 배가 안 아픈 거야. 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봐.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래.
: 어머~ 당신 놀랬어? 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봐?
: 싫긴 뭐가 싫으냐? 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 내가 말을 말아야지...


* 걷는 소리....... 


    (
참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 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걸어본다.)

    (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 바쁜데...
: 회사 앞까지 왔는데?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 . 신경성 위염이래. 남편이 속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뭐 먹고 싶어?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 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
죽 떠먹는 소리.......

: 여기 괜찮지?
: 횟집에서 죽도 파네?
: .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 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 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
   
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 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 , 얘기해.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 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 당신 집은 오남매야. 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 거야.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 나도 할 만큼 했어. 맘대로 하라 그래.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
,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
.

 

   지난 30년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

   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 내게도 잔소리를 늘어놓셨
.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 무슨 며느리가 그렇
   
게 제멋대로냐고 했다. 자기는 임신을 핑계로, 추석 전부터 우리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 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 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
문 탕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태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
음악 탁 끄는(쇼팽의 이별곡) 소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해?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 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 ??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 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거야.
: 그게 말이 돼?


: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
     
을 거야. 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 금방 잊을 거야!

: ..... 여보?!.....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 침대에 혼자 누워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 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 했었어.
    
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 끝내 나 혼자 두더라

    (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 죽으러 가냐?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 그래. 누가 뭐래.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교수 알지? 그 친구도 위암3기였
     
는데, 멀쩡하잖아. 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안
   
심시키기 위한 건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큰 소리 치

   
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러면서도 난 끝까

   
지 중얼거렸다.)

: ? !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
   
고 있는 건가, 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

   
를 하시라고.... 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나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 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 3년을 살지, 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멱살이라도 잡고,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 ...... 여보!!...... 
    (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 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긴 싫었다.)

: 여보....
: (무뚝뚝) !
: ...........미안해.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아까 말했지? 차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 차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 그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 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 저거... 다 뻥이야
!
     
사람 겁주고... ?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 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 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 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 누구 부인이 죽었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

   
가 됐지만,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
   
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

   
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 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이다.)
   

*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보, 우리 이사갈까
    (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 새집으로 이사
     
가면 좋잖아.
: 됐다고 하잖아.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
갑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백번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대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
담배 불 켜는 소리.......
: ... 또 담배....
: ...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 코스모스?
: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 아니야. 가자.


*
바람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 뭔데?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 ?
: 내년 4월에 탈 거야. 2천만원 짜린데,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
     
그거 꼭 확인해 보고.......

: 당신 정말...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
문 여는 소리....... 

    (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 ?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 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 당신 정말 왜 이래!! 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 아니야. 난 새집 안들어 갈래. 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 베란다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 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 풀벌레 소리....... 

    (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 내가 뭐라 그랬는데....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 그랬나..
: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 그랬나...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 ..... !.....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 .................

: 여보.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간다여보?!..... 여보!?......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그렇게, , 아내를 보내 버렸다.) 
 
<
김기덕이 진행하는 모 방송프로그램에 나왔던 실제 이야기라 합니다.
읽다보니 저 역시 두눈에 눈물이 고이네요. 남자들 잘 하고 삽시다.>

 

?
  • ?
    동상 2006.09.27 11:19
    1년에 한번이라도 와이프에게 10만원 이라도 투자 합시다.
    위내시경값이 10만원이라고 하네요.  이번주 토요일 마누라하고 병원에
    가볼랍니다.
    정말 눈물이 찡하네요.
    꼭  남편이 나같은 사람같네요.  많은 반성 할랍니다
  • ?
    2006.09.27 14:27
    오늘 부터 반성하리라 그리고 변하리라 굳게 맘 먹어 본다.
    엊그제 마누라 한테 난 억ㅇ울해서 못죽겠어 ,
    나죽으면 나를아는 모든사람들이 가까운사람들은 6개월 덜가까운사람은
    50일 당신도 아마 일년이면 잊어버릴껄?
    40년 50년 을 알고지내던 사람들이 일년안에 기억속에서 완전히 지워진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못죽겠어!!!
    고로 우리는 벽에 똥칠할때까지 살기로 했다네
    그러나 인명은 재천이라 하니 있을때잘해라는 노래구절이생각 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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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이 계절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은식 2006.09.10 753
251 웃을수 있다는거 이은식 2006.09.12 745
250 누군가를 사랑할때 1 이은식 2006.09.14 943
249 사람이 산다는 것이 이은식 2006.09.15 757
248 冷冷하지만 仁義禮智信和 만들어봐여 표준 2006.09.15 878
247 경오회 모임 안내 1 표준 2006.09.15 1029
246 가을에는 그대와 걷고 싶습니다 이은식 2006.09.16 742
245 커피와 가을 5 이은식 2006.09.18 1012
244 사랑해 한마디는???? 1 이은식 2006.09.21 872
243 가을,,,.....?????? 이은식 2006.09.22 744
242 가을길을 걷고 싶습니다... 이은식 2006.09.23 891
241 빌려 쓰는 인생이라네?? 1 이은식 2006.09.25 796
240 좋은 친구는 인생의 보배 이은식 2006.09.26 839
» 남자들이여! 정답게 잘 하고 사시요 - 후회하지 말고 2 표준 2006.09.27 1368
238 홍시 2 이은식 2006.09.28 1456
237 오늘의 행복 이은식 2006.09.29 736
236 삶의 그리움 이은식 2006.09.30 742
235 한가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4 김표준 2006.09.30 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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