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열규교수 웃음의 인생학⑩]"당장 나가!"
어떤 사내의 아내가 집을 팔아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다. 한데 남편이 뒤늦게 이를 알고는 아내에게 소리쳤다.
“이것아! 살던 집을 이문을 남기곤 남에게 팔다니! 당장 집을 나가라!”
요즘의 세태며 민심이라면 이건 말도 안 된다.
아내는 웃음을 참다못해 배를 안고 뒹굴 것이다.
아예, 헛소리거나 미친 소리다. 남들의 비웃음 사기 딱 알맞다. 헛배가 부르다 못해, 입으로 내갈긴 방귀 소리쯤으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이다. 고려 시대에 있었던 사실이다.
“그렇다면 고려 시대가 미쳤구나!”
요즘이라면 적잖은 사람이 이렇게 코웃음을 칠 테지만, 이건 실화다.
주인공 이름은 노극청이라고 했다. 고려의 명유(名儒), 이 규보 선생이 그의 문집에 실어서 후세에 전한 실전(實傳), 곧 실존한 인물의 전기(傳記)의 일부다.
극청이 출타 중에 아내가 집을 팔았다. 몇 해 전에, 백은(白銀), 아홉 근을 주고 산 것을 열두 근을 받곤 팔았다. 관리이던 극청의 살림 형편이 어려워서 집이나마 팔아서 밥줄을 이어가자고 든 것이다.
한데 남편은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다.
집을 산 사람을 찾아갔다. 백은 세 근을 내 놓으면 말했다.
“당신께서 사신 집은 제가 기거한 지가 오랩니다. 낡은 것을 손질, 단 한 번 한 적이 없습니다. 살 때 값보다 더 받을 명분이 없습니다.”
한데 상대도 상당한 인물이었다. 못 받겠다고 버티다가, 그럼, 백은 세 근을 절에 시주나 하자고 나섰다.
두 사람이 엎드려 세 근의 백은(白銀)을 바쳤을 때, 그들 등에 불은(佛恩)이 눈비시게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집은 없고 아파트만 있는 게 세태다. 투기의 대상이면 주거(住居)도 화투짝과 다를 게 없다. 극청의 이야기 듣고 아파트들과 화투패가 얼마나 코웃음칠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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