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ㆍ 동촌(洞村) : 마을이 용두봉(龍頭奉) 동북 골짜기에 위치한다하여 ‘골몰(谷村)’이라 부르다가 1907년에 마을 이름을 洞村(동촌)이라 개칭하였다.
2003.09.26 16:42

용두봉과 송광재

조회 수 9891 추천 수 0 댓글 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용두봉

내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본 첫번째의 자연환경은  용두봉, 산(山) 이다
섬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다를 보기에 앞서서 산을 봤다는 것은 두고 두고  이야기 할만한
내용이다.

왜냐면 우리 동촌(洞村)은 섬 안에 있는 산중(山中)이다 .  연소 바다가에 정식으로 나간
일은, 한 참이  지나서야  리어커 끌고 선창에 김(해우) 마중갈때 그 때 똑똑히 봤던 것이다.
오로지, 용두봉만 오르고 내르고 하면서 산 에서 본 바다가 유일 했던 것이다.  섬놈이 섬
인줄도 모르고,  여나무살이 될때 까지 그렇게 살았다.   참으로 우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집 마당에서 본 송광재의 고목인 팽나무는, 꼭 달에 비추는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질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이다.   나는 초등학교 가기전 어린 시절에  송광재에서 둥근
보름달이 올라 오면 송광재에  있는 팽나무가  달과 함께 떠서 하늘로 올라 오는줄 알고 걱정
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도, 그 - 그  다음날에도 팽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내가 일곱살
되는 해의  정월 대보름날 아버지는  어린 나의  손목을 잡고 송광암 법당에  불공을 올리로
갔다.   그때 나는 그 간의 궁금증을 확실하게 해소했다

왜냐면 그날이  정월 대 보름이라 송광재 위로 훨씬 올라온 달빛을 받으면서,  그렇게
무섭기로 소문난 [당]을 지나  [산궐]을 지나서   [큰 솔나무] 밑을 지나  [샘골]을 지나,
[호레이 발툽] 을 밟고 송광재에 올라가니  내가 그렇게 걱정했던 , 그 계수나무와 토끼가
거기에 얌전히 있었다

그 후로 내가 성장하면서 생긴 버릇하나, 저녁이면  마당에 나와  늘상 송광재를 쳐다보는  
버릇과,  낮에는 용두봉을 쳐다 보면서 이곳저곳을 훌터보는 버릇이다. 지금도 역시 그렇다

용두봉 훌터보는 일은 우리 동촌뿐만 아니라 평지, 연소, 중촌,상하촌 출신이면 모두가 공감
가는 일이라  생각된다.  아침에 풀어논 우리 소가,  어디 어느 지점에서 잘 놀고 있는가  
아니면 갈래 (발정기)가 나서,  남의 동네까지 원정가는 일은 없는지 , 혹은 간식꺼리를 찾아서
남의 때밭에 들어가서 곡식을 먹고있는지, 아니면 절 깍끔에 들어가서 코뚜리는 제대로 남아
있는지 등등  걱정을 하면서 항상 수시로 용두봉 전체를  파악하는 눈이 생겼다.

지금도  이런 습성은 성인이 되어 요긴하게 응용할때가  참 많다.
여하튼 좋은 버릇이고  쓸만한 습성으로 본다.
전체를 보는 눈이랄까. 아니면 어느 하나의 점을 보는 눈은  훈련이 되었으니 말이다.

동촌 출신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들어와서 보니 제일 먼저 첫번째로 들어 왔네요.
나는 면장집 4남 윤숙입니다. 이렇게 인사 올리게 되어 죄송하면서도, 무척 반갑습니다.
모두 건강 하실것으로 믿습니다만  혹, 행여나 좋은 소식 또는 안타까운 소식들이나,
애경사에 대한 소식들 많이 많이 올려 주시고요 고향소식이나,우리 동네 향우 개개인의
소식들 많이들 연락하면 좋겠습니다.

자주 방문하여 인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동촌 마을 향우여러분, 건강하시고요
향우 댁 님의 가정에  신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충심으로 빕니다

  2003년 9월 26일     마포에서  노윤숙 拜上

  • ?
    김춘우 2003.09.26 20:10
    안녕하세요?

    성함을 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저에 몇 년쯤 선배님 인듯 싶습니다만...
    혹시 제가 잘못 알았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중촌에 살았던 금중9회 김춘우라고 합니다.

    정일이 친구와 동창입니다.

    용두봉 아래 그 재가 “송광재”였군요

    송광암 가는 길에 있어서 송광재라고 했나보군요

    저는 그 재 이름이 송광재라는 것을 선배님 덕분에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해풍에 꽤나 시달려서 그랬는지 그리 크지않은 앙상한 팽나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 팽나무가 지금도 있습니까?

    그 재가 방향이 약간 연소방향으로 틀어져 있어서 동촌쪽에서는 보였어도 중촌에서는 안보였어요

    동촌, 하면 생각나는 것은 동촌과 경계선인 뒷메뚱에서 벌어졌던

    일명, 정월대보름의 대 혈투!!(제가 그냥 붙여 본겁니다.^^)

    쥐불놀이와 돌팍싸움이 생각납니다. ㅎㅎㅎ

    그날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들 모여서 깡통불 하나씩 들고 뒷메뚱으로 올라 갔었지요
    언젠가 보았는데 어릴적에는 그렇게 넓었던 뒷메뚱도 이제는 조그만하게 보이더군요

    아마 동촌의 그 고개 부근에 사셨던 댁에서는 비상이였겠죠?^^
    여기 저기서 날아오는 돌팍에 항아리는 다 깨지고...우리들 머리빡도 여럿 깨지고...

    다음날이면 언제 그런일이 있었나? 모르는척 시치미 떼고^^*

    같은 경계인 상하촌과는 그런일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동촌과는 무슨 웬수간이라도 되는 것 처럼 어김없이 한바탕 난리를 치뤘었지요^^

    아마 중촌부락과 동촌부락간에 오래전 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대보름 행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는지 모르겠네요

    알만한 분인 것 같아 반가운 마음에 댓글 올려 보았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
  • ?
    김경민 2003.09.27 09:31
    마을 게시판인데 글이 마음에 닿아서..
    한참 후배12회 궁전 김경민입니다
    우리마을 에서도 용두봉을 바라보면 항상 그 송광재와 팽나무가 보였습니다.
    선배님 글 다시 한번 가슴에 담아 두겠습니다.
  • ?
    정성수 2003.10.11 00:33
    오랜만에, 육지에 한번 들려 보는구먼,

    그당시에 "동촌" 을 어떻게 섬이라고 할수있을까?

    금산은 전부 육지였지, 맞또의 각도로 봐서는,

    섬의 모든것을 아침 과 저녁으로 느낄수있었던곳은, 바로 맞또였어, 앞을보면 바다이고 뒤를 봐도 바다이고 옆을봐도 바다이고 또 옆을 봐도 바다였어.

    그래서 육지에 가면은 호기심이 많았는데, 거기에는 개구리도있고, 뱀도있고, 또한 올챙이도 있었어, 어느날 "송광암" 에들어가서, 마음을 깊게 가다듬고, 곤충 벌레 소리 들으면서 며칠을 보냈는데, 섬이 너무도 그리워서 나는 섬으로 되돌아 오고말았어.

    아직까지도 동촌은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있어.

    송광암으로 올라가는 조그마한 돌길들이 지금도 생각난다.

    나언제 다시한번가서 송광암 밑에 졸졸 흐르는 물밑에서 자네와 함께 쌀 막껄리를
    날이 새도록 그냥 계속 마시고 싶어.
  • ?
    용두봉 2004.07.03 13:25
    성수야 거기가 바로 송광재 올라가는 샘골이란 곳이다
    그리고 돌계단은 옛말에 의하면 호랑이 발톱자국이
    있다고 해서 동촌 말로 "호레이발톱'이라고 했단다
      [01][01][01]
  • ?
    희정 2004.11.23 20:24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줄은 몰랐습니다.
    동촌사람에게서 용두봉은 추억의 동산이었고 미래을 꿈꾸는 용트름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소를 몰고 다녔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용두봉과 송광재에 머믈러있습니다.
    지난명절에 길도 없는 송광재를 낫을 들고 길을 만들어 가면서 용두봉을 올랐습니다. 우거진 숲사이로 옛날의 길들이 아니 호랑이 발톱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