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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56]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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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 역도산은 폭력배들의 협박에 코웃음만 쳤다. 사각의 링에서 서양의 거구들이 스승을 향해 돌진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냉혹한 스승이 그들의 협박에 벌벌 떨 리 만무했다. 상대방이 시비를 걸면 즉각 반응을 보인 후 그 다음 행동을 취해야 했는데 스승은 마치 귀여운 애견을 보는 듯했다.


pho_200607140852570501000005010100-001.jpg
↑ 아마도 언론에 처음 공개되는 사진인 것같다.
스승(역도산)이 떡메를 들고 떡방아를 찧으려 하자 제자들이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다.
1962년쯤 찍은 사진인데 우린 그날 떡 파티를 했다.


 
폭력배들이 "야, 역도산"하며 이름을 부르고 다가오자 스승은 "이봐, 친구들. 조용히 술 마시고 가게"라며 점잖게 타일렀다. 그중 한 녀석이 기분이 상했는지 몸속 어디선가 칼을 꺼낸 후 "야, 네 배엔 칼이 안 들어갈 것 같애"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런 말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폭력배들은 상대방을 협박할 때 "네 배엔 칼이 안 들어가냐"는 말을 하는 것같다. 나도 폭력배들에게 협박당한 적이 있다. "김일 배엔 칼도 안 들어가는 줄 알아"라는 섬뜩한 말을 듣곤 했다. 폭력배들이 협박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 말은 아마도 이때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협박을 당해도 스승은 눈 하나 깜짝 않는다. 스승은 오히려 배를 갖다 대고 "이 녀석들아, 쑤셔 봐! 내 배에 칼이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보자"라며 배짱 좋게 배를 내밀었다. 그러면 이들 중에는 눈치를 보며 후퇴하는 이도 있었지만 일부는 진짜 칼을 갖다 대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스승이 단도에 찔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기까지 손상은 입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그 두툼한 배짱 하나만큼은 알아 줄 만했다.
 
스승에게 협박과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동경의 한 술집에선 거구의 한 외국인이 스승이 마시던 술잔을 뺏아 자신이 죽 들이킨 적도 있었다. 스승이 유명한 프로레슬러인 줄 알고 일부러 그랬던 것이다. 그 외국인이 어떻게 됐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또 저녁에 동경 시내를 걸을 때 한 덩치 큰 사내가 "우린 당신의 팬인데 왜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느냐"며 다짜고짜 스승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스승이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다가 다른 종목의 운동 선수와 부딪쳤는데 그는 자신의 힘자랑을 하다가 된통당했다. 다들 스승을 이기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사실 스승의 레슬링 도장에는 힘 좋은 거구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 중 몇 명을 보디 가드로 데리고 다닐 만도 했다. 그러나 스승은 밤길에도 혼자 움직였다. 스승이 워낙 많은 협박과 시비를 겪자 내가 나서서 경호하겠다고 했지만 스승은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천하의 레슬러 역도산이 보디 가드를 데리고 다니면 얼마나 연약한 사람으로 보겠는가였다. 그러니 늘 위험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방은 더 심했다. 스승을 죽이겠다고 총으로 겨누는 일도 있었다. 스승이 총을 무서워했으면 아마도 칼도 무서워했을 것이다. 스승은 그럴 때면 듬직히 서서 가슴을 펼쳐 보이며 "쏴"라고 오히려 위협(?)했다. 사실 사소한 원한을 사서 생명을 위협받는 일처럼 바보 같은 일이 없는데 말이다. 스승은 이들에게 원한을 사더라도 굴복하지 않았다.
 
스승은 야쿠자 조직원들의 회유를 뿌리쳤지만 꼭 거부한 것만은 아니다. 오야붕(두목)들은 상대해 줬다. 많은 조직의 오야붕들은 스승과 친분 관계를 맺고 싶어했다. 스승은 그들이 신사적으로 나오면 거절하지 않았다.
 
스승이 야쿠자와 친분 관계를 맺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당장 오인한다. 마치 스승이 야쿠자와 결탁해 레슬링 단체와 사업체를 키웠나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스승이 만났던 오야붕들은 대개 조선인 출신이었다. 그중에서도 동경 긴자에서 세력을 떨쳤던 동성회 오야붕 정건영이 대표적이었다. 일본인 이름은 마치이 히사유키. 그는 일명 '긴자의 호랑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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