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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월포(月浦) : 마을앞 포구가 반달형으로 생겨 “달개”라 부르다가 訓借(훈차)하여 월포라 하며 조선후기의 옛지도에도 월포로 표기되어 있으며 마을뒤의 고개를 “달갯재”라 하였는데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月浦(월포)마을로 현재에 부르고 있다.
ohshire2006.08.02 18:16
달개 후배님,  이건 정말 극비 사항인디요......
비솟골 샘물 한바가지 퍼 마시고 월포재를 바라보니 올라갈 일이 깝깝해서 한참을 생각하다가,
우리 순진한 노랑노리 후배를 꼬셔서, 그 노오란 유자를 서리하러 유자나무에 올라 갔다가
떨어지면서 유자나무 끌텅이 파아악!!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찔러 부러 갔고,
지금까지 푹 들어간 휴터가 남아 인는디,
이 사실을 안 사람은 나하고, 남천 후배하고 둘 뿐이고.
물론 그 당시 그 유자나무 주인 집은 폐허가 되서 아무도 살지 않아
마당에 잡초가 하늘를 찌를때니 그런 용을 써 봤제라 잉!
그 샘물하고 탐스런 노오란 유재하고 참 잘 어울렸는디.....
이제 하나 하나 조사하면 다 나오는디  이를 어쩔까나???
그라고, 말은 바로 하고 살아야제라.
내가 서울서 폼 잡고 살 때가 1969년 겨울 부터인디, 오염된 서울이 더럽게 싫어서
내려온 이몸을 광주 촌사람이라 고라 고라 잉!!
낮짝만 봐도 불쌍한 서울 사람들을 내가 얼매나 불쌍히 여기고 산지나 아요??
그라고 고향을 찾아 올라믄 신발에 묻은 오염된 먼지와 세균들은 탈탈 털고들 옷시요 잉!!
안 그라믄 발도 못 부치게 할랑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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