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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32]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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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숙소에 있으면 공허한 마음에 고독이 엄습해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서 프로레슬링 하나만을 위해 달려온 어느 날, 외로움에 텅 비어 있는 내 마음에 팬이었던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이름은 이다다. 일흔을 바라보는 이다는 지금도 일본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 이다는 허전한 마음, 비어 있는 마음을 꽉 채워 주는 것 같았다.

 

프로레슬링 경기는 늘 '너 죽고 나 사는'식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 사투의 경기를 끝내면 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어느날 경기에서다. 난 상대 선수의 반칙으로 인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너무 공격을 많이 당해 거의 정신을 잃을 즈음이었다. "긴타로, 박치기! 박치기"라고 외치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사력을 다해 박치기를 터뜨려 이겼다. 심판은 나의 팔을 들고 "승리자"라고 했지만 난 그 팔을 들 힘조차 없었다.

 

승리는 했지만 이리 차이고, 저리 꺾이고, 밟혔으니 링에서 혼자서 내려 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었다. 동료들에게 거의 기대다시피 해서 링에서 내려왔다.

 

링에서 내려온 후 로커로 들어가는 동안 팬들은 박수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보냈다. 그 순간 이다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이다는 마치 사랑했던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 듯 어쩔 줄 몰라 하며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팬들의 함성에 묻혀 들을 수 없었다.

 

로커에 들어와 큰 대 자로 뻗어 천장을 멍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기력이 돌아왔다. 동료들은 "긴타로,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난 "그래"라고 말했지만 상처 부위에서 피가 흘렀다. 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갈증에 물을 마셨다.

 

피가 계속 흘러내리자 동료들은 "상처를 꿰매야 한다"라고 설득하지만 난 막무가내였다. "괜찮다. 꿰매도 내일이면 다시 벌어질 텐데, 뭐." 꿰매는 대신 소독을 하고 강력 반창고 같은 것으로 상처 부위를 억지로 막았다. 이 정도의 상처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경기장을 나오니 이다는 가지 않고 있었다. 이다는 안타까워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강력 반창고 사이로 피가 떨어지자 이다는 놀랐다. 그래서 "이 자리는 피가 쉽게 나오는 부위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이다를 안심시켰다.

 

이다는 내가 이런 몸으로 다음날이면 경기장에 나서는 모습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이다는 "그런 몸으로 어떻게 경기하느냐"며 "내일만은 기권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솔직히 나도 이다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이다와 함께 조용한 곳에서 일주일 정도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스승 역도산이 알면 날벼락이 떨어질 텐데 ….

 

이다는 이후에도 나의 경기장에 계속 나타났다. 나는 이다 앞에서 지는 것이 싫었다. 이다만 지켜보면 힘이 불끈 솟아났다. 간혹 이다가 경기장에 오지 않으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쯤 되면 나와 이다의 관계를 상상할 게다. 어디까지 사랑을 나눴을까 궁금해 할 것 같다. 아끼고 싶은 것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이다. 난 이다와 함께 팬과 레슬러로서 만남을 가졌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느 날 만신창이가 돼 숙소로 돌아왔다. 이다가 나의 상처 부위를 어루만져 주었다. 난 그것을 잊지 못했다. 그때 이다에게서 가족 같은 냄새가 묻어났다. 이다의 따스한 손결은 지치고 힘든 타국 생활을 잊게 해 줬다. 이다는 나의 허전함도 채워 줬다.

 

그 이다를 거의 반세기 만에 다시 만났다. 올 3월 1일 도쿄에서다. 나의 일본 팬클럽 회장 난바씨가 이다에게 내가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45년 전 이다를 처음 만났던 도쿄 시부야의 일식집, 그곳에서 이다를 만났다. 세월은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추억 속의 이다가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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