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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31]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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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치기 한 방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많은 팬들이 생겨났다. 그 속에서 그림자처럼 다가온 한 여인, 그 여인은 안개 속을 헤매는 내 마음을 환하게 비췄다. 그녀와의 만남은 가슴에 그리움만 가득 채운 한순간의 불장난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스타가 되면서 이상할 정도로 여성팬들이 많았다. 경기를 끝낸 후 동경 아카사카 숙소로 돌아오면 여성팬들이 장사진을 쳤다. 그러면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사인을 해 주었다. 난 그때만 해도 여자를 돌처럼 보았다. 오직 프로레슬링에서 성공한 후 금의환향,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뿐이었다. 더욱이 고국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몸가짐에 특히 신경을 썼다.

 

그러나 고국을 떠난 지 4년이 되면서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는 30대 초반이 아니었던가. 사랑은 어느 순간 불쑥 찾아왔다.

 

난 동경 시부야에 있는 한 일식집의 단골이었다. 고향 생각이 나거나 우울하고 외로울 때면 그 집으로 달려가 정종을 마셨다. 그러면 그집 여사장은 말동무가 돼 주었다. 그 여사장은 때로는 친구, 때로는 누이처럼 느껴졌다. 난 도장에서 기분이 언짢은 일이 있으면 여사장의 위로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사장은 20대 초반의 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그 여인은 곱고 예쁜 얼굴, 군살 없는 몸매, 일본인 특유의 상냥함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나를 만나 영광"이라는 그는 나의 열렬한 팬이었다. 내 주요 경기를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기계체조를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꽤 잘했다고 한다. 허리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할 수 없어 고교 졸업과 동시에 직장 생활을 했다. 그가 다닌 직장은 한국에도 꽤 알려진 유명한 회사였다. 그 회사 회장 비서였다.

 

레슬링을 남자들만이 좋아하는 경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난 그녀처럼 가날픈 체구를 가진 여인이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는 데 놀랐다. 그녀는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와 스승 역도산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스승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구석구석 알고 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탄 그녀를 속으로만 '괜찮은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그녀가 마음속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경기마다 쫓아왔다. 그리고 목청껏 응원했다.

 

열렬한 여자 팬이 생기면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진다. 스승이 "긴타로, 오늘 경기 이겨야 해"라고 말하면 습관적으로 "예"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오오키 긴타로 선생님, 파이팅! 이기세요"라고 외치면 승리의 엔돌핀이 치솟았다.

 

사실 상대 선수에게 가격당하면 그대로 눕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 팬들이 보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긴타로, 일어나"라고 외치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초인적 힘을 발휘했다. 문제는 팬들의 성원을 받으며 링에 섰을 때는 모르는데 경기를 끝내고 나면 허무함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경기 후 몸이 성한 곳이 있다면 다행이다. 경기할 때는 모르지만 로커로 들어오면 온몸이 쑤신다. 얼굴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팔목과 발이 아파 잘 걸을 수도 없다.

 

그런 몸으로 숙소로 돌아오면 정말 처량해진다. 피투성이가 된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사람도 없다. 숙소에서 대충 밥을 먹고 눈을 감고, 그 다음 다시 경기장에 가고, 또 그렇게 돌아오고. 당시 나의 동료들은 대부분 결혼,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외로울 때면 내 곁에도 가족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절로 들고는 했다. 타국에서 느끼는 그 외로움과 설움은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이끌린 까닭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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