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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30]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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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가 단련된다는 것. 나도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거친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뇌가 진짜로 단련됐다. 머리가 돌덩이로 바뀔 즈음 이마에는 수십 개 파편이 박혔다. 어머니 머리를 닮아 곱고 깨끗했던 나의 머리는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었다. 찢어진 자국에 푹 파인 흉터의 이마, 금이 간 목뼈. 목은 곧바르지 않았다. 마치 목에 무거운 추를 달아 놓은 듯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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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덩치 큰 서양 선수들을 상대로 박치기를 할 경우에는 가혹할 만큼 세게 받았다.
이들은 나의 박치기 한 방에 비틀비틀거리다가 매트에 쓰러졌다.


 
참 희한한 것은 어느 날부턴가 머리가 어떤 물체와 부딪쳐도 아프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무로 이마를 세게 쳐도, 또 주먹으로 팍 쳐도 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일부러 나무를 들이받아도 그랬다.
 
스승 역도산은 나의 신체에 핵탄두인 박치기가 장전되면서 본격적으로 경기에 출전시켰다. 1959년 초부터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박치기를 선보였다. 나는 경기마다 박치기를 작렬시켰다. 스승의 가라데 촙 한 방에 덩치 큰 서양의 선수들이 나자빠진 광경에 대리 만족을 느꼈던 일본인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 내가 박치기 한 방으로 덩치 큰 선수들을 나자빠뜨리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기 시작했다.
 
나의 박치기는 브라질 선수들이 선보였던 박치기와는 달랐다. 브라질 선수들은 양손으로 상대의 귀 부위를 잡은 후 머리를 당기면서 받는 박치기였다. 하지만 난 사마귀처럼 허리를 뒤로 젖힌 후 받았고, 다이빙을 하면서 받았고, 위로 점프하면서 받았다.
 
나의 이런 박치기는 듣고 보지도 못했던 것이라 일본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기자들은 경기가 끝나면 몰려와 박치기에 대해 질문했다.
 
"오오키 긴타로는 머리가 아프지 않은가", " 그 박치기 기술을 누구에게 배웠나", "단련 과정은 어떠했는가" 등 질문을 쏟아 냈다. 그리고 상처 투성이 이마를 소개하며 "박치기 단련으로 생긴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박치기가 연일 언론을 타면서 이에 대한 논란도 없지 않았다. 핵심은 "박치기는 프로레슬링 기술과 무관하다. 따라서 반칙이다"였다. 그 논란은 경기에 질 것을 두려워한 선수들이 만든 것이다. 여기에 조선인인 내가 박치기 한 방으로 졸지에 주목받자 깎아내리려는 차별적 시선도 한몫했다.
 
난 그들의 주장에 당당히 맞섰다. 그렇다면 주먹 치기·목 조르기·머리채 쥐기 등도 금지해야 했다. 레슬링 선수들이 자신들의 기술을 맘껏 뽑내 보이며 펼치는 사투를 관객들이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는 상황에서 이런 논란은 부질없었다. 일본 언론은 박치기는 내가 피로 만든 나만의 전매특허로 인정했다.
 
난 특히 미국과 브라질 선수들에겐 가혹할 만큼 박치기를 했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로프 반동으로 돌아오는 선수의 배에 박치기를 터뜨렸다. 가격당한 선수는 그대로 뻣뻣하게 링 위에 쓰러졌다. 이어 누르기 한판으로 승리를 따냈다. 또 공중에 붕 뜬 후 떨어지면서 정수리를 가격했다. 이런 박치기에 한 방 맞으면 상대 선수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매트에 쿵 하고 쓰러졌다. 팬들은 꽉 막힌 체중이 뚫린 것처럼 환호했다.
 
어느 날 레슬링을 중계하는 TV 자막에는 이런 것이 떴다. '어린아이들은 흉내 내면 안됩니다.' 박치기 열풍이 불면서 어린이들이 나의 박치기를 흉내 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자고 나면 스타가 된다는 말이 있듯 난 어느새 스타가 되었다. 스타가 되면서 많은 팬들이 몰려들었다. 어느덧 나의 숙소에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보낸 팬레터가 수북히 쌓이기 시작했다. 그 팬 중 한 명이 다가왔다. 곱게 생긴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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