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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2015.04.27 09:40

10. 오청원(吳淸源)의 치수고치기 10번기(10)

 

19416, 두 번째 10번기가 성사되었다.

기다니와의 가마쿠라 10번기가 종료되자 요미우리 신문사는 다음 치수고치기 10번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청원을 상대로 하려면 현재엔 재야에 있지만 슈사이 명인 이후 바둑계의 최장로인 기정사 총수, 가리가네 준이찌(雁金準一) 8단을 제외하면 따로 없을 것이란 결론이 나왔다. 당시 일본기원에는 8단이 따로 없었으므로 원래 같으면 가리가네 선생과는 호선으로 둘 수가 없는 상태지만, 가리가네 선생이 오청원과 호선으로 한번 두고 싶다고 한 바 있어 요미우리 신문사가 나섰다.

 

오청원을 일본기원의 대표로, 가리가네 8단을 기정사의 대표 자격으로 10번기를 실현시켰다. 물론 호선이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찍이 혼인보 슈사이와 명인자리를 다투다가 재야에 숨은 가리가네 8단을 재등장시켜 가리가네 8단이 승리하면 바둑계의 장로로 후대할 요량이었다. 그러나 가리가네가 슈사이 명인과 결별하고 결성한 기정사는 일본기원과 원래 사이가 나쁘고, 특히 단위가 비비꼬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기원에서 기정사와의 치수고치기 10번기를 허락해줄 리 만무했다. 이런 이유로 가리가네는 오청원과의 10번기를 위해 기정사를 떠나 경운사를 결성하였다. 그런데 가리가네의 인덕을 따르던 기사들은 모두 경운사에 참가하는 바람에 기정사를 모두 경운사로 옮겨놓은 형태가 되었다. 가리가네 8단이 기정사를 떠나 일본기원으로서도 그 이상 그와의 대국을 거부할 이유도 없어졌다. 오청원과 가리가네의 치수고치기 10번기는 이렇게 성립됐다. 제한시간은 가리가네가 장시간을 요구하고 오청원은 단시간을 희망했다. 요미우리 신문사의 조정 끝에 제한시간은 16시간으로 결정되었다. 대국장은 '요미우리 바다의 도장'. 이 치수고치기에는 일본기원의 명예가 걸려있었다. 오청원이 진다면? 일본기원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리가네는 일본기원 소속이 아니었으므로 그 때까지 일본기원엔 그와 대국한 일도, 그의 기보를 연구한 일도 없었다. 오청원은 오직 한번 4단 시절 요미우리 선발전에서 그와 만나 흑을 잡고 2집을 이긴 일이 있다.

 

19418. 3일간의 제1국은 가리가네의 흑번이었으나 오랫동안 공식시합에서 떨어져 있던 탓인지 가리가네는 실력 발휘를 못하고 불계패했다.

 

2국은 10월에 열렸다. 오청원의 흑번이었다. 이 바둑에서 오청원은 가리가네의 힘을 실컷 맛보았다. 끈적끈적한 힘의 무시무시함은 다른 기사와의 시합에서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첫째 날 엎치락뒤치락 결투가 벌어져 육탄전이라고 해야 할 싸움은 사흘째 계속되었다. 오청원은 중반부터 악전고투했다. 오청원은 가리가네의 맹공을 견디며 백이 약간 우세하다는 평가 속에 3일째를 맞았다. 3일째 밤은 둘 다 악전고투였는데, 특히 가리가네는 고령이어서 관전하던 사람들의 말로는 어깨 숨을 쉴 정도라고 했다. 흑이 약간 고전했으나 승패불명인 채 계속 되더니 끝내 기력의 한계에 이르렀음인지 208수만에 오청원의 6집 반승으로 끝났다. 이 바둑이 만일 가리가네의 실착이 없었더라면 후세에 남을 명국으로 기록될 만 하다.

 

3국은 1227일 열렸다. 흑의 가리가네는 백의 큰 모양에 쳐들어와 오청원을 짓밟고 오청원은 수습에 명수다운 솜씨를 발휘했으나 끝내 4집을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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