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 지르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중략)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하략)
누구나 다 아는 우리 국민의 마음에 영원히 회자 될 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다. 말의 연금술사인 소월은 이 ‘진달래꽃’ 외에도 민요적인 수많은 서정시로 겨레의 한을 승화시킨 공로로 1999년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도 칭송되었지만 작금에는 친일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아픔도 함께 겪은 사람이다.
각설하고,
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구두의 뒤축을 구겨서 신고 있다. 먼 길을 걷지 않고 담배를 사러 가거나 목욕탕에 가는 등 가까운 곳에 갈 때는 신발을 제대로 신지 않고 구겨서 신는 나를 보고 딸래미는 ‘아빠는 구두도 저렇게 신으니까 오래 못 신는다.’고 타박이다. 그런데 이것도 습관이라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예전 까까머리 중고교 시절.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나팔바지를 입고 가방은 옆구리에 끼고 껌을 쫙쫙 씹으며 눈을 희번덕거리며 걷는 학생을 보면 영락없이 신도 구겨서 신고 있었다.
바로 불량학생의 표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불량학생인 것은 아니었다.
아주 얌전하고 공부만 하는 모범생들도 그렇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린 학생들의 소영웅심의 발로였으리라.
이렇게 신을 구겨서 신는 것을 ‘지르신다’라고 한다.
도입부인 ‘진달래꽃’에서 소월은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고 했는데 이 ‘즈려밟다’ 는 ‘지르밟다’의 잘못이다. ‘지르밟다’는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라는 뜻인데 또 사뿐히는 웬 기교인지!
한편 옷 따위에서 더러운 것이 묻은 부분만을 걷어쥐고 빤다는 뜻의 ‘지르잡다’라는 단어도 있다는 것도 함께 소개한다.
지르신다 - 신이나 버선 따위를 뒤축이 발꿈치에 눌리어 밟히게 신다.
지르밟다 -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
지르잡다 - 옷 따위에서 더러운 것이 묻은 부분만을 걷어쥐고 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