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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40]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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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이노키는 타고난 프로레슬러였다. 프로레슬링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남들 1년만에 익힐 기술을 수개월도 되지 않아 습득했다. 스승 역도산이 한가지 기술을 가르켜 주면 이노키는 두가지를 소화하고 또 응용할 줄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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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말 일본 도쿄를 방문한 나는 록번기 한 중식당에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해후했다.
역도산 문하생 중 나와 가장 가까웠던 이노키는 평생 라이벌로서도 한 시대를 풍미했다.


 
사실 스승이 이노키 첫 시합 상대로 문하생중 한명을 지명한다고 했을 때 난 내가 아니기를 바랐다. 난 나름대로 팬도 확보했다. 소위 뜨는 프로레슬러였다. 그런 내게 이제 갓 레슬링에 입문한 이노키 첫 상대가 되는 것이 솔직히 떨떠름 했다.
 
이겨도 본전, 패하면 망신인 이 경기에 이노키 첫 경기 상대로 나를 지명한 스승의 저의가 궁금했다. 스승은 그 많았던 문하생중 하필이면 나를 지명했을까. 스승이 나를 이노키의 상대로 붙인 것은 훗날 라이벌이 될 것임을 예상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은 강자와 상대케 해 이노키의 담력을 키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나이로 봐서도 이노키 보다 열 세살 위였다. 이노키 대선배다. 그와 경기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현실을 비켜갈 순 없었다.
 
한데 사람이란 참 이상했다.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한 적이 없었던 나와 이노키는 경기 날짜가 확정되면서 약간 경계하는 듯 했다. 난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이노키 입장에선 같은 방을 쓰고, 또 나를 형처럼 따랐기에 그 역시 나와 경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레슬링은 다른 운동과 달리 상대의 신체를 공격해야 한다. 그런데 선배인 나를 공격하는 것이 좋을리 없었을 것이다.
 
이노키는 경기를 앞두고 "선배 잘 부탁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는 나와 경기 일정이 잡힌 후 레슬링 연습에 더욱 매진 했다. 경기가 잡힌 후 부터 가끔 저녁에 늦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어디갔다 왔느냐"라고 물으면 "친구들 만나 늦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선 땀냄새가 났다. 그는 남몰래 연습한 것이다. 또 새벽 일찍 일어나 로드웍을 하고 도장도 가장 먼저 갔다. 원래 도장은 내가 가장 먼저 가서, 가장 늦게 나왔다. 언제부턴가 이노키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난 그런 것까지 이노키와 경쟁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마음껏 운동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보다 늦게 도장에 나갔고 일찍 들어왔다.
 
그가 밤늦게 운동해서 들어오면 너무 불쌍해 보였다. 당시 이노키 나이는 스물도 안됐다. 그 또래 친구들은 부모님 뒷바라지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과 떨어진 채 나와 생활하면서 거친 레슬링을 했으니 그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지쳐 쓰러져 코골며 자는 그의 모습을 보면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런 이노키 모습을 보면서 져 줄까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내가 설령 스승과 맞붙더라도 누군가 하나는 져야한다. 사소한 감정은 결국 나를 한단계 올려놓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어 승부만큼은 인정사정 봐 주면 안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1960년 9월30일 도쿄의 타이토 체육관. 우린 같은 로커룸에 있었다. 이노키는 약간 긴장했고, 말이 없었다. 표정에선 비정함이 묻어났다. 그는 로커에서도 쉬지않고 러닝도 하고, 허리를 돌리면서 몸풀었다. 로커 스피커에선 안토니오 이노키 입장이란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어 내가 호명됐고, 링으로 올라갔다.
 
이노키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한 후 픽 웃었다. 아마도 공격하더라도 이해해 해주고, 미안하다는 느낌같았다. '땡'하는 공이 울리자 우린 서로를 공격하지 못했다. 심판이 '파이터'라 외치자 그제서야 선·후배 관계를 잊었다. 이노키의 묵직한 팔이 나의 허리를 휘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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