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장병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나 역시 누구나 역도산 제자가 될 수 있었다면 결코 역도산 제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역도산 제자는 도장에 입문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혹독한 시련을 동반하는 훈련을 견뎌 내야 비로소 역도산 제자가 된다. 나는 정식 훈련에 들어갔지만 아직까지는 역도산의 `반쪽 제자`였다. 그 진짜 제자가 되기 위해선 거칠고 험악한 그 훈련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정식 훈련 명령이 떨어지면서 당장 먹거리와 대우가 달라졌다. 우선 식사였다. 매일 고기를 먹었다. 그 밖에 치즈와 버터 등으로 영향을 보충했다. 주식은 빵과 밥을 번갈아 먹었다. 먹는 것만큼은 풍성했다. 체중은 금세 100㎏을 훌쩍 넘었다. 빨래는 나와 최고참 선배 것만 책임지면 됐다. 예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대우도 달랐다. 선배들은 훈련 파트너로 인정했다. 그들이 경기를 할 때면 함께 차를 타고 갔다. 그리고 식당에서 마주보며 잡담을 하면서 밥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점 혹은 가게를 가더라도 역도산 제자라고 하면 주변에선 "역도산 사인을 받아 줄 수 있느냐", 혹은 "역도산 사진을 구해 달라"는 등 요구가 빗발쳤다. 굳이 따지자면 이것이 달라진 나의 명(明)이었다. 명이 있으면 암(暗)도 있게 마련이다. 훈련이었다. 훈련 프로그램은 기초 체력 증진을 위해 단련 쪽에 맞춰졌다. 시간별로 달랐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새벽, 잠에서 깨 눈을 비비며 거리를 나서 한 시간에 걸쳐 조깅을 했다. 얼른 갔다와 선배들의 아침 식사를 거들었다. 밥을 먹고 난 후 선배들과 함께 역도산 도장으로 향했다. 오전 10시쯤부터는 체력 강화다. 역도산 도장 한가운데에는 `투혼(鬪魂)`이라 쓰인 큰 글씨가 있다. 그 글자를 보면서 훈련하다 보면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가쁜 숨소리, 쩌렁쩌렁한 기압소리에 체육관은 어느새 뜨거워졌다. 선수들의 가쁜 호흡과 육중한 바벨이 떨어지는 소리가 체육관에 휘몰아친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두 배는 더 나갈 것 같은 바벨을 들어올리기가 버거운지 선수들의 표정이 일그러지기도 하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에 선수들의 호흡은 턱까지 차오르고 입에선 단내가 났다.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 한 시쯤 선수들은 꿀맛 같은 낮잠으로 피로를 풀었다. 하지만 나에겐 잠깐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라는 스승의 일갈 속에서 정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심리 훈련에 전념했다. 상대 선수를 생각하며 어떤 자세로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 상상 훈련 속에서 그와 일전일퇴를 거듭했다. 오후 네 시부터는 `지옥 훈련`이라 불리는 서키트 트레이닝을 소화해야만 했다. 30초 동안 무릎을 허리까지 올리며 제자리뛰기를 한뒤 다시 30초 동안 각종 기구를 이용해 근지구력을 키우는 동작을 반복했다. 스승은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매섭게 다그쳤다. 해는 저물었지만 훈련은 끝나지 않았다. 별도의 저녁 훈련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휴식을 취했지만 나는 한가하게 휴식을 할 수 없었다. 세계 챔피언의 영광을 꿈꾸며 훈련에 온힘을 쏟아 부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매일 똑같은 훈련이 반복됐다. 반복되는 혹독한 훈련은 마치 나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훈련은 나를 부러뜨릴 것 같았지만 결코 꺾이지 않았다. `악`과 `깡`으로 버텨 냈다. 그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면서 내 눈은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경기를 하든 상대방의 눈빛을 보면 경기의 승패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레슬러들은 링에선 눈동자가 빠져나올 정도로 눈싸움을 벌인다. 누구의 눈이 더 이글거리느냐에 따라 상대방은 기가 죽게 마련이다. 눈이 불타는 것은 힘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혹독한 훈련을 하다 보면 저절로 눈이 이글거려진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괴물`로 변해 갔다. 정병철 기자 <계속>
사진=이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