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도 가로등도 없던 60년대 초 시골 동네 밤골목은 참으로 무서웠다
달 없는 밤에는 길가다가 어떤 놈이 뺨을 치고 도망가도 모를 만큼 캄캄했고
걷다가 신발짝이 벗겨져도 밝은 날 다시 와서 찾아가는 일은 예사.
그 당시 내가 우리 큰 언니 땜에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 하면 나는 지금도 큰언니가 밉다.
우리집은 딸은 넷인데 그 넷중에 나는 셋째 열두살이고 큰언니는 열아홉이였다.
한창 보송 보송 물 오르던 큰언니는 아마 춘향이도 울고 갈 우리동네 미인이 아니였을까 싶다.
딱지 못뗀 총각들은 큰언니의 미모에 감히 입도 못 때보고 침만 꼴딱~~ 꼴딱, 삼키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다고 하니...
그런 반반한 큰언니한테 밀려서 셋째인 나는 앞짱구 뒷짱구 미출이 신세에 서럽기만 했는데
어느날 부턴가 그 이쁜 김춘향이 꽃가슴에도 슬그머니 눈먼 사랑이 찾아오고..
김춘향과 동네 신도령의 숨바꼭질 사랑놀음에 미출이인 나는 저절로 향단이로 배역이 정해져
매일 밤 두사람 사이를 오가며 연애 편지를 날라야 했다.
으슥한 밤 뒷산에선 부엉새가 무섭게 울어대지~지집 찾는 구꿍새는 밤새 구꿍~구꿍~ 처량하게 목놓아 울지~~~
낮에는 한들 한들 실한 가지들을 흔들며 동네 사람들의 쉼터가 되주었던 사장나무도 밤만 되면 시커먼 그림자가
도깨비로 둔갑해 달려 들곤했다.
엄마한테 비밀을 지켜주면 매일 내 앞머리를 파마 해주겠다는 큰언니의 천금 같은 약조하에
나는 밤만되면 무서움에 떨며 편지를 움켜쥐고 내달려야 했고 입에다가는 자물쇠를 꼭꼭 채우고 살아야했다.
큰언니는 저녁 밥솥에 뜸이 들고 나면
나를 불러 부삽 앞에 쭈그려 앉혀 놓고 쇠젓가락 두개를 번갈아 불속에 집어넣다 뺐다 하면서
내 앞머리카락 에다 대고 푸지직~~ 소리를 내며 위로 말아 올렸다.
그때 내 앞 이마에선 개 끄슬리는 누린내가 났었다.
그리고 내 앞머리는 갈수록 숱이 적어지더니 나중엔 푸실~푸실 한것이 꼭 철지난 억새꽃 모양이 됐다.
생각 해보면 무엇 보다 가장 무서웠던건 그 노총각네 늙은 똥개다.
그집 똥개 주둥아리는 어찌나 사나운지 쌈 잘하는 내친구 깡금이 같았다.
그집 세르빡 담밑에서 주인 나오길 기다리다 재수 없이 들키는 날엔
영락 없이 내 발뒷꿈치를 그놈 한테 내줘야 할 판이였으니까.
그 미운 신도령은 내가 갔다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득달같이 나와서는 편지를 얼른 받아 가곤 했다.
어느날인가.. 편지 배달에 슬슬 권태증이 난 나는 일부러 냇꼬랑 돌다리 중간쯤에 쭈그리고 앉아서는
편지를 꼭 꼭 접어 물속에다 쑤ㅡ욱 밀어넣고는 사시 나무 떨듯이 혼자 떨었다.
생각 해보면 그 시절엔 전화도 없을 뿐더러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간 영락 없이 엄마한테
들키고 말판인데 즈그들이 나를 어쨌으랴 싶다.
여름이 슬슬 물러갈 즈음
큰언니의 알콩 달콩 몰래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은 눈치빠른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다.
큰언니는 엄마 앞에 잔득 주눅이 들어 이실직고를 했고
큰딸 인물 하나 반반한 걸 밑천삼아 부잣집에 시집을 잘 보내고 싶었을 울엄마의 상심은
날이 갈수록 체증이 되어 가슴을 짓눌렀고.
밭을 매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잠꼬대처럼 내뿜는 한숨소리는 오막살이 초가집 한체를 흔들고도 남았다.
"오메~ 써글노무거!~~ 산골 농새 지서 고래이 (고란이) 존일 해부렀다 !~~
요것이~ 착실한지 알았뜨이~ 똥구녕으로 호박씨를 까고 자빠졌네 그랴~~!!"
그날부터 공범자인 나는 슬금 슬금 엄마 눈치를 보며 없는 아양을 떨었고...
언니는 중죄인이라 반 감금상태가 되어야 했다.
그 덕에 향단이 한밤 중 측간 가는것 보다 더싫은 편지 배달은 막이 내리려나 싶더니
어느날 엄마가 조용히 큰언니를 불렀다.
" 이~반페이 (반푼이) 같은년아! 그놈 나이가 몇살인지나 아야? 낼 모래가 마혼이여~!!
니~이 눈꾸녁을 쏘~옥 빼놓기 전에 여비 챙게 주꾼께
어디 기~이 가서 쿠ㅡ욱 처박고 있다가 그놈 장게 가불거든 들온나!"
이미 열병이 깊을대로 깊어진 큰언니는 홑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서는 마의 불같은 닥달도
아부지의 점잖은 설득도 그져 소귀에 경 읽기였다. 자식 이겨먹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그해 늦가을 야밤 도주를 모의 하던 두사람 앞에 드디어 울엄마의 조용한 명약 처방 한마디~!!
"그놈이 그러큼 조믄 기~가~~!!"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미운 노총각은 다음날부터
밤마다 생쥐 쥐구녕 드나들듯 우리집 문지방을 대놓고 들락거리더니 급기야
결혼을 사흘 앞둔 어느날밤 눈이 펄펄 오는디 그 늙은 총각은 번드래미 언니를 찾어와 밤을 세고는
다음날 새벽에 쌓인 눈위에 광고라도 내듯 저~아래 큰동네 샘길까지 도둑놈 발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눈치 빠른 울엄마는 부랴 부랴 뒤따라 일어나 남이 볼세라 실한 싸리비를 툭 툭 털어 들고는
샘길까지 쭈~욱 따라가며 달갑잖은 발자국을 쓸어 내느라 손가락이 얼어 꺽새가 됐다.
마치 그것이 내 죄인냥 나는 아부지 큰 장화를 신고 나와 요리 조리 망아지처럼 뛰댕기며 발자국을 섞어 놨다.
울엄마는 아마도 이웃집 아짐들이 아침 일찍 샘가에서 쑥덕거리는 소리들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삼일 후 열아홉 큰언니는 복숭아 처럼 뽀얀 화장을 하고 세상에서 젤로 이쁜 어린 새각시가 되여
울며 불며 가마를 타고 다리 건너 큰동네로 시집을 갔다.
나는 담넘으로 고개를 쭈ㅡ욱 내밀고 점차 사라져가는 큰언니 가마를 보며 훌쩍 훌쩍 울었다.
그 뒤로는 해만 지면 언니네 집으로 내 달렸는데
그때 새각시 큰언니 방에서 났던 알 수 없는 항긋한 분냄새는 오랫도록 내 코를 자극 했고
벽에 걸린 옥양목 하얀 해때보에 십자수로 촘촘히 새겨 있던 원황새 한쌍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맴돈다.
언니야! 이제야 말하는데
나 아니었으면 신씨 총각이랑 연애도 못할 뻔 한거 알제~~??
그렇게 살결곱고 이쁘던 큰언니의 얼굴도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 하는지
지금은 시어머니 심술주름이 눈가에 자잘하고 올해가 벌써 회갑이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통크고 박력있던 노총각 우리형부는 지금은 2년만 있으면 칠순....
아직도 두 노인네 부부 금슬은 탄탄 하기만 하다. 지금은 우리 형부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다.
옛날처럼 편지로 주고 받던 귀한 사랑얘기가 요즘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시대가 인스턴트라고 사랑도 인스턴트같아지는 요즘시대에
그 옛날 숨바꼭질 하듯 만나던 연인들의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뭐, 달개아짐이 산고했다나나?'
옥동자 출산의 치사는 나중 일이고
내 필요한 것 몇 개 챙겨 가야 쓰겄오.
구꿍새(뻐꾸기)
고래이(고라니)
반페이(반푼이)
기 가(가거라 - 어떤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에게 사용함)
대놓고(꺼릴 것 없이)
번드래미(버젓이)
해때(횃대)
이렇게 해석하면 무리가 없을 것도 같은데 글쓴이의 의견은???
글을 읽다보니
아짐은 옛(어릴 적)부터 무척 영악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집을 잘못 건드렸다간 영락 없이 엄마한테 들키고 말판인데 즈그들이 나를 어쨌으랴 싶었다.'
'도둑놈 발자국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부지 큰 장화를 신고 나와 요리 조리 망아지처럼 뛰댕기며 발자국을 섞어 놨다.' 등은
12살 아이가 생각할 수 없는 표현들이니 말입니다. (ㅎㅎㅎㅎㅎ ) 특히 마지막 문장은!!
오랫만입니다.
재미있는 글 제일 먼저 재미있게 읽고
반가움에 몇 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