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동생아
031-xxx-oooo 전화벨이울린다
김삼웅씨입니까? 낯선 아주머니의 음성
여기 안산 지디스병원인데요 김천웅환자 아시죠? 예
약간 뜸을 들이는 사이 가슴이 철렁한다
제수씨가 하지않고 왜 간호사가 전화하는걸까? 혹시?!!
환자분이 형 보고싶다고 내일 방문해달라네요.
내일 시간이 어떨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간다고 대답한다
일단 안심은 되는데 무슨일일까??
다음날
친구 딸 결혼식으로 일산에 가게되어 오랫만에 친구들과 식사하고 차한잔하고 ...
저멀리 임진각까지 놀러갈 궁리를 하다가 다들 시간들이 여의치 않아 그냥 헤어지기로 한다
같은 방향 친구들을 태우고 집에 오는중에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갑자기 어제 약속이 떠오른다
허참 이럴수가 까마득히 잊고 있지않았는가
병원에 도착하니 제수씨나 조카들은 보이질 않고 남자간병인이 수발중이다
잠간 눈인사하고 손을 잡아주고 뒤로 물러나 간병인의 행동을 지켜본다!
오줌주머니를 갈아끼우고 침대를 앉은자세로 세우고
김치를 물에 씻고 가위로 잘게 썰어 밥과함께 부드럽게 으껴비비고
이내 식사를 시작한다
한술 한술 어렵게 떠 넣고 오물오물 거의 씹지 못하고
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니 삼키는것이 아니라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몇술뜨는가 싶더니 갑자기 살이 걸린다
재치기도 시원하게 하지 못하고 입으로 코로 뚫어진 목구멍으로
밥알이며 가래며 튀어나오고 숨쉬기가 힘들어져 얼굴이 빨개지고 손발이 부르르 떨린다
간병인은 등을 두들기고 입을 닦고 목구멍의 솜마개를 갈아끼우고
그러는동안 나는 우드커니 선체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한참 그렇게 실갱이를 치르고 나더니 조금 안정을 취한듯하다
간병인이 조금 남은 밥을 더 먹이려하는데 동생은 고개를 가로저은다
얼굴과 손발 앞가슴에 떨어진 음식 잔해물들을 깨끗이 닦아내고
간병인은 잠시 뒤로 물러난다
한참동안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그져 멍할뿐이다
조용히 물어본다
밥먹을때마다 이렇게 힘들어? 동생은 기진맥진한체 고개만 끄덕인다
다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동생이 말을 시작한다
소리가 세지않도록 뚫어진 목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아가면서 얘기를 하는데
혀가 잘 구르지 않으니 무슨말인지 알아들을수가 없다
몇번씩 시도하면서 내가 해석되는대로 다시 반문한다
맞으면 고개끄덕
동생 : 내가 입원한지 6년이 지나가는데 혜민엄마랑 모든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나 : 무슨소리야 물론 제수씨랑 힘들지만 그런 생각은 하지말아라
동생 : 하루종일 누워있다보니 생각을 많이 한다
나 : 무슨생각?
동생 : 고향생각, 친구들, .. 갈수도 없고...
나 : 아니야 재활치료 조금만 더하면 휠체어타고 갈수 있어 내가 대리고 갈께
동생은 체념한듯 고개를 저으면서 안된다고 한다
왼쪽눈은 백내장이 거의 덮어있고 오른쪽도 이미 시력이 많이 나빠진상태라
아주 가까이만 볼수 있어 침대머리맡에 조그마한 TV를 매달고 있다
동생 : 엄마가보고싶은데 몸이 이러니 갈수가 없다 엄마도 불편하니 여기 오지못할것이고
목소리라도 한번 듣고 싶다
나 : 응 이제 말씀도 잘 못하셔서.. 다음에는내가 모시고 올께.. 말끝을 맺지못한다
제수씨는 너무 힘들어서 이번 토요일 일요일만 집에서 쉬고 간병인을 쓴다고 한다
지난 6년동안 한번도 쉬지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매번 식사때마다 이렇게 홍역을 치뤄야 하는데..
그동안 여러번 문병왔지만 식사하는걸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마도 제수씨가 보여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피했던건가??
집으로오는동안 한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동안 주변사람들이 궁굼해 할때면 동생이나 제수씨 조카들
이제는 그게 생활이 되었으니 그냥 그렇게 산다라고 했는데...
동생이 너무 불쌍하다
한참 인생을 즐겨야 할 40대중반에 자리에 누워 50대가 넘어가는데
언제까지 기약도 없이 누워있어야만 하나!!
상념에 잠길수록 자꾸 나약해질텐데!
재활치료 열심히 하면 좋아질수있다는 희망도 이제 무망한듯한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숨기는것도 언제까지 계속갈건지!
다음에는 사실대로 말해야지 하면서도 동생얼굴보면 용기가 나지않는다
고등학교때부터 병마와 싸우느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가
맹장이 터져 복막념으로 변해 내장이 썩어 잘라내고 세척하고
어느정도 건강해졌는데 고향에서 농악놀이 하다가 항문을 다쳐
6개월이상을 허리에 똥주머니를 차고..
그후로 또한번 장념이 와서 병원에서 가망없다고 할때
한대에 몇십만원한다는 주사도 맞쳐보고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고혈압에 시달리고..
한때는 황달로 수원병원에 입원하고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활발했던 동생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다시 또 눈가가 촉촉해진다
2012. 6. 25
김삼웅
끝까지 넉두리 읽어주신분 감사합니다
힘내요^^*
동기간의 아픔은 내 수족이 아리는 아픔이란 걸 일찍암치 알고 있어요
일산에서 먼 발치의 아우를 봤었다오
찾아 가 악수를 나눌까 하다가 먼 발치에서 묵묵히 쳐다만 봤는데
그런 아픔이 있었네요
심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