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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내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아내의 남편입니다.
월급명세서를 이메일에서 출력하여 아내에게 내밀며
겸연쩍어하는 아내의 소중한 남편입니다.
이제 나이들어 두아이의 엄마로
한 남자의 마누라로 힘들어하는
아내의 가사일을
도우며 내 피곤함을 감춥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온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이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없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몸이 아파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아들에게 만사를
제쳐놓고 눈치부터 보아야하고 공무원 시험공부에 바쁜 딸네미에게
T.V의 리모콘도 주어야합니다. 정보수집이라는 미명에.....
내 늘어진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아이들
학자금. 용돈. 학원비가 나를 옥죄어 와서
내 마지막 히든 카드인 연금에도 보증부 대출이라
내 생일은 잊어버렸노라고 건너뛰어도
그들의 생일에는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 노래를 불러주어야하는
나는 그들을 위해 사는 아빠이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혼자 계신 아버님 앞에서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아버님의 아들입니다.
시골에 홀로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반찬거리, 생활비. 용돈을 드릴 때도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불쌍한 아들입니다.
기름진 텃밭이 무성한 잡초밭으로 변해
기력 쇠하신 당신 모습을 짜증스레 느끼며
출퇴근시 찾아 뵙는 것도 번거롭게 여기며 살펴야하는 .
나는 당신 얼굴 주름살만 늘게 하였던
아버님의 아들이어야 합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50대 직장 (중견)인 입니다
월급 받고 사는 죄목으로 마음에도 없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도 삼켜야합니다.
정의에 분노하는 젊은이들 감싸안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고개 끄떡이다가 고래 싸움에
내 작은 새우 등 터질까 염려하며
나가라는 말만은 말아주오
몸 낮추고 움츠리며 살아야하는
이 땅의 고개 숙인 50대 남자입니다.
집에서는 직장 일을 걱정하고
직장에서는 가족 일을 염려하며
어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엉거주춤, 어정쩡, 유야무야한 모습으로 살아야하며.
마이너스 통장은 한계로 치닫고
월급날은 저 만큼 먼데 돈 쓸 곳은 늘어만 갑니다.
그래도 얘들 학교마치고 결혼할 때까지라고 현직에서 버텨야하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나는 가장이 아닌 남편, 나는 어깨 무거운 아빠
나는 아버님의 소중한 자식
나는 고개 숙인 50대 직장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껴안을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의 표본이지만,
그러나, 모두가 있음으로 나는 행복합니다.
그들이 없으면 나는 더욱 불행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나의 행복입니다.
나는 나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일 때보다
모두의 나일때 더 행복한 줄 알아버린 50대랍니다
이 나라의 오십대 가장들이여
우리 어깨 펴고 당당하게 가자고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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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고 나면
그 허허로운 가슴이 조금 채워 질까요?
일상에 파뭍혀 버린 나,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들에
정작 작아져 숨겨져 있는 나
세상의 무게에 짓 눌려 있는 나를
자신은 너무나 잘 찾아내곤
그런 자신에게 무한한 동정을 보냅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그런 `나`이지만
아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남편이랍니다.
아이들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분이 아빠랍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랍니다.
오라버니의 `나`는 너무나 근사한 멋진 남자랍니다.(xx18)
정말로 오늘은 오라버니께
술 한잔 따라드리고 싶네요.(xx21)